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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Apr 06. 2020

나이 들어감이... 너무 행복하다


기다리는 봄은 언제 오시려나.(그림:이종숙)


어쩔 수 없다. 생전 안 늙을 것 같던 나도 이제 늙어가나 보다. 나이 들어가면서 나빠지는 것이 눈인데 요즘 갑자기 눈이 뿌연 증상이 나타난다. 지난 12월 말에 안과 전문의를 통해 눈 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특별한 눈의 변화가 없단다. 일 년에 한 번씩 정기검사를 받는데  몇 년 전에 시작된 백내장 외에는 건강하다고 했는데 요즘엔 눈이 자꾸 속을 썩인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 한쪽이 절인듯한 느낌이 든다. 그럴 때는 그저 손으로 몇 번 마사지해주고 툭툭 건드려 주면 괜찮아진다. 나이 들어서  여기저기 아프고 고장이 난다. 아직은 노인이라는 말이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몸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불과 2년 반 전 만해도 식당을 운영하느라 날쌘 제비 못지않게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였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굼벵이 사촌이 된 듯 매사가 느려졌다. 무엇이든지 빨리하고 틈틈이 쉬면서 여러 가지를 해도 피곤하지 않던 몸이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나의 몸은 노인의 몸으로 변형되어 간다. 하루가 다르게 움직임이 싫어진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조금 앉아 있다가 누워 버린다.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몸이 원한다.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금방 반응이 온다. 하면 감기가 오고 몸살기도 느낀다. 세상 사는데 신경을 안 쓰고 살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면 당장에 신호가 온다. 정신도 없고 시끄러운 것도 싫다. 그토록 좋아하던 시끄러운 음악도 싫어지고  조용한 음악만 선호하게 된다. 사람들이 많은 것도 정신없고 복잡한 것도 싫다. 아무리 좋은 것도 절차가 복잡하면 짜증부터 나고 무엇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은 피한다. 특히 요즘에는 눈도 오고 날씨도 춥지만 코로나 19로 집안에만 있다 보니 더욱 게을러진다.

이 비상사태가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는 상황이니 막연히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 특별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도 아프지 않고 하루하루 넘어가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은 손주들 때문에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기 시작한 지 3주가 지났으니 이제는 조금씩 적응을 하는 것 같다. 전염병 때문에 생각지도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손주들이나 아이들에게 황금 같은 시간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휴가를 내기도 하는데 이런 좋은 휴가가 없다. 그것도 1주나 2주가 아니고 그야말로 긴 휴가이다. 물론 일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애들과 함께 있어 몸은 힘들어도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좋기도 하고 어린이집에 내던 거금도 안 내니 나가는 지출 줄어든다. 식당이 문을 닫아서  외식을 못하니 나름 저축도 된다.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을 잘해야 저축을 한다.


내려가며 보는 세상도 아름답다.(사진:이종숙)



죽을 둥 살 둥 일하여 번 돈을 쓰기는 너무나 쉽다. 두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데 그것을 벌겠다고 바리 동 대며 살아간다. 그렇게 해서라도  경력단절이 안되기 위해 계속 일을 해야 하니 부모와 자식이 얼굴 볼 새도 없이 바쁘게 살아왔는데 이젠 그야말로 24시간 같이 생활을 하게 됐다. 처음 며칠은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서로를 더 많이 알아가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며 가족 사랑을 배운다. 주중에는 직장으로, 어린이집과 학교로 만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에 주말이 되면 놀이터와 외식으로 관계를 치장해 왔던 지난 시간들에서 부딪히며 살아가는 일상에서 따뜻한 정을 배운다. 저녁에 만나 잠을 자고 아침에 헤어지는 관계에서 하루 종일 함께 사는 가족의 형태를 통해 사랑을 느끼며 좋아도 싫어도, 짜증 나고 피곤해도 참고 양보하며 기다리며 이해하는 것을 보고 배우며 실천한다.


