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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온... 소중한 나의 시간

by Chong Sook Lee



참새들이 수다를 떤다. 꼭두새벽부터 난리가 났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앞뜰에 있는 밥풀꽃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수다스러운 참새들이 회의를 하더니 점점 조용해진다. 한두 마리 남아서 짹짹거릴 뿐 어디론가 날아갔다. 아침 회의가 끝나고 먹이를 찾으러 나간 것 같다. 사람 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은 어린이 집으로, 학교로 가고, 어른들은 출근을 하듯 참새들의 하루다. 어디선가 날아온 심심한 까치가 소나무 가지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논다. 별것도 아닌데 땅바닥을 찍어가며 무언가를 발견하면 물고 흔들어본다.


소나무가 며칠 사이로 파랗게 물이 올랐다. 잔디 위에 눈이 세계지도를 만들며 녹아 간다. 급하게 온 겨울 때문에 미처 떨구지 못하고 누런 이파리를 끌어안고 서있는 사과나무가 을씨년스럽다. 너덜너덜한 나뭇잎이 그나마 의지가 되는지 지나가는 새들이 쉬었다가는 것을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봄이 오지 않고 겨울은 가지 않은 뜰은 적막하고 스산하다. 마가목나무는 빨간 열매를 예쁘게 달고 뒤뜰에서 겨울을 지켰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고 하나둘 땅으로 떨어진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떨어지는 시간은 피할 수가 없나 보다.


아직도 한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뒤뜰이지만 하루하루 허물을 벗는다. 해가 길어지고 햇살이 뜨거워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가 보다. 보이지 않게 오는 봄이 눈에 보이면 봄은 떠날 준비를 할 것이다. 우리네 삶은 올 듯 안 올 듯하다가 잠깐 왔다가 가버리는 봄을 닮았다. 하늘은 낮게 가라앉아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 구름이 태양을 숨겨놓고 안 보여 주지만 태양이 있음을 알기에 하늘을 본다. 해가 보이지 않아도 하늘을 보면 눈이 부시다. 바람은 없어도 기온은 차다. 살 속 깊이 파고드는 찬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한다. 그래도 걸어본다. 걷다 보면 열이 날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다 보면 살게 되듯이 견디지 못할 것은 없다.


힘들어서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닌가 하던 때가 있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왔다. 삶은 그런 것이다.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체념하고 다시 소망하며 사는 것이다. 싫다고 그만둘 수도 없고 좋다고 계속할 수도 없는 것이다. 각자 시간을 가지고 태어나 살다가 시간이 다 되면 떠나야 한다. 가수 송대관씨가 부른 '차표 한 장'이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우리 모두는 어느 날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고 가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이별을 한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마지막 본 것은 눈부신 환한 빛이었다고 한다.


상행선을 타고 갈지 하행선을 타고 갈지 모르지만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가야 한다고 한다. 유행가 가사를 보면 맞는 말이 많다. 세상에 태어나서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그게 다는 아니라고 한다. 오늘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내일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 매달려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한평생 사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답 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봄처럼 따스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겨울처럼 차갑게 사는 사람이 있다. 여름처럼 뜨겁게 사는 사람이 있고 가을처럼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 있다.


살다 보면 여름도 만나고 겨울도 만나지만 지나고 보니 뜨거운 날도 있었고 아름다운 날도 있었다. 꽃 같던 날도 있었고 얼음 같이 찬 날도 있었다. 새들이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닌다. 한국을 떠나와서 고국이 그리운 날은 새가 되고 싶었다. 죽으면 새가 되고 싶었다. 새가 되어 가고 싶은 곳을 원 없이 다니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세월이 가고 새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새들도 그들 나름대로 고충이 있음을 안다. 34년을 살고 있는 우리 집 주위를 걸으며 지나간 날들을 떠올려본다. 누구나 사는 집이 좋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나는 참 좋다. 오래도록 살아서인지 몰라도 살수록 정이 든다.


어디를 가도 우리 집만큼 좋고 편한 집이 없다. 간혹 가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죽으면 앞뜰과 뒤뜰에 나를 뿌려달라는 유언 같은 말을 한다. 꽃으로 피어나던, 날아다니는 새로 태어나던 지금처럼 이곳에 살고 싶다. 눈이 녹은 뜰은 정말 지저분하다. 작년 가을에 깨끗이 청소를 했는데 어디서 이 많은 쓰레기들이 왔는지 모른다. 겨울이 오기 전에 눈이 내리기 전에 떨어진 나뭇잎이 잔디에 붙어 더 지저분해 보인다. 조금 있으면 햇살이 쬐어주고 바람이 말려주면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봄이 온다는 것은 희망이다. 아직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어도 오고 있다.


삶은 기다림이다. 조금 늦어도 만날 사람은 만나고 이루어질 것은 끝내 이루어진다. 절대 늦었다고 할 수 없다.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 겨울이 오면 봄이 그립고 여름에는 가을이 기다려진다. 오늘은 어제를 그리워하며 내일을 소망한다. 눈이 녹아가는 뜰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어느새 마음속에는 봄이 온 듯 분주하다. 겨우내 쌓여있던 먼지를 털어내고 씨를 뿌리고 싹이 나오는 것을 바라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구름이 낀 하늘도 좋고 지저분한 뜰도 예쁘다. 먹이를 찾아 나섰던 참새들이 하나둘 날아온다. 나도 무언가 해야겠다. 오늘이란 시간을 붙잡을 수 없으니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룰 수는 없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하기 전에 할 일을 하자.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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