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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우정이 싹트는 계절

by Chong Sook Lee


살이 통통하게 오른 토끼가 봄바람에 취해서 등 굽은 소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 지나가던 참새가 말을 건넨다.


토끼야. 너 그동안 어디 있었니?


응, 참새야. 나는 지난가을에 만들어 놓은 굴에 있었어.


그래? 그럼 겨우내 굴에서 잠만 잤어?


아냐. 토끼들은 겨울잠을 자지 않아.


그렇구나. 집이 없는 새들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날아다니는데 너는 무엇을 먹고 사니?


나는 눈을 헤쳐서 지난가을에 자라던 풀이나 야채를 뜯어먹고 살아.


그러면 너희 집은 어디에 있는데?


나는 집이 많아.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몇 개 있어. 학교운동장에도 있고 길 건너 맘씨 좋은 아줌마네 집 옆 공터에도 있어.


좋겠다 너는. 나도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어.


그래? 나는 너희들이 부러워. 가고 싶은 데 가고 적이 오면 날라서 도망가면 되잖아?


그렇긴 해. 우리는 이 집 앞에 있는 밥풀꽃나무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


응. 저기 저 나무? 토끼가 나무를 쳐다보며 묻는다.


맞아. 우리 참새들은 대식구라서 가지가 많아야 함께 살 수 있어. 아침마다 먹이를 구하러 가기 전에 만나서 회의를 해야 하고 저녁에 또 만나서 하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단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매일 만나는 여러 가지 좋고 나쁜 이야기를 한단다. 네가 알다시피 우리가 아주 작은 새이잖아. 사람들이 고무줄 총으로 우리를 잡아서 화롯불에 구워 먹어.


어머나. 세상에 그런 일이 있어?


그럼. 말도 말아. 어떤 사람은 우리를 잡기 위해 망을 치기도 한단다.


너처럼 작은 새가 먹을게 뭐가 있다고?


아냐. 한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해. 어떤 사람은 우리를 잔뜩 잡아서 참새구이집을 운영하면서 돈을 번단다.


세상에. 별일도 다 있다. 하기야 사냥꾼들이 원래 못하는 게 없지.


그래도 우리는 이 집에서 산지가 오래되어서 나름대로 안전해. 아침에 나가서 안 들어오는 친구들은 사냥꾼들에게 잡히거나 지나가는 자동차에 죽기도 하지.


세상이 점점 살기가 힘들어. 늑대들이 우리 친구들을 잡아먹어서 숲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 그나마 동네로 내려와서 살고 있는데 늘 불안해.


어머나. 세상에. 늑대가 너희들을 잡아먹는구나.


늑대뿐이 아니야. 사람들은 토끼 털이 따뜻하니까 우리를 죽여서 털로 옷을 만들어. 옷뿐이 아니고 방석도 만들고 담요도 만든단다.


아이고 무서워라. 너는 살기 편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너도 힘들게 사는구나.


세상에 사는 모든 것들은 다 똑같아. 겉으로는 보기 좋아도 힘들게 살아. 하다못해 꽃들도 추운 겨울을 견뎌야 봄을 만날 수 있는 거잖아.


맞아. 우리는 털도 별로 없고 집도 없지만 식구가 많아 의지하며 살아. 너는 식구가 없니?


나도 식구가 있지만 다 자라면 집을 나가.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잘 살고 있을 거야.


우리와 같구나. 우리도 식구들이 나가기도 하고 새 식구가 들어오기도 해. 멀리 날아가서 식구를 만들어 살기도 하고 이곳에서 식구가 되어 살기도 해.


그렇구나. 지난해는 겨울이 그리 춥지 않아서 고생을 덜 했는데 봄이 아직 안 와서 먹을 게 없어.


너는 날아다니는 새니까 풀 있는 곳이 있으면 알려줘.


정말 내가 생각을 못했네. 저 아랫동네에 파란 풀이 나 있는 언덕이 있어. 이곳에서 멀지 않아.


그래? 그럼 나 좀 그곳에 데려다 줄래?


알았어. 내가 천천히 날아갈 테니까 내 뒤를 쫓아와.


고마워. 참새야. 오늘 이곳에 잘 왔다.


참새와 토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아랫동네 풀 많은 언덕을 행했다.


토끼야. 여기야. 아직 눈이 있지만 눈밑에 푸른 풀들이 많아.


