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hong Sook Lee Dec 21. 2019
오랫동안 운영하던 식당을 팔았다. 더 이상 신경 쓸 일이 없어졌지만 그만큼 서운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22번 보냈으니 미운정 고운정도 그만큼 쌓였으리라. 태어난 아이가 22살이 되었 다면 분가할 때도 된 세월이고 20대였던 애가 40대가 된 세월이다. 식당을 판다고 하였더니 아이들도 무척 서운했는지 전문 사진사를 불러 식당 안에서 생활하는 우리 가족사진도 찍었다. 아이들은 청춘을 받혔고 우리는 중년을 다 받혔다고 해야하나..많은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고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고 다른 곳으로 멀리 떠나 갔다.
43살에 시작해서 65살 되었으니 참으로 오랫동안 한곳에서 장사를 한 셈이다. 아침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여는데 새벽5시 반에 준비를 하러 가면 식당앞에 손님들이 먼저 와서 기다린다. 개점 시간도 안 됐는데 기다려준 고마운 마음에 문을 열어주고 장사를 시작한다. 급하게 커피 내리고 감자 삶고 베이컨 소세지 굽고 감자 볶아가며 바쁜 하루가 시작된다.
식당이라는 식자도 모르고 얼떨결에 시작한 식당이라서 경험없는 나로서는 여러가지로 부족한 게 많았지만 열심히 배우고 흉내를 내다보니 나름대로 할 만한 장사였다.
1955년도에 지은 식당인데 그때 당시에는 이렇게 아침을 파는 전문식당이 흔치 않아서 문을 열면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 후로 비슷한 식당들이 줄줄이 생기는 바람에 지금은 그런 노다지는 아니지 만 그래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몇 안 되는 식당중에 하나이다.
몇명의 주인을 거치며 식당 이름이 처음에는 “보라 소” 였는데 지금은 ” 빨간 기러기”로 바뀌었 다. 손님들의 추천으로 뽑혀서 "가볼만한 식당" 으로 지역신문에 여러번 날때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영화도 여러번 찍고 연속극도 3년 계속하여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16분짜리 짧은 영화를 만들어 대상을 받기도 했고 길고 짧은 영화 찍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그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것은 지구 건너편에 사는 사람이 “죽기전에 해 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에 우리 식당에 오는 것이었다.” 며 찾아 온 손님도 있었다.
특별한 것은 없어도 특별한 매력이 있는 식당이라며 마음이 복잡하면 우리 식당에 오면 마음이 안정된다는 손님도 있었고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이곳에 오지 않으면 영혼이 배고프다는 손님도 있었다.
자주 오던 손님이 오랫동안 오지 않으면 걱정이 되고 좋은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하고 슬퍼할 때는 손을 잡아주며 슬픔을 위로하고 위로받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직장을 잡았을때 맨 먼저 찾아오는 식당이고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오던 꼬마가 결혼하여 아기를 낳아 찾아오는 식당이었다.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치면 손님이 주인이 되어 커피도 자기들이 가져다 마시고 빈 그릇도 정리해주고 돈 많이 벌어서 좋다고 우리와 함께 신나했다.
우리 둘의 생일도 해마다 잊지않고 챙겨주고 봄부터 가을까지 정원에 피는 꽃을 꺾어서 갖다 주던 손님이 있었고, 몸이 불편하여 음식을 배달해 드리면 너무나도 고마워 하시던 뒷집 할머니...영상 30도가 넘는 살인적인 더위에 견디지 못하고 고장나는 냉장고..그 안에 있던 음식이 상할까봐 여기저기로 옮겨 놓으며 안타까워 하던 일. 물탱크가 터져 물바다가 되었던일.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식당문도 안 잠그고 퇴근하던 일. 손님들과의 대화들...이제는 모두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남편 건강상 시간을 줄였더니 일찍 오던 손님이 조금 늦게 와 주고 늦게 오던 손님이 조금씩 일찍 와 나름대로 우리를 도와 주었던 일들..그런 저런 추억들이 생각난다.
세 아이들이 사춘기때 반항할 시기에도 매주 토요일마다 우리를 도와 주며 가족이라는 소중한 관계를 배우게 되어 그 무섭다는 사춘기도 잘 넘겼다. 시험 때에도 일을 하며 틈틈히 공부를 했고 성장하여 독립한 후에도 집에 오면 당연히 일을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고 고맙다. 한창 놀고 싶은 나이에 토요일에 일을 해야 했으니 얼마나 부모가 원망스러웠을까 생각이 든다.
가까이 사는 둘째는 결혼하고 남매를 키우면서도 매주 토요일에는 어김없이 식당에 나와 우리를 도와 주었고, 멀리 사는 큰아들과 막내딸도 집에 오면 한마디 불평 없이 식당에 나와 설거지를 하고 서빙을 하며 우리를 도와 주었으니 오늘의 우리가 있는것이다.
그동안 식당을 운영하면서 좋은일도 많았고 나쁜일도 여러번 있었다. 오래 된 식당을 하다보니 모든것들이 낡아서 위생 검사원이 올 때 마다 늘 불안 했었고 도둑도 몇번 들어 와서 식당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고 불도 한번 날 뻔하여 소방차도 다녀 간 적도 있다.
남편과 24시간을 한 공간에서 일을 하다보니 의견충돌도 생겨 부부싸움도 했고 아이들과 일할때도 세대차이로 여러번 충돌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이다.
나이도 들어가 오래 못하니 마땅한 사람이 생기면 팔려고 생각했는데 교인 중에 식당을 하는 젊은 내외가 사겠다고 하여 팔게 되었는데 이젠 불안할 필요도 없고, 도둑 맞을 걱정도, 불 날 위험도 없다. 부부싸움도 할 필요없고 세대차이로 아이들과 부딛힐 필요도 없다.
소중한 추억을 뒤로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제는 서서히 원하는것을 하고 싶다.
22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를 이끌어 주고 나와 동행해준 남편의 변함없는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의 오늘을 만들어준 손님들의 친절에 감사드린다. 끝나기 2주전 우리의 소식을 전해들은 손님들은 우리를 위하여 그야말로 멋진 파티를 해주며 꽃과 선물로 우리의 정년퇴직 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지난날들은 이제 우리 가족과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가슴속 한 구석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사랑의 꽃을 피워 낼 것이다.
내 인생의 중년의 무대는 닫히고 노년의 무대가 펼쳐 졌으니 앞으로 남은 여생을 멋지게 살아야 겠다. 우리의 바톤을 받아 “빨간 기러기”를 운영할 새 주인에게 행운을 빈다. “빨간 기러기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