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게 최고다

by Chong Sook Lee




새날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생각한다. 집안에 할 일은 태산인데 마음뿐이고 몸은 게으름을 피고 싶어 한다. 마땅히 추운 겨울이어야 하는데 며칠째 가을 같은 날씨가 계속된다. 지난번에 왔던 눈이 녹아 가고 눈 밑에 있는 잔디가 군데군데서 파란 얼굴로 하늘을 보며 누워있다. 겨울인데 눈이 안 오고 춥지 않아 좋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보니 이대로 봄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오래전에는 이곳의 겨울이 그야말로 혹독하고 무서운 추위 때문에 더운 나라에서는 아예 이민 올 생각조차 못 했는데 지구 온난화로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겨울이 춥고 길지만 습하지 않아 옷을 잘 입으면 괜찮다. 습한 겨울 날씨는 조금만 추워도 한기가 살 속 깊이 파고드는데 이곳은 지나칠 정도로 건조하다. 그래서 조금 추우면 두꺼운 잠바를 입고 겨울에도 온도가 올라 가면 반팔 반바지를 입는 사람도 많다. 요즘 일출시간이 8시 20분이고 일몰 시간은 4시 24분이다. 하루가 짧은데 그나마 구름이 껴있는 날이 많다 보니 해 구경을 못하고 지나간다. 해가 떴구나 하면 어느새 서쪽으로 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해가 늦게 떠서 밖이 어두워 밤인 줄 알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벌써 해는 중천에 떠 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다 보면 점심시간이다. 배꼽 시간은 왜 그리 정확한지 때가 된 것을 잊지 않고 알려 준다. 점심을 먹고 나면 식곤증으로 잠이 쏟아져 잠시 눈을 붙인다.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 빨라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옷을 입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본다. 요새는 아침에는 흐린 날씨로 시작하고 해 떨어지기 전에는 하늘이 맑게 갠다. 그제는 하루 종일 날이 흐려서 눈이 오려나 했는데 저녁때가 되더니 해가 '나 여기 있어'하며 황금색 석양으로 하늘을 물들였다. 어제 오후에도 변함없이 화려한 석양의 모습을 보여주고 넘어가던 해가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짧은 하루 같은지 모르겠다. 아침에 구름이 끼고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할지 모르고 어디로 갈지 몰라도 하루가 가져다주는 선물로 살아간다. 살아오면서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세월만 까먹고 산 것 같아도 그게 아니다. 오랜 세월 살아오는 동안 삶의 태풍이 불고 홍수가 오고, 가뭄이 들어도 잘 견디고 살아왔다. 지나고 나니 하루 한순간도 내 힘으로 살아온 것이 아님을 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길로 지금의 내가 되었다. 똑똑하고 잘나서도 아니고 가진 것이 많아서도 아니다. 도움의 손길과 보호해주는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하면 매 순간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도 모르게 세상에 나와 이끌어 주는 대로 살다가 언젠가는 또다시 온 곳으로 간다.


이 세상 모든 일들이 우리가 모르는 우주의 섭리로 계획한 대로 이루어진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속에 하루를 맞고 보낸다. 삶은 희극이 되고 비극이 되어 고통과 희열을 우리 인간들에게 선사하며 이어진다. 어제는 울고, 오늘은 웃고, 내일은 어떤 날이 될지 모르기에 희망하며 산다. 하늘이 온통 회색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진눈깨비가 온다고 한다. 눈이 오는 게 차라리 좋으련만 진눈깨비가 오면 땅에 떨어져 맥없이 녹아 거리에 빙판이 생길 것이다.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길이 얼면 가만히 집에 있으면 된다. 겨울 날씨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어쩔 수 없다. 멀쩡한 길에서도 넘어지고 다치기도 하는데 길이 미끄러우면 집안에서 밀린 일이나 하면 된다.


세상사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겨울이 싫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 되고 더위가 싫으면 겨울이 긴 이곳에 살면 된다. 마음대로 안된다 고 징징댈 필요 없다. 세상만사 뿌린 대로 거두기 마련이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날이 시시하다고 생각하던 날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조용하고 의미 없어 보여도 이대로 좋다. 멋지게, 폼나게 살며 남보다 잘 나가기를 원하기보다 하루하루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면 된다. 건강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한동안 몸이 안 좋다 보니 건강의 소중함 을 새삼 느낀다. 의학이 많이 발달되었지만 세상에는 약으로 되지 않는 병이 많아 이유를 모른 채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창조주가 만든 인체는 완벽한데 잘못된 습관으로 몸을 망치게 된다. 어디가 아프면 왜 아픈지를 따져서 근본적인 치료를 해야 하는데 인간들은 급한 마음에 약을 먹고 수술을 하며 빨리 낫고 싶어 한다. 병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눈으로 볼수 없는 몸안에서 병이 기다리다가 참다못해 통증으로 말을 한다. 이유 없이 아프지 않은데 임시방편으로 이것저것 하다 보면 몸은 그게 아니라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약도 좋고 수술도 필요하지만 몸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도 관심 부족일 때 반항하고 미운 짓 하듯이 몸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나 보다. 하루를 시작하며 생각이 여기까지 왔다. 건강이 인생의 전부임을 새삼 느낀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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