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보고 싶은 아이들이 와서 2주 반 정도 놀다 갔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자들이 실컷 놀다 갔는데 환청이 들린다. 각자의 집으로 가서 없는데 웃는 소리, 우는소리, 노래하고 뛰어노는 소리가 들린다. 자고 있는데도 어딘가에 아이들이 있는 것 같아 귀를 쫑긋해 본다. 사람은 소리에 적응하며 사나 보다. 여기저기 장난감이 뒹굴고 아이들의 옷가지가 늘어져 있던 집안을 깨끗이 정리하고 앉아서 텔레비전을 본다. 시끌시끌하던 시간들은 모두 지나간 과거가 되어 집안은 다시 옛날의 모습을 되찾고 조용하다. 평화롭다. 그런데 이상하다. 너저분하고 시끄러운 것이 다시 그리워진다. 아이들 밥 해주고 빨래해주고 손주들 쫓아다니는 시간이 빨리 가고 조용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아이들이 가니까 그게 아니다. 사람 사는 집에 사람소리가 넘쳐나야 사는 맛이 난다. 나이가 들고 조용하게 사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되었다 더구나 코로나로 방문이 줄어서 누가 오고 가는 일이 드물다. 그래도 일 년에 몇 번씩 아이들이 손주들을 데리고 방문을 한다. 처음 며칠은 좋은 마음으로 모든 것들이 좋아 보이는데 시간이 갈수록 힘이 들고 버겁다. 온다고 하면 좋기도 하지만 힘들 것을 생각하면 두렵고 가는 날이 기다려지고 막상 가면 또다시 그리워진다. 내 나이가 되면 며느리가 해주는 밥을 먹고 손주들과 놀며 동화책이나 읽어주어야 하는데 시대가 바뀌었다. 아들 며느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재택근무를 하고 시간 나면 SNS를 하며 소통한다. 손주들은 할머니와 노는 것보다 텔레비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할머니는 같이 노는 사람이 아니고 배고플 때 먹을 것이나 해주는 사람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지만 살림을 하다 보면 같이 놀 시간이 없다. 아침 먹고 나면 점심준비를 해야 하고, 점심 먹고 조금 있으면 저녁시간이 온다. 아무거나 있는 대로 줄 수 없어 한 끼에 한 가지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해 주고 싶은 마음에 몸과 마음이 바쁘다. 먹는 사람이야 맛있다, 좋다, 하며 먹으면 되지만 만드는 나로서는 신경을 쓰게 된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좋고 또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행히 아이들 식성이 까다롭지 않아서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이 최고라고 맛있게 먹어준다. 아이들이 오랫동안 있다 간다고 했을 때 집에서도 먹고 간혹 가다 밖에 나가 식당에서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식이 편하긴 하지만 한두 끼도 아니고 열식구가 넘는 대식구가 가기가 쉽지 않다. 가뜩이나 물가가 올라 식당마다 가격을 올리고 있어 한번 나가면 돈도 돈이지만 맛이 엉망이다. 귀찮아서 식당에 가면 늘 실망이다. 설익은 밥이 나오고 기름 둥둥 뜨는 찌개가 나오기도 한다. 외식이 좋고 편하지만 집밥이 최고인데 젊은 아이들은 앞뒤 생각하지 않고 사 먹기를 좋아한다. 외식이 전부 나쁘지는 않지만 힘들고 귀찮아도 재료 사다가 집에서 해 먹으며 사는 게 좋다. 아이들이 있는 동안 내 시간은 전혀 없어도 그게 사람 사는 것 같아 좋다. 내가 좀 힘들더라도 아이들이 와서 쉴 곳이 있고, 엄마가 있어 맛있는 것을 해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게 행복이다. 낮에 꼼지락거리고 나면 피곤해서 밤에 잠도 잘 자고, 낮에는 시간이 빨리 가서 딴생각하지 않아 좋다. 시간은 많은데 할 일은 하기 싫고 멍청히 집에 있다가 심심하면 쇼핑센터에 가서 쓸데없는 것 사지 않아 좋다. 앞으로 몇 번을 해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있을 때 잘하자"를 외치며 산다. 왔다가 가면 더 해주 못한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하는데 옛날 같지 않은 건강상태가 염려되어 천천히 한다. 아이들 생각에는 엄마는 늙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들 생각에 손주들을 더 많이 보여 주는 것이 효자노릇 한다고 생각하며 틈틈이 데리고 와 주니 고맙다. 요즘 같이 아이들을 낳지 않고 사는 세상에 금쪽같은 손주들 넷을 안겨주니 더없이 행복하다. 둘이 사는 공간에서 가까이 사는 둘째 아들 식구들도 합세하고 조카네 까지 오면 집이 꽉 찬다. 식사를 하고 놀고 웃고 넘어지고 다치고 울고 달래며 길게 느껴진 시간이 가고 다시 조용해진 집에서 환청을 듣는 나를 보며 웃는다. 만나서 좋아도 시간이 가면 시들해지고 가면 서운 하다. 부모자식의 인연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보고 싶고 그립지만 안 보고도 살아간다. 세 아이들이 자라 짝을 만나 자식 낳고 잘 산다. 명절이라고 집에 오는 자식은 만나서 좋은데 사정상 오지 못하는 자식은 마음 한편에서 그리움이 쌓인다. 세 시간 떨어진 곳에 사는 큰아들이 집으로 가고, 가까이 사는 둘째도 가고 난 텅 빈 집에서 몸은 편한데 벌써 아이들이 궁금하고 보고 싶다. 임신 중인 딸이 오지 못해서 서운하고 보고 싶은데 어쩌겠는가? 두 달 뒤면 해산을 도와줄 것이니 그때 가서 보면 된다. 시간은 쉬지 않고 간다. 만나면 헤어져야 하고 또 만난다. 환청도 며칠 지나면 사라질 것이고 조용한 집에서 남편과 나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살기 좋은 세상에 보고 싶으면 가서 만나면 된다. 연말에 아이들로 가득한 우리 집을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몸이 조금 힘들지만 커다란 복이다. 자식들이 찾지 않아 외롭게 연말을 맞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화목한 가정의 축복의 은총 속에 새해가 시작되었다. 더 자주 만나서 더 많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는 복된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