직장동료와 선생님들길들여져 그들과 더 친하고 그들이 더 좋았던 시간에서 가족의 소중함과 가치를 가슴에 담는 시간이 되었다. 어른들도 친구들과 동료들과 친분 때문에 밖으로 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일을 핑계로 외면했던 가정을 다시 보게 되었다. 직장과 학교 그리고 친구들과의 교류가 전부였던 삶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우리가 늘 지향했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본다. 전염병이 우리를 집에 가두었다고 생각도 들지만 지난 삶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사람들은 거의 가난과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하며 오직  현재만을 위한 방종에 가까운 자유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일이 없는 삶에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만 살면 된다는 이기심과  배만 채우려는 욕심만이 흥행하는 삶이 남겨놓은 현재라는 생각도 든다.


무엇이 우리를 이런 지경에 까지 오게 하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돈이면 못할 것이 없는 문명 위주의 삶에서 재난과 비상사태를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배운다. 국가의 시책을 따라야 하는 이 시기에도 거부하여 사회를 도탄에 빠지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상상할 수 없다. "나만은 괜찮을 거야." "나는 해도 될 거야" 식의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전염병이 확산되고 경제는 죽어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교육을 받고 사회생활을 하며 그냥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배려와 이해 그리고 법을 지키며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 때 우리는 성숙해지는 것이다. 말로는 다 알아도 막상 하려면 안 되는 것들을 실천할 때 진정한 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종모양의 새밥을 만들어 걸어놓랐다.(사진:이종숙)

부모님이 겪었던 전염병 이야기를 들어서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무섭게 세상을 뒤집어 놓는 것은 상상밖의 일이다. 세월이 가는 사이에 지금껏 살아온 나의 삶을 글로 쓴다면 적지 않은 이야기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절대 잊지 않겠다던 것들도, 잊히지 않는 것들도 세월 따라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 그토록 또렷했던 기억들이 하나씩 둘씩 내 머리를 떠나가고 내 가슴을 다독거린다. 하루가 지나고 다른 하루가 내게 왔는데도 알아채지 않고 무시한다면 나의 매일은 죽은 날들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보낸 시답지 않은 하루를 원했던 많은 이 들의 애틋한 마음과 간절한 염원을 대신하여 나이 들어감을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 19가 준 이 귀중한 시간에 나에게 온 이 소중한 하루는 다시 내게 오지 않는다. 나이 들어감이 행복하다.


내가 젊었다면 지금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여러 가지  많은 걱정을 하며 순간순간을 살아가야 한다. 앞으로 세상은 많이 변해 가는데 그 변화를 대응하며 대처하며 살아가려면 무척 힘이 들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버리고 또 다른 삶을 배우며 적응해야 하는데 나는 나이가 들어서 너무 좋다. 나이 들어서 나쁜 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일을 안 해도 되고 뭐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심심하면 움직이고 귀찮으면 놀면 된다. 이 모든 것들이 젊었을 때 원하던 것들인데 너무 좋다. 언제나 편한 생활을 할 수 있나 하며  평생을 기다려온 노년의 삶인데 불평불만이 다 무엇인가? 자유롭고 편하고 평화로운 노년의 삶이 너무 좋다. 눈이 조금 희미하면 어떤가. 몸이 조금 아프고 불편해도 사는데 이상 없다.


그동안 내게 왔던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앞으로 내게 올 하루하루도  기대된다. 오랫동안 나를 이끌어준 하루하루도 고맙고 앞으로 나를 데리고 다닐 미래의 하루하루에게는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노쇠하는 몸이야 자연의 현상이니 어쩔 수 없지만 열심히 삶을 사랑하며 살아온 나의 열정은 마지막까지 간직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기적이듯이 앞으로 남은 삶도 기적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부나 권력 그리고 지위의 욕심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은 은총이다. 어제를 추억하고 용서하고 현재 속에서 작은 꽃을 피우며 미래를 노래할 수 있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나. 조촐하고 평안한 마음 안에서 하루하루를 맞고 보내면 된다. 불평과 불만은 없는 것을 원하고 내가 갖고 있는 행복을 받아들이지 않는데서 생긴다. 나이 들어가는 것은 하늘이 준 커다란 축복이다.

나이가 들어감이  나는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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