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이 피어나는 겨울 속의 봄

by Chong Sook Lee



눈은 후회 없이 내리고 또 내린다. 그 많은 눈을 그동안 어디에 품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한없이 내리는 눈을 치우고 돌아서면 또 쌓여 있다. 아침에 한번 치고 들어왔는데 치지 않은 것처럼 쌓여있다. 귀찮아서 칠까 말까 하는데 밤새도록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다시 나가서 눈을 치고 들어왔다. 눈이 와서 꼼짝 않고 하루 종일 집안에서 뒹굴거리며 군것질만 했더니 몸이 무거워 찌뿌둥했는데 나가서 한바탕 눈을 치고 들어왔더니 기분이 좋다.


사람이 쉬는 것도 너무 오래 쉬면 병이 생긴다. 아침 먹고 집안 치고 조금 있다가 점심 먹고 한숨 자고 나도 시간이 남는다.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은 여유 있는 시간을 원하겠지만 있는 게 시간뿐인 나는 이런 날은 하루가 길고 지루하다. 유 박사와 구 박사하고 노는 것도 한두 시간이고 넷플릭스를 보며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해도 한두 편이다. 시간이 없을 때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 이런저런 것을 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심심하다. 가을에는 단풍구경에 빠져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들로, 숲으로 돌아다녔는데 갑자기 가을이 떠나갔다.


가을이 떠났나 보다 생각하는데 성질 급한 겨울이 눈과 함께 왔다. 순식간에 겨울을 맞고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길거리에는 눈으로 인한 수많은 교통사고가 나서 차들이 뒹굴고 영하로 떨어진 온도는 사람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예년보다 일찍 온 겨을인데 눈까지 오니 황당하지만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자연은 너무나 아름답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목은 빈 가지를 하늘로 향하고 햇살을 받고, 이파리가 남은 나무들은 이파리마다 눈으로 옷을 입고 있다. 정작 눈을 맞고 서있는 자연이 불평을 해야 하는데 따뜻한 집안에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이 눈 때문에 꼼짝 못 한다고 불평을 한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불평불만이 통하지 않음을 알고 겨울 속에 적응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이 추운 겨울에 밖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할 말이 없다. 아주 오래전에 계속되는 영하 28도가 넘는 날씨로 추워서 집안에 있는 날이 계속되었는데 영하 45도가 넘는 곳에 출장을 갔던 남편이 집에 와서 너무 덥다고 짧은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생각이 난다. 사람들은 다 적응하며 살게 마련인가 보다. 추워 추워하면서 견디고, 더워 더워하면서도 이겨나간다. 날씨가 덥고 추운 이유가 있을 것인데 사람들은 짜증을 낸다.


어느 해 여름에 한국에 갔을 때, 더워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여름은 피한다. 오죽했으면 여름에 한국 간다는 사람을 쫓아가서 말리고 싶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해도 땀은 여전히 흐르고 끈적끈적하여 불쾌하던 생각을 하면 여름이 싫은데 오늘처럼 추운 날은 그래도 더운 여름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차로 이동하고 집안이 따뜻하지만 눈 쌓인 창밖을 보고 있으면 괜히 춥다. 작년만 해도 추운 겨울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숲으로 가서 산책을 했는데 올해는 추위가 일찍 와서 엄두가 안 난다.


이대로 가다가는 겨우내 집안에만 있게 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걸어야겠다. 요즘 며칠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오늘은 많이 나아졌다. 게으름을 피우면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소파에서 앉았다 누웠다 하며 뒹굴거리다 보니 어깨도 굽고 배도 나온다. 안 그래도 키도 작아지고 어깨도 굽어서 옷을 입어도 모양이 나지 않는 것 같은데 이대로 앉아 있을 수 없다. 먹고 자고 또 먹고, 텔레비전 보고 전화를 들여다보는 것도 별 재미가 없다. 추워도 옷을 든든하게 입고 걸으면 아무리 추워도 금방 땀이 난다. 멀리 가지 않고 동네 한 바퀴라도 걸어봐야겠다.


며칠 동안 집안에서 뱅뱅 돌았더니 오늘 아침에 계단을 내려가는 데 다리가 후들거려 깜짝 놀랐다. 기운이 없나 해서 곰국을 끓여 먹고 입맛이 없어도 이것저것 찾아 먹었더니 조금씩 나아진다. 나 자신은 내가 잘 안다. 몸이 아프고 기운이 없어도 아무도 모른다. 남편이나 자식들이 내가 될 수 없다. 아프면 안쓰러워하지만 대신 아플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잘 보호해야 한다. 잠시 얼굴을 내미는 햇살을 보러 옷을 입고 나가보니 눈꽃들이 반긴다. 소나무에 앉아있는 눈꽃들이 예쁘다. 사과나무에도, 마가목 나무에도 주먹만 한 눈꽃이 활짝 피어 웃는다.


세상은 마주 보며 살아야 재미있다. 창문 안에서 바라본 세상은 쓸쓸했는데 막상 나와서 만나는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냥 지나치고 말 뻔한 화사한 설경에 푹 빠져 주머니에 있는 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눈꽃 사진을 원 없이 찍어본다. 봄에 피는 꽃도 예쁘지만 겨울에 피는 눈꽃은 더 예쁘다. 추위를 견디고 무거운 땅을 뚫고 나와서 피는 봄꽃이 예쁘고 기특 하지만 추위를 견디며 눈을 맞고 피는 눈꽃은 더없이 귀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루를 살아가며 인생의 꽃으로 피는 모든 이들은 위대하다. 꽃이든 사람이든 자주 보고 만나야 한다. 만나서 마주 보고 웃고 이야기할 때 살아가는 재미도 있고 마음속에 사랑의 꽃도 핀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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