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hong Sook Lee Dec 23. 2019
잘 쓰지도 못하면서 글을 쓴답시고 혼자 잘난 체한 세월이 바보 같다는 생각에 며칠을 방황했다. 그동안 열심히 써 온 글들을 읽어보니 왠지 모를 회환이 몰려온다. 이민생활 40년 동안 써온 한국말인데 막상 글을 쓰려하니 철자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이다. 영어권에 살다보니 한글을 잊어버렸다고 하면 웃기는 핑계에 불과하다. 옛날에 배운 원고지 작성법도 가물가물 하다. 학창 시절에 한자를 배웠는데 한자도 자신이 없다. 언어라는 것이 냉정하여 안 쓰면 잊어버린다고 하지만 어쩌다가 사자성어라도 인용하려면 인터넷 신세를 져야 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쓴다. 잘 쓰지도 유식하지도 못하지만 열심히 쓴다. 전문지식은 없지만 살아온 세월 속에 나름대로 할 말이 많다. 4년의 연애 끝에 결혼한 남편과 사이에 삼 남매를 낳아 기르며 열심히 살았던 세월이다. 세월이 흐르니 기억력도 자꾸 없어져 지나간 시간들이 때로는 꿈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보석 같은 날들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남기고 싶어 여전히 쓴다.
초 저녁잠이 많은 나는 아침에 늦잠을 못 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자판을 두드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오랫동안 글을 써 와서 그런지 일상의 하루를 시작하는 하나의 패턴이 되었다. 특별히 쓸 내용이 없어도 이렇게 생각나는 것들을 써 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러운 나의 고백이 된다. 남들은 문학지에 작품을 보내어 상도 잘 타가는데 나는 내 자신이 늘 부족한 것 같아 숨겨두기만 했다. 강산이 몇 번이 변해가도 내가 쓴 글은 컴퓨터 안에서 잠만 자고 있다. 어쩌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나의 글을 세상에 내놓고 싶어도 거의 컴맹에 가까운 컴퓨터 실력이니 어떻게 시작할 줄 몰라 그냥 덮어놓기 일수다.
20여 년 전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나이가 젊어서 아이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컴퓨터를 조금씩 배웠지만 지금은 영 아니다. 가르쳐줘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자꾸 물어보기도 미안하고 염체 없어 그냥 글만 써 놓아 저장한다. 기술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몰라도 자꾸 하면 할수록 느는 것이지만 워낙에 기계치이다 보니 잘 안된다. 그래도 쓰기라도 하면 언젠가는 세상 빛을 보리라 생각하고 계속 써서 저장해 둔다.
말주변이 없는 나는 사람들과 만나도 별로 할 말이 없어 가만히 듣는다. 하지만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하고 싶은 말들이 생각난다. 무엇을 쓸까 망설일 때도 있지만 컴퓨터 자판을 보고 있으면 나의 수다의 장이 열린다. 쓰다 보면 잊혔던 추억도 생각나고 억울했던 일도 생각난다. 남편이나 자식한테 미처 하지 못했던 일도 생각나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계획도 생각난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나의 고백이고 취미며 살아갈 희망이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도 몰랐던 나에 대해 알게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을 느낀다. 잘 쓰거나 못 쓰거나 이렇게 하루하루 쓰다 보면 언젠가 나의 글이 세상 속으로 뛰어다니리라 생각한다. 말이 없는 나는 글로 수다를 떤다. 사람들과 하지 못하는 말도 글로 한다. 말보다 글이 편하다. 잘 쓰고 못 쓰고는 나중 문제다. 못 쓴다고 쓰지 않는 것보다 우선 쓰고 보자는 주의다.
내가 말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지만 글은 상처 대신 치유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을 다듬고 감정을 다스리며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 오해했던 사람들과도 화해하게 된다. 산꼭대기에서 가느다랗게 내려오는 물이 여기저기 골짜기의 물과 합류하면서 거대한 폭포수가 되어 바다로 나가듯 이렇게 한 자 한 자 쓰다 보면 언젠가 나 자신도 장편의 글을 쓰게 되리라 믿는다.
옛날에 썼던 글들을 읽어보면 어설픈 면이 많지만 그때는 생각도 어렸고 지식도 부족하였음을 알게 한다. 그래도 그 글을 썼던 당시에는 그게 나의 모습이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내 마음을 컴퓨터 화면 안에 다 드러내 놓으며 숨김없는 진실을 말하려 한다. 못 쓰면 어떻고 부족하면 어떤가? 세상에 완벽한 글이 어디 있는가? 한 자 한 자 쓰다 보면 나의 진실한 마음이 읽는 사람들 에게 전해지지 않겠는가? 오늘도 나는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을 하며 겸허한 자세로 내 속에 있는 나를 꺼내 놓는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고백하고 내일의 나를 상상한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고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저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알고 있는 지식을 쓰고, 도움이 될 것이 있으면 글로 전해 주면 된다. 내가 본 대로, 들은 대로 그리고 느낀 대로 내 마음의 소리를 진실로 표현하면 된다. 꾸준히 쓰고 노력하는 가운데 실력 또한 향상되리라 믿기에 나는 여전히 글을 쓴다. 아이가 자라 20살이면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는 것처럼 나의 글도 이제 독립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