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연은 추억이 되어 돌아온다

by Chong Sook Lee



세상사 인연의 연속이다. 매일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어디를 가서 무언가를 하며 산다.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기도 하고, 싫은데 자꾸 마주치기도 한다. 인연 이란 정말 알 수 없는 미래 같은 존재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들이 만나서 살고,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이 헤어지는 것을 보면 묘하다.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늘 새롭게 생각나고 잊히지 않는 남편과 나의 만남이 떠오른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이 무료한 나날이 싫증이 났다.


우연한 기회에 사진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사진 학교에 등록을 했다. 모아 놓은 돈은커녕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저지른 행동이었지만 걱정 없이 학교를 다녔다. 물론 부모님 슬하에서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철이 없었다. 하루하루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재미로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며 학생들과의 친분도 가까워졌다. 같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야외 촬영을 나가고 찍은 사진을 암실에서 현상을 하며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각자가 찍고 현상한 작품을 선보이고 서로의 작품을 평하고 인물 사진 수정을 하며 실력을 쌓았다.


아무것도 모르며 시작했는데 조금씩 실력이 늘고 학생들 중에 가까운 친구도 생겨 났다. 학교가 끝나면 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도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중 하나는 중매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는 친구도 있었고, 무엇이 그리 힘든지 날마다 술 담배에 절어 사는 친구도 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서 매일매일 얼굴을 보다 보면 그중에 유난히 가까워지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몇 명 안 되는 급우들과 웃고 생활하며 정이 들어 헤어지기 서운하고 다음날을 기다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여름이 다가오던 어느 날, 학교 끝나고 버스를 타는데 급우 하나가 웃으며 내 뒤를 따라 버스를 타는 것이 보였다. 장난을 잘하는 나는 그에게 웃으며 아는 체를 하고 농담 좋아하는 그는 좋아라 하며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인사하며 한참을 가는데 점심을 같이 먹고 싶다고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평소에 인상도 좋고 매너도 좋아 관심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싫지 않은 제안이었다. 마침 내가 친구들과 자주 가는 식당 중에 깔끔하고 맛있고 가격도 좋은 집밥 같은 식당이 생각났다. 서로 사귀는 것도 아니고 사귀자고 한적도 없는데 부담 없이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것이 사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이도 동갑이고 몇 달 동안 한 교실에서 같이 공부하며 지내서인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만나면 좋고 웃으며 이야기하며 서로를 알게 될수록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진하고 착실하고 근면하여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학교가 끝나도 만남이 계속되었고, 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나는 좋은 곳에 취직이 되었다. 새로 취직한 곳에 적응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여전히 만남을 계속하며 연인 관계를 이어가며 만난 지 4년 만에 결혼하여 44 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 결혼 후 2년 뒤에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연년생으로 세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세월이 갔다.


혹독한 이민생활을 하며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고 지금은 모두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어느새 노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손주들까지 선물로 주니 더없이 고맙고 행복하다. 둘이 손잡고 온 이민인데 지금은 열두 식구가 되었고 3월이면 손주 하나가 더 나오니 열세 식구라는 대식구가 될 것이다. 나이가 들어 몸은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어도 마음만은 그때를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아무 걱정 없이 만나면 즐겁고 행복하여 만나고 또 만났던 즐거운 추억의 날을 틈틈이 이야기하곤 한다. 그때 내가 그곳에 가지 않았으면, 남편이 오지 않았으면, 버스를 타지 않았으면, 점심을 같이 먹지 않았으면 오늘도 없었을 것이다.


그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우리는 여전히 그때의 나이로 돌아가 재미있게 산다. 사람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평범했던 우리는 남들처럼 고급스러운 연애도 하지 못했고 빡빡한 이민생활이 경제적으로 여의치 못했어도 후회는 없다. 화려하고 멋진 것도 좋지만 현실에 적응하며 사는 지혜로 지금껏 살아왔다. 하루를 살아도 멋지게 살아야 하겠지만 아는 이 없는 이국에서의 생활은 멋진 것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때로는 낭비하고 사치하며 낭만적으로 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마음 편하게 사는 것도 필요하다.


특별한 욕심 없이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주위에 힘든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며 가족끼리 사랑하며 살면 된다. 밤새 눈이 내린 뜰을 보며 참으로 오래된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추억으로 산다고 하는 말이 실감 난다. 길은 하얗게 눈이 쌓여있고 나무들은 모두 헐벗은 채 겨울을 맞는다. 이렇게 겨울이 지나고 나면 겨울의 모습은 봄 속에 묻힐 것이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이어진다. 아름다운 인연은 추억이 되어 돌아온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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