꽉찬 냉장고를 보며 행복해하는 딸

by Chong Sook Lee


짧은 기일동안 엄마는 할 일이 많다. 지난번 봄에 올 때는 김치를 담고 갈비를 재서 가지고 왔는데 재료가 이곳에 다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이 이곳에서 만들면 된다. 어제 슈퍼스토어에 가서 필요한 재료를 대충 사 와서 배추김치와 오이김치 그리고 깍두기를 담가 주었다. 딸도 김치는 어깨너머로 배워서 흉내를 내지만 엄마 맛이 안 난다고 해서 몇 가지 담가 주었더니 좋아한다. 해주는 김에 만두를 만들고 갈비까지 재워주었더니 냉동고가 꽉 찬다. 이렇게 한번 해주고 가면 엄마 음식이 먹고 싶을 때 조금씩 꺼내 먹으면 된다. 나이가 마흔이 다 돼가도 엄마 음식 타령을 하고 있는 딸이 웃기기도 하고 안되어 보이기도 한다. 멀리 살기 때문에 아무 때나 올 수도 없고 만들자니 손에 익지 않아 쩔쩔매는 모습이 보여 힘들게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 주었더니 기분이 좋다. 세상이 좋아져서 불편함 없이 살지만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릴 적에 먹던 음식은 늘 그립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민을 와서 한국 음식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한국에 살 때는 손위 동서가 김장을 담가줘서 먹다가 왔기 때문에 김치도 처음에는 엉망으로 담가 먹었다. 그때는 유튜브가 없고 요리책이 있어서 책을 보고 요리를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친정엄마 음식이 생각나도 한국으로 달려갈 수가 없다 보니 나름대로 연구를 하고 세월이 가서 하나둘 하다 보니 손맛도 생기고 아이들도 맛있게 먹게 되었다. 한국식품점에 가서 갈비를 사면 좋지만 빅토리아에는 제대로 된 한국식품점이 없다. 혹시 슈퍼 스토어에 갈비가 있나 해서 가 보았더니 싸고 좋은 갈비가 나와있어 샀다. 양념이 다르니 맛이 어떨지 모르지만 대충 간을 맞추어 만들어 주었다. 지난번 딸이 집에 왔을 때, 이것저것 만들어 보냈는데 아껴서 먹는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난다. 식당에 가면 얼마든지 사서 먹을 수 있는데도 엄마 음식을 고집하는 딸이다.


딸네 집에 오기 전에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니 만두, 갈비, 칼국수, 김치, 깍두기, 청포묵과 수육을 이야기한다. 매번 집에 오면 만들어주는 음식이라 이번에도 하나씩 만들어 준다. 만두는 재료를 모두 넣고 볶고 간을 한 다음 만두피에 싸서 냉동을 해 놓으면 편리하게 먹을 수 있다. 만두피 2팩을 사서 80여 개의 만두를 만들어 얼려 놓았다. 돼지고기 수육을 만들고 청포묵을 만들며 내일 집에 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만들어 주려고 하루 종일 부엌에서 종종걸음으로 왔다 갔다 했더니 피곤하지만 집에 가서 쉬면 되니까 내색을 하지 않는다. 대충 음식을 해놓고 나니 딸과 사위가 일식으로 점심을 사겠다 고 한다. 올 때마다 맛있게 먹는 일식을 주문해서 딸과 사위가 결혼식을 한 공원으로 향한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르른 잔디가 예쁘게 깔려 있고 나무들은 단풍잎이 울긋불긋하게 물이 들었다.


봄처럼 꽃이 많지 않아도 가을철에 피는 여러 가지 꽃이 많이 피어있다. 아이들과 벤치에 앉아서 식사를 하며 3년 전 결혼식을 추억한다. 어느새 딸과 사위가 결혼한 지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바쁘게 직장생활을 하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애들이 늦은 나이에 2세를 갖고 새로운 여정을 살아간다. 나이가 많아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특별한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며칠 안 되는 시간이지만 와 있는 사이에 하나라도 더 도와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다. 공원에서 먹고 놀며 걸어 다니며 구경을 하다 보니 하루가 금방 간다. 꽃이 피어있는 정원을 지나 대나무 숲 앞으로 걸어 입구를 향한다. 작은 연못에 오리 한쌍이 연애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이곳에는 사시사철 관광 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이른 봄에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다른 꽃들이 덩달아 피어댄다. 꽃샘바람이 심술을 부리거나 말거나 피는 꽃을 막을 수 없다. 바닷가가 가까이 있어 언제든지 해변을 걸을 수 있고 산이 많아 등산하기도 좋다. 사람 사는 동네 근처에 공원이 많아서 아무 때나 산책을 한다. 올 때마다 이사 와서 살면 좋겠다는 유혹이 생긴다.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은 에드먼턴에서 42년을 넘게 살고 있어서 꽃이 많고 바다가 가까운 이곳은 정말 특별한 매력이 있다. 20분 정도 걸으면 환상의 바다를 갈 수 있고 차로 10분만 가도 아름다운 산이 있다. 사시사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곳이라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바다에 가면 게를 잡고 맑은 물에서 노는 낙지도 본다. 에드먼턴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다. 거의 해마다 한두 번씩 왔다가는 이곳이라 가까운 곳에 있는 관광지는 여러 번 다녀왔는데 여전히 새롭다. 동네를 걸으면서 동네 사람들도 알게 된다. 옆집에 사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더니 뒤뜰로 같이 가자고 한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더니 뒤뜰에 커다란 포도나무에 청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커다란 송이를 가위로 잘라서 나에게 먹어보라며 건네준다. 포도 몇 알을 뜯어먹어보니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기가 막히게 맛있다고 하니 더 큰 송이를 잘라주며 딸과 같이 나누어 먹으라고 한다. 인심 좋은 이웃이 있어 기분이 좋고 왠지 마음이 놓인다.


가까이 볼 수 없지만 멀리서나마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만들어 놓은 만두를 사진 찍으며 좋아하는 딸이 마치 새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좋아한다. 엄마 음식으로 꽉 찬 냉장고를 보며 딸은 너무나 행복해한다. 앞으로 몸이 더 무거워지면 힘들 것을 생각하며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다. 멀리 살아 조금은 불편해도 궁금할 때 한 번씩 와서 그들과 시간을 함께 하고 가면 된다. 내년 봄에 새 생명이 태어날 생각으로 행복이 넘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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