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가 떠나고 돌아오고 머무는 시간이다. 응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소방차가 뒤따라 간다. 누군가의 숨 넘어가는 순간인데 세상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세상 만물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기까지 여러 번의 고비를 만나고 이겨내며 살아간다.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지 아직도 모른다. 만나고 헤어지고 오해하고 화해하며 웃고 울고 하다가 끝나는 인생이다. 그중에 하나만 빠져도 비틀거리는 인생은 후회와 번민과 미련과의 싸움이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오래전에 만든 영화를 보는데 불경기라서 살기 힘든다는 대사가 나온다. 몇십 년 동안 계속되는 말이다. 언제 적부터 시작된 불경기일까? 왜 경기는 좋아지지 않고 불경기가 계속될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사람들의 인내는 바닥을 향한다. 희망도 없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거리로 나선다.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닌데 사람들은 일탈하는 삶을 택한다. 더 좋아지지 않는 삶이 싫어서 떠나고 싶어 하지만 걸리는 게 너무 많다. 떠나지 못하게 잡는 것 때문에 주저하며 끌려가듯 산다.
월드컵 응원하는 장면에는 젊은이들로 넘친다. 그들이 힘을 합치면 못할 게 없을 것 같다. 참 보기 좋다. 응원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신이 난다. 그런데 저출산이 문제다. 저 많은 젊은이들은 시간이 가면 늙고 저 응원하는 자리에는 누가 있을지 의문이다. 선생님과 학생 하나가 다니던 시골 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단다. 더 이상 학생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비싸도 먹고 살기에는 도시가 낫다는 생각 때문에 도시는 점점 팽창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살기 힘든 것은 마찬 가지인데 희망을 가지고 산다. 컴퓨터가 일을 다해 주고 손가락 하나로 움직이는 세상은 보기에 천국 같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세상은 부자들만을 위한 세상이 되어간다. 가만히 앉아서 텔레비전으로 눈요기를 하다 보면 매력적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간다. 그런데 뉴스로 보는 세상은 참혹하다. 사기와 살인 그리고 전쟁과 전염병으로 고통당한다. 무조건적인 반정부 데모를 하고 이유 없이 정책에 반대하며 서로 싸우고 서로를 모함하고 약점을 파헤친다. 더 이상 살 수 없는 세상 같다.
좋은 뉴스는 없고 그야말로 지지고 볶는다. 희망이 없고 기쁨도 없이 사람들끼리 서로 의심하며 아무도 믿지 못하고 산다. 전화는 사기꾼들이 장악하고 눈 깜빡할 사이에 사기를 당한다. 집안에 전화 하나만 있어도 행복했던 시절이 좋았다. 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던 세월은 전설이 되었다. 각자 전화 하나씩 들고 앉아 있는 방안은 참으로 조용하다. 혼자 웃고, 혼자 울며, 혼자의 세상 속에서 산다. 전화만 있으면 사람들은 행복하다. 같이 있어도 대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아이들이 옆집을 가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네서 놀거나 친구와 함께 집에 걸어오던 세상은 없어졌다.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무슨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한다. CCTV가 곳곳에 있고, 어디를 가도 안면인식 카메라가 사람들을 감시하는 세상에 범죄는 더없이 악랄해져 간다. 마흔 살이 넘은 아이들이 옛날 어릴 적 이야기를 하며 옛날이 좋았다고 한다. 해가 떨어져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친구들과 놀아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날들이 그립다.
줄넘기, 구슬치기, 공기놀이, 널뛰기 등 세상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가 장난감이었다. 비싼 돈을 주고 장난감을 사지 않아도 밖에 나가면 놀 수 있는 것이 쌓였었다. 어릴 적에 살던 동네에 안 쓰는 철길이 있었다. 시원한 굴 속에는 엿장수 아저씨가 엿을 만들어 팔았다. 아이들이 가져다주는 찌그러지고 못 쓰는 물건들을 가져가서 엿 한 가락을 받으면 행복했던 시절이다. 그중에 생강엿의 맛은 지금도 생각난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집안에서 컴퓨터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며 기계화되어간다. 집 밖의 세상과 단절되어 혼자 논다. 아이들이 노는 곳은 상업화가 되었다. 돈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다. 부모들은 일주일 동안 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주말에는 비싼 놀이터를 찾아 데리고 다닌다. 요즘 세상에 아이들의 놀이는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장소에서 뛰어 놀기만 하면 된다. 장난감 회사는 별의별 장난감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을 유혹한다. 돈만 주면 창조 없이 편하게 놀 수 있다.
친구들보다 공기놀이나 줄넘기를 더 잘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던 시대가 아니다. 손에 잘 맞고 매끈매끈한 오색 공깃돌이 나오고 과학을 이용한 줄이 나와 줄넘기가 더 잘 되는 줄들이 있다. 돈만 주면 웬만한 것들은 다 살 수 있는 세상이고 편한 세상이 되었다. 빈부의 차가 심해지고 사람들은 편한 일만 하려고 한다. 노동력이 부족하고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농가에서는 한숨만 나온다. 경제가 하락하는데 데모를 하며 산업이 중지되어 안팎으로 손해가 막심한 힘든 세상에 산다. 많이 주고받는 것이 서로를 위한 일이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인정사정없이 다가오는 불황은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것이라 한다. 좋은 물건을 사고 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있다. 힘든 시간을 위해 고난을 이겨나가는 연습을 조금씩 하고 사는 지혜도 필요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