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나무와 눈과 바람이 춤추는 숲

by Chong Sook Lee



계곡이 눈 아래서 잠자고 있다. 흐르지 않는 계곡이 꽝꽝 얼었다. 눈꽃을 하얗게 피우던 나무들은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다시 늦가을의 모습을 되찾고 서 있다. 말라 버린 나뭇잎들이 나무에 매달려서 바람에 흔들린다. 떨어질 기운조차 없어 간신히 매달려 있는데 금세 떨어질 기세다. 숲 속은 눈이 하얗게 쌓여있어 오솔길은 간데없고 개들이 왔다 갔다 한 흔적만 보인다. 하늘은 파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싱그럽고 청명하다. 아무도 걷지 않는 산책로는 하얀 카펫을 깔아 놓은 것 같이 화사하다.


높다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우렁 차게 들려 올려다본다. 하늘 높이 치솟은 전나무들이 우는듯한 소리를 내며 서로 부딪힌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코가 시리지만 머플러로 코와 입을 가리고 열심히 걷는다. 오랜만에 온 숲이 어서 오라고 반긴다. 아이들이 와서 손주들 쫓아다니고 음식을 하느라 집안에서만 있었더니 걷는 것이 새삼스럽다. 며칠 안 걸었다고 다리가 힘이 없고 걷는데 숨이 찬다. 사람의 몸이 이토록 냉정하고 예민하다. 평소에 하던 것을 안 하면 몸도 금방 눈치를 채고 알아본다. 그래도 아침마다 남편과 함께 재건 체조를 하기 때문에 그나마 건강이 유지되는 것 같다.


30여 년을 넘게 아침 운동을 계속하는 남편의 권유로 같이 하다 보니 아침 운동을 하면 굳었던 몸이 풀어짐을 느낀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며 귀찮으면 안 했는데 하다 보니 이젠 습관이 되었다. 생각하기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처럼 몸도 신경 써주어야 한다. 귀찮아서 가만있으면 며칠 사이에 근육이 빠지는 것을 느낀다. 요즘에 여기저기 몸이 안 좋아서 시작한 운동이 있다. 앉아서도 다리를 움직이고 어깨와 목을 돌려주고 뭉쳐 있는 근육을 풀어주다 보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옛날에 어른들이 복 나간다고 하지 말라 고 하던 것들이 요즘 현대인들에게는 필요한 운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떠는 것이 혈액 순환이 되고, 말을 별로 하지 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껌을 씹는 것이 턱운동에 좋단다. 회전의자에 앉아서 엉덩이를 돌리는 것도 허리 건강과 하체운동으로 아주 좋다고 하니 앉아서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무릎이 아파서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었다. 유튜브에 물어보니 무릎 통증은 구부린 자세에서 온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갈 때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구부린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무릎에 체중이 물렸는지 아프기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의식적으로 허리를 펴고 다리를 쭉쭉 펴며 오르내리니까 통증이 많이 없어졌다.


몸은 몸으로 말을 한다. 괜한 통증은 없다. 이유가 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있다. 우리가 모르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몸을 바꾼다. 허리를 곧게 펴고 걷다가 나이가 들면서 기운이 떨어지고 귀찮아지면서 몸의 자세가 흐트러진다. 인체는 각자 맡은 기능을 철저히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세가 좋지 않으면 병이 생긴다. 평소 습관이 잘못된 것을 모르고 아프면 병원으로 가서 약을 먹는 것보다 자세를 고치면 고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한때 위산과다로 오랫동안 약을 복용하던 남편이 하루는 약을 먹으면 배가 아파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들은 약 용량을 더 먹으라고 하는데 증상이 더 악화되어 약을 끊었더니 통증이 가라앉았다. 의사의 말을 듣는 것도 중요한데 알고 보니 위산 과소증이었다. 그 뒤로 남편은 약을 안 먹고 음식에 식초 한 방울씩 넣어 먹으며 건강을 되찾았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고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약에 대한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동과 자세와 습관을 잘 관찰하고 병을 고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바람이 잦아들어 숲 속은 따뜻하다. 처음에는 추웠는데 점점 더워지더니 땀이 난다. 장갑을 벗고 모자도 벗고 싶은데 감기라도 걸릴까 봐 참고 걷는다. 한겨울에 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계곡에 눈을 맞은 채 누워있는 나무들이 많다. 구부러진 나무도, 하늘로 곧바로 올라간 나무도 조용히 겨울을 맞고 서있다. 봄이 올 때까지 눈 속에 서있을 나무들은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한번 살아 보겠다고 세상에 나왔던 풀도 고개 숙이고 눈 속에 파 묻혀 있다. 몇 달 뒤에 쌓인 눈이 다 녹고 새로 나오는 새 생명에게 자리를 내주고 사라질 것이다.


계절의 순환에 순응하는 숲은 나이를 먹을수록 아름답고 믿음직하다. 구부러지고 넘어진 나무들이 있어 더 좋다. 연륜이 쌓이고 역사가 길어지고 있는 증거다. 다리 옆으로 난 길 꼭대기에 파란 하늘이 구멍처럼 동그랗게 보인다. 언젠가 카요티 한 마리가 의젓하게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자리인데 오늘은 파란 하늘이 자리 잡고 앉아 있다. 자연은 쉬지 않고 변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변함없이 반긴다. 귀찮고 춥다고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랑스러운 자연을 품에 가득 안고 집으로 향하는 발길은 가볍다. 하늘과 나무와 눈과 바람이 춤추는 숲 속의 잔치는 언제나 풍요롭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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