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잠이 많아 새벽에 잠이 깬다. 저녁 9시가 되면 몸이 알아채고 신호를 보낸다. 하품이 나고 집중이 안되어 드라마나 영화도 다 귀찮다. 일찍 자면 새벽에 일찍 잠이 깨어 남들이 자고 있을 때 혼자서 할 일을 찾게 된다. 무언가 할 일을 찾다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밀린 정리를 하기도 한다. 한쪽에 모아놓고 버리지 못한 것을 꺼내놓고 쓰지 않는 물건을 찾아내서 마음을 결정한다. 앞으로 쓰지 않을 바엔 없애는 게 최고인데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은지 만지작 거리다 자리만 옮겨 놓는다. 언제 쓰려는 건지 모르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서 다시 넣어둔다. 틈틈이 정리를 한다고 하는데 아직도 집안 곳곳에 살림이 많다.
사용하는 물건보다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이다. 돈으로 계산해도 얼마 되지 않는 물건들인데 언제라도 필요하면 쓰려고 보관하며 산다. 문제는 '언제'는 오지 않는다 는 것이다. 어디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막상 찾으려고 하면 기억이 안 나고 찾는 것도 귀찮아 다시 사게 된다. 어딘가에 있는 물건을 사는 게 돈이 아까우면 안 사면 되지만 꼭 필요하면 찾는 것보다 사는 게 쉽다. 언젠가 쓸 것 같아 잘 둔다고 둔 것은 너무 잘 둔 탓에 꼭꼭 숨어서 보이지 않는다.
오래전 구두끈을 잘 보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버선과 함께 잘 모셔두었다. 왜 그렇게 했는지 나도 모른다. 괜히 버선과 구두끈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아서 같이 두었는데 막상 구두끈이 필요할 때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 결국에 구두끈을 새로 샀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나 버선을 신기 위해 열어본 상자에 버선과 구두끈이 얌전하게 들어 있는 게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같이 놓아둘 이유가 없는데 같이 두어서 찾느라고 고생한 적이 있다. 생각만 하고 정작 보관은 다른 곳에 해서 생긴 오류다.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많다. 분명히 이곳에 두었는데 날개가 달려 날아간 것도 아닌데 엉뚱한 곳에 엉뚱한 것들과 있어 찾아다니느라 온 집안을 뒤지게 한다.
아침 일찍 잠이 깼는데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애들 살림이라 집안 정리는 못하고 손가락 운동이나 할까 하는 생각에 유튜브를 본다. 그럴듯한 가짜뉴스가 진짜인양 유튜브를 겁 없이 돌아다닌다. 유튜브로 수익을 내기 위해 가짜뉴스를 만들어 사람들을 죽이고 살린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의문스럽다. 좋은 이야기 도움을 주는 이야기가 많은데 왜 그런 뉴스를 퍼트리는지 이해가 안 된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본다. 내가 주로 보는 것은 크라프트나 요리 채널이다. 정작 무엇을 만들지 않아도 만드는 것을 보면 좋다. 무언가를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수도 있고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정신 건강에도 좋다.
식구들이 잠을 자는데 일어나서 부스럭거릴 수 없어 가만히 누워서 잠을 청하지만 한번 나간 잠은 쉽게 돌아오지 않아 누운 채로 전화로 유튜브를 보는데 맛있게 생긴 블루베리 머핀이 눈길을 끈다. 이따가 낮에 만들어도 되지만 만들어 놓으면 딸과 사위가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하다. 아이들 깨지 않게 기계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부엌으로 가서 재료를 찾는데 블루베리가 없다. 괜찮다. 블루베리 대신에 초콜릿 칩을 넣으면 된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 레시피를 따라서 마른 재료와 젖은 재료를 각각 다른 그릇에 준비했다. 이제 모두 섞어서 머핀 틀에 부어 오븐에 넣고 굽기만 하면 된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은 반죽이 매끄럽지 않지만 대충 섞어서 구웠다. 20분 만에 맛있는 머핀 12개가 완성되고 온 집안에 맛있는 머핀 냄새가 진동한다. 맛있는 머핀 냄새로 잠이 깼는지 딸과 사위가 손자를 데리고 부엌으로 온다.
엄마 머핀 만들었네? 맛있게 생겼어.
응. 너희들 먹으라고 만들었어. 너희들 깰까봐 기계로 안 하고 포크로 섞었더니 꼭 비스킷 같이 생겼는데 먹어봐라.
우둘두둘한 게 정말 수제 비스킷 같아. 음음.. 너무 맛있어 엄마. 나도 다음에 만들게 레시피 줘요.
그래. 아침에 잠이 깨서 우연히 유튜브에 들어갔는데 맛있어 보여서 만들어봤어. 정말 맛있게 됐다. 사위도 하나 먹어봐.
네네. 잘 먹겠습니다. 와. 이거 너무 맛있어서 하나 먹으면 안 되겠는데요? ㅎㅎ
맛있으면 또 만들면 돼. 먹고 싶은 대로 많이 먹어.
엄마. 진짜 맛있어. 엄마 머핀이 세상에서 최고야.
정말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모님.
머핀 냄새처럼 행복이 넘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잠이 안 오는데 누워서 자려고 애쓰지 않고 애들이 좋아하는 머핀을 만들기 잘했다. 조용한 아침에 혼자서 영화를 보기도 그렇고 집안 정리를 할 수 없었는데 우연히 찾은 레시피 덕분에 애들이 좋아하니 나도 덩달아 하나 먹어본다. 정말 맛있다. 기계가 없다, 재료가 없다 하며 안 만들었으면 후회할 뻔했다. 오늘 아침에 잠이 일찍 깨서 무엇을 할까 고민했는데 오늘은 제대로 된 일을 한 것 같다. 오늘 일찍 일어나서 초저녁에 또 잠이 쏟아질 텐데 잠이 오면 자고 새벽에 잠이 깨면 무언가를 만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내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