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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Apr 05. 2020

내일... 오세요



겨울을 견딘 빨간 마가목 열매가 봄꽃 처럼 피어있다.(사진:이종숙)


계속되는 불경기로 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텅 빈 거리에서 손님이 들어올 리가 없는데도 혹시나 한 명이라도 들어올까 해서  버티다가 문을 닫은 가게가 너무나 많다. 가게의 유리창에 하얀 쪽지가 붙어 있다. " 가게문을 닫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곧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공손한 글을 써서 붙여 놓았다. 참으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몰려온다. 문을 닫은 몇 개의 가게를 지나다 보니 어느 한 가게에는 다른 가게와 다른 글이  유리창에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오늘은 문을 닫습니다. 내일 오세요." 하는 문구를 읽어 보고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가게 안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사정이 있어서 오늘만 닫았나 보다 생각하고 지나쳤다.

며칠 후 다시 그 길을 지나치게 되어서 걷다 보니 그 가게는 여전히 사람들은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만  출입문에는 "내일 오세요."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일도 안 하고 장사도 안 하는데 저들은 안에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하며 무심코 지나갔지만 문에 적혀있는 문구가 자꾸만 신경이 갔다. 왜 저 가게는 매일 "내일 오세요."라는 글을 써 놓을까? 내일은 불과 몇 시간만 지나가면 내일이라는 날이 오는데 왜 저 사람은 사람들을 우롱할까? 내일 문을 열거라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이 올 텐데 왜 사람들을 놀리며 거짓말을 할까 생각하니 너무나 괘씸하고 화가 났다. 사람이 없으면 차라리 나을 텐데 일을 하면서 내일 오라면서 문을 닫아놓고 있는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처음에는 아마도 가게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무엇을 고치거나 하려니 생각을 했는데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게 아니고 전혀 다른 모습의 희귀한 상황이 포착되었다. 그들은 가상 연극을 하고 있었다. 손님이 아무도 없는 가게에는 가상의 손님들이 있었다. 여러 가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네킹에 옷을 입혀 의자에도 앉혀놓고 창가에도 세워놓았다. 기다리는 손님, 돌아다니는 손님도 있었고 무언가를 사려고 물건을 만지작 거리는 손님도 있었다. 주인과 종업원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손님을 도와주고 물건을 포장해주며 가방에 넣어주고 돈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한다. 내 눈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 가게는 그들만의 무대가 되어 너무나도 바쁘게 움직이며 장사를 한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저 사람들이 아마도 미친것이 아니라면 저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옷도 멋지게 차려 입고 얼굴에 화장도 예쁘게 하고 머리도 멋지고 단정하게 빗고 깔끔한 모습으로 일을 한다. 마치 그들 앞에 진짜 사람 손님이 있듯이 웃고 얘기하며 물건을 권하기도 하고 설명도 하며 진지하게 손님을 대한다. 나는 '내일 오세요'라는 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어느 날 그 가게를 열게 되는 날 오라는 소리인지 아니면 매일매일 와서 자기네 쇼를 보라는 소리인지 나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사람을 놀리는 것도 어느 정도지 매일 '내일 오라' 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들의 쇼는 그 뒤로 한참을 계속되었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지만 가게 안에서는 매일 가상 쇼를 하였다. 문 옆에 한 사람이 서서 손님을 맞고 물건을 보여주고 골라 주기도 한다. 맘에 안 맞는지 손님은 머리를 흔들며 다른 것을 바라본다. 종업원은 또 다른 물건을 권하기도 하고 얼굴에 대 보기도 한다. 마음에 들은 손님은 카운터로 가고 계산을 마친 손님이 나가게 문도 열어주고 인사를 한다. 이 모든 행동은 가상 행동이다. 오직 주인과 종업원이 손님도 되고 종업원도 된다.  손님이 많으면 행동도 많아지고 손님이 없으면 천천히 움직인다. 바쁜 것도 안 바쁜 것도 모두 정해놓은 대사대로 움직인다. 처음에 나는 호기심으로 가기 시작했는데 갈 때마다 무언지 모르게 이어지는 상황들이 흥미로웠다.

거의 한 달을 밖에서 몰래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나는 이제 관객이 되고 그들은 연극배우가 되어 하루하루 함께 하게 되었다. 그들과 나는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그들과 소통하게 되었고  아무런 언어나 인사가 필요 없이 서로의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나는 심심하여 구경을 했고 그들은 그들의 말 못 할 사정이 있어 쇼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지켜보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대화를 하려 지도 않았다. 나는 하는 일도 없고 집에만 있기 힘들어 매일매일  그 골목으로 발길을 향한다. 여전히 싸인은 문에 붙어있지만 오늘은 그 누구도 가게 안에 없다. 물건을 파는 사람도 물건을 사는 사람도 없이 가게는 불이 꺼져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심히 그 가게를 지나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며칠이 갔다.

그들이 잊혀갈 즈음 그 골목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곳 에는 주인 하나만 우두커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 여전히 내일 오세요".라는 종이가 문에 붙어 있고 아무런 쇼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의 눈치를 보며 가게를 들여다보았다. 넋이 나간 주인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살며시 문을 두드렸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어주며 앉으라고 의자를 가리킨다. 무심코 쳐다본 그는 눈물을 흘리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많이 아팠고 시한 생명으로 살아왔다. 그녀가 더 이상 살지 못하는 것을 안 그녀는 남편에게 소원을 말하였다. 어차피 가게는 닫혀 있고 손님들도 안 오는데 자기가 떠날 때까지만 소꿉 장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부인의 소원대로 아무도 없는 가게에서 손님이 되고 주인이 되며 종업원이 되며 쇼를 한 것이었다. 어차피 오래 살 수 없기에 막연한 안내글 보다 '내일 오세요 '라는 문구를 쓴 것도 그녀가 원하던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내일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소망 때문에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서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떠나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최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상냥하고 친절하게 웃으며 손님을 대하던 그녀는 그렇게 " 내일 오세요". 를 이야기하며 떠났다. 과연 우리에게 내일은 언제인가? 몇 시간 뒤에는 우리에게 내일이라는 날이 오지만 기약할 수 없는 날도 우리는 내일이라고 한다. 오지 않은 날, 올 수 없는 수많은 내일을 기다리며 우리는 무엇을 할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맥없이 스러져가는 이 시대에 나름대로 생각을 적어보았다. 우리의 아니 나의 내일은 언제이고 내일을 기대하며 '내일 오세요' 라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문을 닫습니다. 내일 오세요.




지붕에 매달린  고드름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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