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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Apr 07. 2020

겨울... 이제 그만 가세요


봄이 오는길은 멀기만 합니다.(사진:이종숙)


웬일인지 모르겠다. 오라는 봄은 안 오고 또 눈이 펑펑 쏟아진다. 그제는 지붕에 눈이 녹으며 물이 흐르더니 찬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굵은 고드름을 만들어서 지붕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날씨가 차니 봄은 올 생각도 못한 채 내리는 눈에 밀려 세상은 다시 겨울의 모습이 되었다. 아침부터 내리는 눈은 하루 종일 비실비실 내리는데도 조금씩 쌓여서 길거리를 하얗게 덮는다. 눈이 온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아무래도 이러다간 살만 찌겠다 싶어 산책을 가기로 했다. 오늘은 평소에 걷던 반대 방향으로 들어가니 굵은 나무들이 서 있는 산책길이다. 양쪽으로 뒤뜰이 있는 골목길이다. 집집마다 각양각색의 담이 사이좋게 골목을 향해 서 있다. 나무 담이 있고 철망 담도 있다. 담이 너무 오래되어서 다 쓸어질 듯이 보이는 집도 있고  어느 집은 담을 새로 해서 깔끔하고 튼튼해서 보기 좋다.


담 너머로 보이는 뒤뜰이 엄청 넓다. 밭도 있고 커다란 데크도 보인다. 여름 같으면 지나가다 밭을 잘 가꾸고 있는 집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주인과 이야기하며 채소 가꾸는 정보도 서로 나눌 텐데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눈이 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은 여전히 오고 우리들은 열심히 걷는다. 큰길을 건너서 걸어가다 보니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세탁소가 멀리서 보인다. 평소 같았으면 잠깐 들려서 인사라도 하고 갈 텐데 지금은 서로 방문을 자제하는 시기이다 보니까 그냥 먼 데서 바라만 보고 간다. 앞에서 모르는 사람 두 명이 걸어오다가 우리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얼른 피해서 딴 골목으로 급하게 간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다정하게 웃고 얘기하는 시기가 아니니 그러려니 한다. 눈발이 더 세어지니 우리도 발걸음이 빨라진다. 운동을 하려면 빨리 걸어야 하지만 평소에 우리는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천천히 걷는다. 가다가 사진도 찍고 여름 같으면 들꽃도 구경하는데 지금은 삭막한 겨울이라 그냥 걷는다.


동네가 생긴 지 50년이 넘은 동네라서 뒷길도 넓고 집과 집 사이도 아주 넓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질 줄 몰랐었나 보다. 요즘 새로 짓는 집들은 차 2대가 다닐 수 없이 길이 좁다. 한쪽에서 차가 오면 다른 쪽 에서 오던 차는 기다렸다가 가야 할 정도로 길이 좁다. 그러니 옛날 동네에서 살던 사람들은 새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무도 많고 집도 크고 길도 넓고 다 좋은데 집이 낡아가니 이사는 가야 하지만 새동네는 너무 살벌하여 그냥 사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이사를 안 가고 31년째 똑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이유다. 한참을 걸어가니 운동장이 나온다. 끝없이 펼쳐진 학교 운동장에 아무도 없다. 휴교를 하여 조용하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이 끝나고 학부모들이 데리러 오고 가며 정신없이 바쁠 텐데 텅 빈 운동장에는 몇 그루의 나무만 휑하니 서 있는 모습이 쓸쓸하다. 학교 운동장에 있는 놀이터에도 아이들이 매달려서 노느라 한창일 텐데 아무도 놀지 않고 외롭게 놓여 있다.

동네길도 이렇게 걸어보니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아 굳이 차 타고 멀리 산책을 안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는 기다란 빌딩이 있다. 식료품 가게도 있고 어린이 집도 있고 쇼핑센터에 작은 가게들이 나란히 있는 빌딩이다. 의사 사무실 도 있고 병리검사실도 있다. 약국도 있고 음식점도 있어 주차장이 차를 댈 수 없이 바쁘던 곳인 데  텅 비 어 있어 조용하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외출 자제령 때문에 모두가 집안에서 일을 하고 전화로 상담을 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텅텅 비어있다. 어린이집도 지나가다 보면 많은 아이들이 꽉 차 있었는데 불도 꺼져 있는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언제 모든 것들이 정상으로 돌아올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 빌딩 앞을 지나 동쪽으로 걸어 올라가 보았다. 눈은 더 많이 오고 바람이 불어 머리를 들을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걸어간다.


큰길인데 오고 가는 차도 없고 걷는 사람도 우리 둘 뿐이다. 쇼핑센터와 학교가 있어 항상 분주하던 길인데 눈도 오지만 삭막하리만치 조용하다. 너무 눈이 많이 와서 앞이 잘 안 보여 골목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큰길에서 벗어나니 바람이 뒤에서 불어서 걷기가 훨씬 쉽다. 골목이 여러 갈래로 있어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으로 들어섰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아이들 키우기 좋아 보인다. 문만 열고 나가면 아이들이 나와서 놀 수 있어 금방 친구가 된다. 우리가 31년 전에 살던 동네도 이처럼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 집 뜰에 그네를 사다 놓았는데 동네 아이들 놀이터가 되어  그네 있던 잔디가 다 벗겨졌던 생각이 난다. 그때만 해도 문을 열어 놓고 아무나 들랑거렸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 옆에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아이들의 전용 놀이터라서 사시사철 아이들이 바글바글 했던 기억이 난다.

작은 집들을 지나 큰 길가로 나오니 커다란 버스가 텅 빈 차로 우리 앞을 지나간다. 평소 이 시간에 앉을자리가 없이 사람들이 꽉 차 있었는데 아무도 타지 않은 버스가 흉흉해 보인다. 빨리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길을 건너 다시 산책길로 접어들어 걸어가다 보니 아까 우리를 보고 어떤 사람이 피하던 그 길로 접어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피하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 줄 몰랐다. 괜히 싫은 사람을 만들고 미운 사람을 만들며 살 필요가 없는데  만나면 헐뜯고 흉보며 살아왔던 인간의 교만이 지금의 사회를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긴 골목길을 한참을 걸어오는데  동네는 죽은 듯이 아무 소리도 없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집에서 생활을 할까. 눈이 와서 새소리도 안 들린다. 4월 초에 웬 눈이 이토록 쏟아질까. 야속한 하늘을 바라본다. 아직도 더 많은 눈을 쏟아낼 것 같다. 머리에도 목도리에도 눈이 많이 쌓여 남편과 나는 서로 눈을 털어주며 집을 향한다. 이 눈이 전염병에 도움이 되어 눈과 함께  다 녹아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천초목이  다 푸르고 꽃이 피고  벌 나비가  날아다니는 봄이 와야 할 이 시기에 눈이 웬 말인가?

겨울... 이제 그만 가세요.(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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