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는... 마음이 따뜻한 친구가 산다

by Chong Sook Lee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늘 부족해하는 것이 인간이다. 주위에 아는 사람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가진 것도 많다.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살아주고 부족함이 없는데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바쁘다. 이럴 때는 가까운 숲으로 가서 나무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무들이 모여 사는 숲은 언제나 나를 환영한다. 오랜만에 찾아갔는데 어서 오라며 두 팔을 들고 따뜻하게 나를 품어준다. 어떻게 지내느냐, 그동안 왜 안 왔느냐, 묻지 않고 그냥 반겨준다. 마치 내 모든 것을 아는 듯이 포근하다. 세월이 가고 세상은 변하는데 여전히 숲은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시사철 찾아가는 숲은 나의 친한 친구다. 기쁠 때나 슬플 때, 괴롭고 힘들 때 나와 함께 한다. 말은 하지 않아도 숲은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 보지 못한 사이에 쓰러져 누운 나무들이 많다. 어린 나무들이 몰라보게 자라서 하늘로 솟아있고, 가느다란 나무들이 굵어져서 듬직하게 품에 안긴다. 계곡의 물이 얼고 녹고 를 반복하며 울퉁불퉁 누워있고 강아지가 밟고 간 발자국이 선명하다. 숲 속의 오솔길은 눈으로 덮여서 보이지 않아 산책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구멍 뚫린 채 서 있는 나무가 반긴다. 지난가을, 누군가가 다람쥐들 먹으라고 가져다 놓은 해바라기는 씨가 다 빠진 채 넘어져 누워있다.


멀리서 목청 큰 새가 인사를 하며 어서 오라고 한다. 무슨 새인지 숲 속이 쩌렁쩌렁 울린다. 주위를 돌아보아도 새들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여름에는 나뭇잎에 가려서 새들이 보이지 않는데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에도 보이지 않는 이유는 새들과 나뭇가지가 동색이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너가는데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다리아래를 내려가 본다. 눈이 쌓여있고 얼음이 두껍게 얼었는데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괜히 봄이 오고 있다고 억지를 부리고 싶다. 봄을 기다리지만 갑자기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년 이맘때, 갑자기 찾아온 봄 때문에 계곡물이 넘쳐 산책길로 흘러가서 통행이 금지되었던 기억이 난다. 넘쳐나는 계곡물로 산책길이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했던 생각을 하면 봄이 천천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이지만 조금씩 살며시 다가오는 것이 한꺼번에 왔다 가버리는 것보다 좋다. 올해는 눈도 별로 많이 오지 않고 날도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이다. 이대로 가면 3월이면 쌓인 눈이 다 녹을 것 같은데 갑자기 찾아오는 동장군 때문에 김칫독이 깨지기도 한다는 2월이 남았으니 어떨지 모르겠다.


순백의 하얀 담요를 덮고 있는 숲 덕분에 산책길을 걷는 나도 하얗게 옷을 입는다. 내 마음도 하얀 눈을 닮아가며 욕심을 내려놓고 나무사이를 걸어 본다. 여기저기 서있는 나무들이 서로를 쳐다보고 의지하는 모습이 예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을 향하고 맘껏 사랑하며 순응하는 자연이다. 마음대로 안 된다고, 뜻대로 안 된다고 짜증 내는 인간들이 자연을 보고 배울 것이 많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오솔길이 보여서 숲 속으로 들어간다. 숲으로 들어가 보니 하얀 설국이다.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고요한 숲 속에서 자연은 겨울을 만끽하며 땅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봄을 기다린다.


아무것도 없는 숲에서 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솔길을 오르내리며 음지와 양지를 지나 언덕 위에 있는 양지바른 곳에 서서 앞에 펼쳐진 풍경을 음미한다. 이곳에 올 때마다 좋은 기운이 돌아서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 날 지상의 삶을 끝낸 뒤에도 찾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어 나무가 곱게 자라고 계곡이 흐르고 뒤에는 병풍처럼 언덕이 있어 감싸 안아주는 듯 포근한 곳이다. 명당 같은 곳을 지나 숲을 빠져나와 산책로를 따라 걸어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햇살이 길에 무늬를 만든다.


자연은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다. 허세를 부리지 않고 잘 낫다고 뽐내거나 으스대지도 않는다. 옆에 서 있는 나무가 기운이 다해 기대면 피하지 않고 어깨를 내어준다. 나무를 보며 걸으면 어느새 나무와 친구가 된다. 아무 말없이 옆에서 응원해 주는 마음 따뜻한 친구 같다. 시기나 질투를 하지 않고 뒤에서 남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손익을 계산하지 않아 좋다. 봄이 되면 봄같이 따뜻한 마음으로, 여름에는 뜨거운 사랑으로, 가을과 겨울에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항상 옆에서 지켜주는 숲이 있어 좋다.


온갖 새들이 노래하고 다람쥐들이 숨바꼭질하며 노는 눈 덮인 계곡을 따라 걸어본다. 몇 년 전에 꽁꽁 얼은 계곡을 걸으며 짜릿하던 생각이 난다. 걸을 때마다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 무섭기도 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하나" 하고 걸었던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파란 하늘이 세상을 비추는 아침에 숲이 주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다. 겨울에도 조용히 봄을 준비하는 숲처럼 나도 무언가를 준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렌다. 눈부신 햇살이 어깨에 내려앉아 나의 발길을 밝게 비춰준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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