정말 그렇구나. 고마워 참새야. 눈이 녹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겠어. 양지쪽으로 가면 돼.


고맙긴… 우리는 여기저기 날아다니기 때문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보여. 네가 먹을게 생겨서 나도 좋아.


나도 다니다가 너희들이 좋아하는 벌레를 보면 말해줄게.


그거 좋은 생각이다. 너는 나무 아래나 풀 위에 앉아 있어 벌레가 가까이 보이겠구나. 언제든지 알려줘. 우리는 밥풀꽃 나무에서 생활하니까 아무 때나 와도 돼.


나도 그 집 앞 뜰에 있는 등 굽은 소나무가 좋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눈이 쌓여서 따뜻해.


그럼 토끼야. 너 여기서 풀 먹는 동안 나도 뭔가 먹을 것을 찾아볼게.


그래. 우리 그럼 아까 만난 곳에서 또 만나자. 나는 소나무 아래에서 앉아 있을게.


토끼는 참새가 알려준 곳에서 배부르게 풀을 뜯어먹는다.


(이미지출처:인터넷)


세상에.. 이렇게 가까운 곳에 싱싱한 먹거리가 있을 줄이야. 너무 맛있다.



토끼가 풀을 뜯어먹는 동안 어디선가 날아온 기러기 한쌍이 보인다.


얘들아. 안녕? 너희는 어디서 온 누구니?


응. 우리는 남쪽 나라에서 온 기러기들이야. 봄에 이곳으로 왔다가 가을에 다시 남쪽나라로 간단다.


그래? 그럼 어디서 사는데?


우리 기러기들은 식구가 많아. 봄과 가을에 대 이동을 한단다. 이곳에 잠시 쉬었다가 기러기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봄여름을 지내고 추워지기 전 가을에 떠날 거야.


무엇을 먹고 있니?


먼 길을 왔더니 목이 말라서 눈을 찍어 먹으며 목을 축이는 거야. 날아오다 보니까 강물이 많이 녹았더라. 강에 가서 물고기라도 잡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모르겠어.


잘 됐다. 내가 그전에 살던 숲이 있는데 그곳에 야트막한 계곡이 있는데 작은 물고기들이 많아.


정말? 어딘데? 여기서 멀어?


아냐. 조금만 가면 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 살았는데 늑대 가족이 들어와서 살아. 틈만 나면 우리 토끼들은 잡아먹으려고 해서 동네로 가서 살아.


그래? 늑대가족이 이사를 왔다니 무섭다. 그래도 우리는 날개가 있으니 계곡을 알려주면 가볼게.


그래. 이 길로 쭉 가다가 두 번째 신호등 지나서 왼쪽으로 가다가 보면 계곡이 보여. 멀지 않으니 내가 같이 갈 수 있어.


그래? 고마워. 처음 온 곳이라 길을 잘 모르는데 잘 됐다.


큰길로 가면 자동차에 칠지도 모르니까 골목으로 질러가면 돼.


그러자 우리는 하늘에서 날아가며 너를 따라갈게.


토끼는 기러기들에게 숲에 있는 계곡을 가르쳐주려고 열심히 뛰어간다.


기러기야. 바로 저곳이야. 너희들이 좋아하는 송사리들이 많아. 나중에 또 만나자.


고마워 토끼야. 너는 정말 친절하구나.


너희들이 멀리서 고생하며 이곳에 왔는데 이까짓 친절은 당연하지.


계곡이 보이는 숲 가운데에 기러기를 데려다 놓고 아침에 참새를 만난 집을 향해 간다.


하늘이 푸르고 맑다. 이제 머지않아 봄이 오면 온 세상이 먹을 것이 많을 생각에 너무나 기쁘다. 오늘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은 날이다. 참새와 이야기하고 맛있는 풀을 뜯어먹고 기러기들을 숲에 있는 계곡까지 데려다준 기분 좋은 날이다.


등 굽은 소나무 아래는 집주인이 지나가는 동물을 위해 떠놓은 물그릇이 항상 놓여 있다. 토끼는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목이 마른 참에 그릇에 있는 물을 몽땅 들이켜고 낮잠을 자려고 자리를 잡는다.


토끼는 꿈속에서 만난 기러기와 토끼 꿈을 꾸며 잠고대를 한다. 늑대 없는 평화로운 동네에서 오랜만에 편한 잠을 잔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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