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추위가 계속된다. 캘거리에 사는 큰아들 가족이 금방 떠난다고 연락이 왔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온단다. 차를 타고 오며 메시지를 보낸다. 6시쯤 도착할 거라고 한다. 오면 무슨 반찬을 해주나 생각하는데 지난번에 사 두었던 갈비탕 거리가 생각난다. 갈비탕은 푹푹 끓여서 밥하고 먹으면 그리 많은 반찬이 필요 없다. 그래도 오랜만에 오는 아이들에게 갈비탕과 김치만 줄 수 없어서 청포묵을 만들고 취나물을 볶는다. 냉장고를 보니 콩나물 무침과 마늘종 장아찌 그리고 텃밭에서 키운 깻잎 장아찌가 눈에 보인다.
대충 준비가 되어 가는데 차가 밀려서 꼼짝도 못 하고 길에서 있다는 전화가 온다. 맥이 풀린다. 시간에 맞추어 못 오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추운 날 길거리에서 너무 오래 기다릴까 봐 걱정이 된다. 며칠 전에 눈이 많이 와서 하이웨이가 막히고 빙판에 미끄러져 굴러 떨어진 차들이 쌓여있는 모습을 뉴스로 봐서 더 걱정스럽다. 보통 2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 4시간 이상 넘게 걸려 집에 도착한 아이들은 잔뜩 지쳐 있다. 엄마네 가서 맛있는 저녁 먹는다고 점심도 안 먹고 떠나서 배가 너무 고프다며 허겁지겁 먹는다. 그래도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도착해서 얼굴을 보니 너무 좋다.
겨울에는 아이들이 오는 날부터 갈 때까지 걱정을 하게 된다. 눈이 안 오면 괜찮을 텐데 눈이 오고 날씨까지 추우니 더 걱정이 많다. 사람 사는 것이 눈 뜨면서 걱정으로 시작하여 잠자리에서 눈 감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저 잘 오리라 생각은 하면서도 올 때까지 안절부절못하고 서성대서 인지 아주 피곤하다. 손주들은 오는 동안 차 안에서 낮잠을 자서 늦게까지 뛰어다니지만 우리는 하루 종일 기다림에 지쳐서 일찍 잠자리에 든다. 큰 아들 내외는 손주들을 놔두고 3박 4일로 여행을 간다고 밤늦도록 준비하느라 바쁘다.
내가 세 아이들을 키울 때는 엄두도 못 내던 여행이다. 돈도 없었지만 어린 아이들 셋을 봐줄 사람이 없어 여행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민 온 지 8년 만에 온 가족이 한국을 방문한 것이 처음 여행이었다. 물론 차를 타고 가까운 캐나다 국내 여행은 했지만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대식구가 한 번에 움직이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가족들에게 아이들 예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던 여행이다. 아이들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7월 초에 갔다가 8월 초에 오는데 그해 따라 여름이 무척 더워서 고생한 생각이 잊히지 않는다. 아이들이 더워서 웃통을 벗고 동네로 나가서 놀면서 영어로 이야기하면 무슨 구경거리 가 있는 듯이 온 동네 애들이 나와서 구경하던 것이 생각난다.
이곳은 여름이 덥지 않아 더위에 약한 아이들이 너무나 더운 날씨에 웃통을 벗은 것이 너무 이상했나 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쳐다봐도 이유를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나서는 아무리 더워도 웃통을 벗지 못하게 하였다. 1980 년대만 해도 외국인들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라서 영어를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서서 구경을 하던 생각이 난다. 그해 여름에 너무 더워서 고생을 해서 그 뒤로는 절대로 여름에는 한국에 가지 않고 산다. 그때 그 꼬마들이 커서 고만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 앞으로 사흘 동안은 우리 집에 있을 텐데 재미있게 놀다 갔으면 좋겠다.
손주들은 아직 어려서 24시간 쫓아다니며 참견을 해야 하는데 몸은 피곤하겠지만 좋다. 바쁘게 사는 아이들이 자주 오지 못해서 귀여운 손주들을 자주 보지 못한다. 우리가 가도 되지만 주중에는 일하고 밤에 와서 밥 먹고 자고 주말에는 저희들 나름대로 편한 시간을 원할 텐데 우리가 가면 괜히 방해가 될 것 같아 잘 안 가게 된다. 아이들이 시간을 내서 오면 손주들은 올 때마다 부쩍 커진 모습이다. 지금이야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따르며 쫓아다니지만 조금 더 크면 같이 놀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 열심히 놀아야 한다.
옛날에는 대가족이라서 매일 보고 같이 생활했는데 이제는 손주들이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채 자란다. 산아 제한을 하며 핵가족이 되어 간편하게 살아가는 것은 좋을지 모르지만 식구들끼리 거리도 멀어지고 마음도 멀어지는 것 같아 서운하다. 가족이 자주 만나지 않고 살아가서 서로가 손님이 된다. 살림도 잘 모르고 오랜만에 오니 당연히 어설프기 때문에 손님처럼 왔다 간다. 내가 애들 집에 가도,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도 각자 사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맞추며 지내는데 그저 각자 생활에 충실하며 건강하게 잘 살기만 바랄 뿐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고 가족이기 때문에 욕심내지 않는 것이 평화를 가져다준다. 무조건 참고 살던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여행 다니며 멋지게 사는 아이들이 잘 사는 것이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기회를 무작정 기다리기보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스트레스 없이 살기를 바란다. 인생도 젊음도 한 번뿐이다. 어느새 세월이 가고 여행보다 집이 좋은 내가 되었다. 여행도 다 때가 있으니 잘 놀다 오라고 아들 며느리를 꼭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