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봄이 특별한 이유

by Chong Sook Lee



봄이 와도 특별하게 달라지는 게 없는데도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여름이 따라오고 그만큼 또 다른 겨울이 다가오는 시간도 빠르게 온다는 것을 알아도 기다린다. 잠시 왔다가는 봄을 겨우내 기다리다가 막상 봄이 오면 봄이 왔다 간지도 모르고 봄을 보내버린다. 봄이라는 게 원래 요사스럽고 앙큼해서 살며시 왔다가는 줄 모르고 막연히 기다리다 보면 봄은 흔적도 없이 여름에게 자리를 내주고 꼬리를 감추는데 한없이 기다린다. 봄이란 행복과 같다. 행복을 찾아 먼 길을 떠나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기도 하고, 허공을 헤매가며 행복을 만나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는 행복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서 인지 행복이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도 모르고, 바로 앞에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한다.


삶의 기쁨은 특별한 것에서 오지 않는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때도 행복할 수 있고, 작은 꽃잎이 피어난 것을 보며 삶의 환희를 느낀다. 하늘에 놀러 온 구름에도, 봄비가 내려 깨끗해진 길거리에도 행복이 있다. 물질적인 행복도 있지만 마음을 열면 더 많은 행복을 만난다.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때로는 행복을 만나게 된다. 횡단보도를 같이 건너며 시작된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져 친구가 되기도 한다. 며칠 전 길을 건너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는데 어제 또 우연히 동네에서 만나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눴다. 친한 사람은 만날 수록 좋고, 새로 알게 된 사람은 새로운 맛에 좋다. 동네를 돌면 아는 길이라 정겹고, 멀리 가는 여행은 모르기에 새로워서 좋다.


삶은 어차피 여행이다. 똑같은 하루가 없고 같은것 같아도 매일매일이 다르다. 날씨도 다르고, 사람의 마음도 늘 바뀐다. 아침에 햇살이 비추더니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다가 비가 오는가 하면 다시 햇살이 보인다. 좋아하는 사람이 때로는 미워지기도 하고 짜증스럽기도 하다가 다시 또 좋아진다. 생각하면 한없이 살고 싶기도 하고 모든 것이 허무하여 만사가 다 귀찮을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오래 사는 게 좋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적당히 살다 가는 것도 괜찮다 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이 변해도 무섭게 변한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가까워진다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사람이 할 일을 대신하는데 사람은 무엇을 하고 살지 궁금하다. 어떻게 되겠지 하다가도 끔찍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이야 인간이 인공지능을 조정하지만 어느 날 인공지능이 우리보다 앞서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잠그면 우리는 꼼짝 못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윤택해진 것은 좋은데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카드로 사는 세상이 되어 현금이 없어지고 돈을 셀 줄 모르고 산다. 어쩌다 물건을 사고 현금으로 계산을 하려면 돈계산을 못하는 직원을 본다. 엄연히 계산대에 얼마를 거슬러 주어야 한다는 액수가 있음에도 계산을 못해서 쩔쩔맨다. 머지않아 돈이 없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세상은 편리함에 따라 달라진다. 빨래판에 빨래를 하기 전에는 돌 위에 빨래를 비벼서 빨았고, 지금은 아무리 많은 빨래도 세탁기가 한다. 손수건 하나, 양말 한 짝도 손으로 빤다는 생각 없이 산다.


세상은 살기 좋아졌어도 기후변화를 어쩌지 못한다. 뜬금없이 추워지고 더워지고 폭설과 폭풍과 지진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는다. 걱정을 하면 재미없는 세상이라 좋은 것만 생각하고 싶은데 뉴스를 보면 심란하여 뉴스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어차피 세상은 변하는데 뉴스를 보고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다지만 뉴스를 안 보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칠 것 같은 생각에 자꾸 보게 된다. 정치인들 싸우고, 사기꾼들 날뛰고, 마약에 취하는 이야기뿐 좋은 이야기는 없는 세상이 되어 간다. 길거리에 나온 노숙자들은 일거리를 찾지 못해서 나온 걸까? 아니면 일하기 싫어서 그렇게 사는 걸까? 힘든 시간을 넘어가게 무엇이든지 도와달라는 종이를 들고 담배를 피우며 서있다.


도시마다 나라마다 노숙인이 많아지고 일거리는 없어지고 힘든 일은 못한다고 한다. 대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던 시절이 가고 혼자만 살면 되는 세상이다. 책임 질 식구가 없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라 좋은데 인구가 감소되어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한다.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 모르고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래도 행복을 찾는다. 막연히 봄을 기다리고 내일을 기다리고 무언가를 소망하며 산다. 삶은 계절이다. 오늘이 가고 또 다른 오늘이 오면 꽃이 피고 지고 비바람 눈보라를 맞으며 고난의 날을 보낸다. 희생과 헌신으로 죽지 않으면 다시 태어나는 부활은 없다. 매일 매 순간 찾아오는 모든 슬픔이나 고통은 인내의 꽃으로 피어난다.


겨울의 혹한을 견뎌야 봄이 오듯이 행복은 그냥 오지 않는다. 산고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으면 새생명의 기쁨을 모르고 깊은 통찰 없이는 삶의 지혜는 생기지 않는다. 봄 속에 겨울이 있고 겨울 안에 봄이 있음을 알자. 지금 하기 싫어도 피하지 않으면 무언가 남는다. 싫다고 안 하고 두렵다고 도망가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힘들어도 고비를 넘기면 익숙해지고 지루해도 재미를 붙이면 즐거운 시간이 된다. 겨울은 겨울대로 즐기면 되고, 봄은 봄대로 맞고 보내면 된다. 구름끼고 바람불고 우중충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화창한 봄날이 온다. 아직 봄이 안 왔다고 실망하기보다 새카만 흙을 뚫고 하나 둘 세상 밖으로 나오는 예쁜 새싹을 보면 희망이 생긴다.


봄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니 봄비를 맛있게 마시는 화초들의 행복이 보인다. 남의 행복을 보며 나도 행복해지는 진리를 배우는 시간이다. 이래서 봄이 특별한가 보다.


(사진:이종숙)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