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을 가로질러간다. 파란 하늘에 새 한 마리가 신나게 날며 멋진 곡예를 한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 찬바람이 불어 코트에 달려있는 모자를 쓰고 걷는다. 웬 바람이 이렇게 찬 지 겨울이 다시 오는 듯하다. 겨울이 가기 싫어도 가야 하는데 가다 말고 중간에 서서 꽃샘바람을 불어대며 심술을 부린다. 그래도 괜찮다. 맞불어 치는 바람은 쌀쌀해도 등을 비추는 햇살은 따뜻해서 좋다. 하늘은 푸르고 잔디는 파랗게 자라고 민들레가 여기저기 피어난다. 겨울이 가기를 기다린 것 같이 봄이 오기가 무섭게 민들레가 나온다. 파란 잔디에 핀 샛노란 민들레가 꽃인양 앉아 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눈치 없이 제일 먼저 피어난다. 눈치 없는 것으로 말하자면 나도 한몫하는데 나보다 한술 더 뜬다.
사람이 눈치가 빨라야 떡하나라도 더 얻어먹는다는데 눈치를 보며 살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내 길을 걸으면 된다. 타인의 생각과 의견을 생각하고 신경을 쓰면 눈치를 보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글도 그림도 남의 눈치를 보면 남의 것이 될 뿐 내 것이 안된다. 나만의 방식대로 쓰고 그리면 된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작품 역시 보는 사람에 따라 명작이 되고 졸작이 된다. 물론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하는 명작이 있지만 인기 없는 졸작도 작품이다. 시시하고 평범한 졸작으로도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도 있다.
보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은 쉽게 또는 무심코 평을 하여도 한 편의 글이나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작가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여 작품을 끝낸다. 특히 요즘에는 추상화 나 추상적인 글이 많아져서 작가가 의도하는 작품의 뜻이 오묘하다. 알듯 모를 듯한 작품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좋아하는 취향도 다르다. 최고의 작품과 졸작의 작품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고가의 예술품을 보고 있다. 아무런 특이한 것이 보이지 않아도 무언가가 있다. 섬세하게 만들어낸 작품에는 완벽하여 가슴이 띈다. 한 줄의 글 안에 명언이 들어 있어 삶의 지표를 삼기도 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욕심이 생긴다. 더 잘 쓰기 위해 포장을 하고 더 잘 그리기 위해 덧칠을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아닌 내가 글에서 보이고 그림에는 혼이 없고 내가 아닌 타인이 있어서 나는 눈치 없이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나는 내가 있는 글이 좋고 내가 보이는 그림이 좋다. 명작이 되고 명화가 되는 것은 나중문제다. 최선을 다해 내 생각을 표현할 때 진정한 내가 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눈치를 보며 남이 원하는 대로,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싫어도 좋은 척,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며 사람 상대를 하다 보면 피로가 쌓이지만 먹고살기 위해 눈치를 봐야 하고 상대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
오랫동안 식당을 경영하며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살았다. 좋아도, 싫어도 내색하지 않고 살았다. 세상에는 갑과 을이 영원히 존재한다. 살더보면 갑이 되고 을이 되고를 반복하며 산다. 갑은 어깨를 펴고 을은 고개를 숙인다. 갑은 갑대로, 을은 을대로 장단점이 있고 순서가 바뀌기를 반복한다. 오늘은 갑, 내일은 을이 된다. 갑은 남이 만들어 주기도 하고, 자신이 을을 택하기도 하며 갑과 을은 항상 공존한다. 갑이라고 모두 같은 갑은 아니고 을도 역시 똑같지 않다. 갑에 보이지 않는 을이 있고, 을에도 보이지 않는 갑이 있어 갑과 을은 동급이다. 허름한 노숙인이 길거리에 놓여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명연주를 하자 가던 길 멈추며 관중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는 을같이 살지만 갑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옳은 것도, 곧은 것도 사람마다 기준이 있다. 삶은 정답이 없고 각자의 생각대로 답을 찾는다. 생각이 다르고 방식이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다. 오늘과 내일이 다르듯이 우리 모두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표현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다른 색으로 인생을 색칠하고 꾸미며 산다. 세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어제의 나를 나 자신도 찾지 못하고 오늘 또한 어떤 날이 될지 모른다. 나를 만나러 온 하루하루를 만나서 사이좋게 지내면 된다. 오늘은 내가 갑이 될지 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갑이면 어떻고 을이면 어떤가. 결국엔 갑과 을은 동행한다.
인간은 동등하고 세상은 공평하다. 받을 것 다 받고, 줄 것 다 주고 가는 게 인생이다. 아까워하지 말고 줄 것은 주고 내게 온 것에 감사하면 된다. 내 것이 아니면 나를 떠나갈 것이고, 내 것이면 나를 찾아올 것이다. 마음대로, 생각나는 대로 맘 편히 살면 된다. 창공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