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네 집에 온다고 마음이 바빴는데 벌써 가는 날이다. 오는 날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는데 가는 날은 빨리도 온다. 워낙 짧게 잡은 여행이라 계획을 세워서 할 것을 다 해주고 간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마지막 날인 오늘은 사위가 좋아하는 케이크도 구워 주었으니 할 일 다 했다. 점심을 식당에 가서 먹을까 하다 냉장고에 있는 것을 꺼내 먹기로 했다. 둘이 살기 때문에 쌓아놓지도 않고, 만들어 놓지도 않아 냉장고에 먹다 남은 음식이 많아 부담스러운 것 같아 꺼내 보았더니 한 끼 먹기 충분하다.
냉장고까지 청소를 해 주었으니 이제 가방을 싸서 갈 시간이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지만 배부른 딸을 놓고 가는 마음이 자꾸 뒤돌아 보게 한다. 만삭이 되면 힘들 것 생각하면 옆에서 돌봐주고 싶은데 어쩔 수 없다. 42년 전, 임신 9 개월 때 이민을 떠나던 딸을 보내며 친정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죄송하다. 요즘같이 여행이 쉽지 않은 그 시절에 올 수도, 갈 수도 없이 그러려니 하고 살던 시절이었다.
모든 것들이 귀하던 시절에 막막하기만 했을 친정부모님의 심정을 이제야 헤아린다. 전화통화조차 비싸서 하지 못하고 그리움에 눈물을 훌리며 살아야 했던 날들이었다. 국제 전화는 전선이 좋지 않아 잘 들리지도 않던 시절에 손주들이 태어나도 사진으로 그리움을 달래던 시절이었다. 입덧을 심하게 하면서도, 먹고 싶은 게 있어도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날들이다.
찹쌀떡이 먹고 싶어 요리책을 보고 했는데 개떡이 되었지만 그나마도 고맙게 생각하고 먹었다. 배추가 귀해 양배추로 김치를 담가 먹고, 상추를 고추장에 무쳐 먹으며 그리움을 달래며 살았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지나고 아이들이 크고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세상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많이 변했다.
이민 초기의 이야기는 옛날이야기가 되었고 아이들은 다른 세상에서 편하게 산다. 그래도 엄마 마음은 안쓰러워 자꾸만 해주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똑똑하고 깨끗하고 편하게 산다. 없는 것 없이 사고 싶은 것 사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며 사는데도 왜 나는 자꾸만 해주고 싶은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뒤돌아보지 말고 헤어질 때 울지도 말자고 다짐을 했다. '금방 또 만나는데 왜 울어' 하면서 씩씩하게 공항을 향한다. 며칠 사이에 단풍이 더 많이 들었다. 공항 가는 길에 '마운틴 더글라스'라는 커다란 산이 있는데 사위가 경치나 구경하자고 데리고 간다.
차로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니 장관이다. 한쪽은 바다이고, 한쪽은 빅토리아 시내가 훤히 보이는 육지로 둘러 싸여 있다. 끝없이 넓은 바다에는 배들이 보이고 멀리 미국 경계선도 보인다. 산을 구경하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커다란 농장이 보인다.
황금색 호박이 줄을 세운 듯 놓여있고 잔디 깎는 로봇이 열심히 잔디를 깎는다. 커다란 거북이가 잔디 위에 놓여 있어 무엇을 하나 자세히 보니 잔디를 깎고 있어 놀랐다. 점점 인공지능의 범위가 넓어져간다. 이대로 가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점령하는 날이 머지않았다. 기계가 발전되고 기계화되다 보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진다.
자동문이 문을 열어주고 화장실 물을 내려 주고 손을 가져다 대면 무엇이든지 기계가 알아서 한다. 손을 닦는 물이 나오고 수도꼭지에 건조기가 있어 손을 말린다. 설거지와 빨래를 해주고 사람이 아닌 로봇이 시중을 드는 것은 오래되었다. 앞으로 더 무서운 인공지능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편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인공지능으로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손가락 움직이는 것도 싫어질 날이 올 것이다. 거북이 로봇이 사람들의 알자리를 대신하는 것을 보며 공항에 도착했다. 아이들과 헤어져 전화기에 저장된 비행기표를 보여주고 비행기를 기다린다. 기계로 몇 번 찍찍하며 지나가면 필요한 정보가 입력된다.
여전히 공항은 사람들로 붐비고 만남과 이별이 교차한다. 날이 좋아 비행기가 높이 떴는데도 땅이 보인다. 바다와 작은 섬들을 지나 록키산맥을 넘어 에드먼턴으로 향한다. 이렇게 편한 세상에서 산다. 특별히 신경 쓸 일이 없이 여행을 다닌다.
새빨간 석양이 우리를 반겨주고 둘째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이 기다리는 차를 타고 식당으로 간다. 재미있는 여행 이야기를 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집으로 간다. 우리를 기다리는 평화로운 집에 도착하여 3박 4일의 여행의 막을 내린다. 여행도 좋지만 집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