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져보는 조용한 시간이다. 딸의 출산을 앞두고 딸과 사위틈에서 무엇부터 도와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사이 외손자는 외할머니가 온날 기다렸다는 듯이 신호를 보냈다. "제발 내가 갈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는 내 마음을 읽은 것 같다. 이곳에 오는 비행기가 3시간 연착해서 공항에서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는지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동네 한 바퀴를 걸은 것 밖에는 없는데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져 일찍 자고 일어났는데 소식이 왔다는 말에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다.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손자가 48시간이 지나도록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 분만을 유도해도 소식이 없어 아무래도 제왕절개를 해야 하나 보다 생각하고 2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산기가 있어 51시간 만에 아기를 출산하게 되었다. 한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때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그토록 오랫동안 마음을 졸이게 하고 걱정을 시키더니 나올 때가 되니까 나오는 것을 보면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느낀다.
물론 의학이 발달되어 좋은 날을 잡아 수술을 하여 출산을 하는 세상이지만 끝까지 자연분만 하기를 원하는 딸이 기어이 해 내었다. 정말 기특하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벌써 체념하고 수술을 받았을 텐데 끝까지 버티는 것을 보며 내 딸이라도 대견하고 존경스럽다. 그렇게 태어난 손자가 요람에서 자고 있는 평화로운 아침에 내가 이런 시간을 가져도 될까 하는 마음에 안절부절못하며 부엌을 서성인다.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픈 산모를 위해 점심을 해주려는데 어제 먹고 남은 닭국물에 칼국수를 해 주려고 밀가루 반죽을 준비한다. 칼국수가 산모에게 좋을지 모르겠지만 열흘동안 삼시세끼 먹어온 미역국에 질릴까 봐 오늘은 딸이 평소에 좋아하는 닭 칼국수를 해주고 싶다.
칼국수 3인분을 만든다.
밀가루 3컵에 기름 한 숟갈과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한다.
말랑말랑한 반죽을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10분 정도 숙성시킨다.
반죽을 숙성시키는 동안 고명을 준비한다.
호박, 양파, 파프리카와 버섯을 채 썰어 놓고
닭국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국물을 끓이는 동안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는다.
잘라놓은 반죽에 밀가루를 솔솔 뿌려서
밀대로 얇게 밀어 돌돌 말아 놓는다.
(미는 것은 힘센 사위가 했음)
말아 놓은 반죽을 가늘게 썰어 놓는다.
국물이 용솟음을 치고 끓기 시작하면
준비해 놓은 국수를 집어넣고 어느 정도 익으면
썰어놓은 야채를 넣어 익힌다.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그릇에 칼국수를 담고 파와 다진 양념을
얹어서 딸과 사위에게 한 그릇씩 떠 주었더니
딸과 사위가 맛있다며 두 그릇씩이나 먹어서
너무 기분이 좋다.
산모가 잘 먹고 어서 빨리 회복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데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손가락 몇 번 더 움직이면 딸이 원하는 음식을 해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앞으로 얼마나 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 원하는 것을 최대한 다 해주고 싶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애로 보인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 해주며 예쁜 손자를 옆에서 볼 수 있게 해 준 딸이 고맙다. 내 딸로 태어나서 고마운 딸아. 남편과 아기와 오래오래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