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면 안 되는데... 큰일이다

by Chong Sook Lee



지금껏 나 자신이 효녀라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세상에는 효녀, 효자가 그리 흔하지 않다. 부모님 속 안 썩이고 마음으로 그리워하며 마음을 다해 존경하고 사랑하면 효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에서야 효녀가 그리 쉽게 되는 게 아님을 알아간다. 부모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걱정을 한다. 요즘에야 의학의 발달로 출산 전에 많은 정보를 알아내지만 옛날에는 임신이 되면 검사 한번 받지 않고 산달이 되어 출산을 하고 특별한 지식이나 상식 없이 자식을 키웠다. 그 옛날 유행하던 장티푸스라는 전염병으로 첫째와 둘째를 잃은 우리 부모님은 오빠와 나를 비롯해서 우리 육 남매를 애지중지 벌벌 떨며 귀하게 키우셨다.


자라면서 큰소리 한번 안 듣고 매 한번 안 맞고 자랄 정도로 특별한 일 없이 잘 자랐다. 어쩌다가 고집을 부려 부모님 속을 썩였어도 웬만하면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최선을 다해 효도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그건 내 생각일 뿐 부모님의 생각을 몰랐다. 20대 중반에 결혼을 하여 2년 살다가 캐나다로 이민 온 뒤 부모님은 밤낮으로 걱정하시고 애타는 마음으로 나를 보고 싶어 했을 텐데 오로지 나만 생각하며 살았다. 빡빡한 이민 생활을 살아내기 위해 악착같이 살다 보니 부모님 에게 전화 한 통도 돈생각하며 하지 않았다.


전화가 귀하던 시절이라서 어쩌다 전화를 하면 선이 연결이 잘 안 되어 잡소리가 많이 나고 할 말은 많은데 전화요금이 너무 많이 나올까 봐 음성만 잠깐 듣고 몇 마디 안부만 묻다가 간단하게 전화를 끊곤 했다. 그때는 정말 지금 같은 세상이 올 줄 몰랐다. 이민온 뒤로 아이 셋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드렸을 뿐 어쩌다 보내는 편지에 사진 몇 장 보내는 게 전부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한 손주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그때는 생각을 못했다. 이국 멀리 가서 사는 딸이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우셨을 그 마음을 이제야 알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에 외국에 사는 딸을 보러 오기는 쉽지 않고 나 역시 아이 셋을 데리고 고국 방문을 하기 어려웠다. 간신히 이민 와서 8년 뒤에 온 가족이 고국에 가서 한 달을 살고 왔다. 한여름의 살인적인 더위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로 시간을 내서 틈틈이 가서 부모님을 뵈러 가서도 친구들 만나느라 제대로 된 외식 한번 시켜드릴 생각을 안 했다. 부모님께 받기만 하면 되는 줄만 알았지 특별히 해드린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어쩌다 용돈 조금 드리면서 할 일을 다했다고 자부심을 가졌다.


부모님의 사랑에 비하면 억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밤낮으로 걱정하시고 보고 싶은 마음을 진정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참고 기다리신 부모님의 마음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된다. 아이들이 자라 각자의 삶을 살며 자식 낳고 사는 것을 보니 이제야 철이 드나 보다. 아이들은 저희들 능력대로 우리에게 열심히 한다. 시시때때로 우리가 필요한 물건을 사서 보내주고 매달 나가는 적지 않은 전화요금이나 넷플릭스 요금을 비롯하여 여행경비도 모두 내주고 있다. 아이들 어릴 때 모든 것이 귀하여 제대로 해준 것이 없는데 어디서 배웠는지 이것저것 챙기는 아이들이 고맙다. 연금으로 살아가는 부모가 돈이 부족할 것 같은 생각에 매사를 챙기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나는 멀리 산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딸 노릇도 못 하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 어쩌다 가보면 연세가 높으신 부모님이 답답하여 퉁퉁거리고 생각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다른 것을 이해 못 하고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해대던 나는 불효녀였는데 지금껏 그런 것을 생각 못하고 효녀라고 생각을 했다. 지나고 보니 부모님이 내색은 안 하셨어도 가소롭다고 하셨을 것이다.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철이 드는 모양이다. 요즘 아이들은 늙어서 이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일찍부터 철이 드는 것 같다.


부모님의 깊고 넓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나이만 먹고 세월만 보냈다. 아직 생존해 계신 엄마가 요양원에 계시는데 조만간 찾아뵈어야 한다. 정초에 고비를 넘기지 못하실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가 뵙지 못한 불효녀다. 지금 내가 엄마를 보러 가도 알아보지도 못하거나, 알아도 내가 다녀간 것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아주 체념했는데 더 늦기 전에 가 봐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고 살게 아니다. 살면서 제대로 된 효도 한번 못했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가서 따뜻한 손 한번 더 만져보며 감사하다고 사랑한다 고 안아드리고 와야겠다.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둘도 없는 모녀지간의 인연이다. 말은 안 해도 엄마는 맏딸인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바람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세라 애지중지하며 밤낮으로 걱정하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내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 부모님의 자식 사랑(부를 때마다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노래가사)이 생각나는 날이다. 부모님의 은혜는 가히 없다는 말이 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귀하고 소중한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부모님 은 안 계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자식이 아무리 효도를 해도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따라갈 수 없다. 세월 따라 내가 이곳까지 왔다. 철들면 안 되는데 큰일이다. 이 나이에 철들어 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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