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봄비가 온다. 세상이 촉촉하게 젖어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순간이다. 겨울 동안 쌓여있던 먼지를 깨끗이 닦아준다. 비가 오는 거리를 바라보니 왠지 마음이 설레기까지 한다. 생전 처음 보는 비도 아닌데 그리운 사람을 만난 듯 좋다. 맨발로 뛰어나가 걸어보고 싶은 것을 보면 아직 소녀 감성이 남아 있나 보다.
비 오는 날은 왠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칼국수도 먹고 싶고, 빈대떡도 먹고싶고, 만둣국도 먹고 싶다. 먹고 싶을 때 나가서 한 그릇 먹고 오면 좋은데 마땅히 가서 먹을 곳이 없다. 식당이 몇 군데 있어도 그 옛날 맛이 나지 않아서 실망하게 된다. 시장에 푸짐하게 쌓여있는 맛있는 음식이 그립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시장을 지나야 했던 추억이 살아난다.
안 그래도 그 시간에는 배가 고픈 시간인데 음식 냄새가 더 배가 고프게 만들었다. 찐빵과 찐만두를 비롯해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밥집냄새, 고소한 기름냄새를 풍기는 빈대떡과 푸짐하게 썰은 순대가 보인다. 어묵집 앞을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지금에 비해 먹을 것도 풍부하고 비싸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때 당시 5급 공무원 한 달 월급이 만원도 안되던 시절이다. 전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 거리지만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집으로 걸어온다. 시장에서 나는 맛있는 냄새 때문에 엄마가 주신 차비로 간식을 사 먹던 생각도 난다.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사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유혹에 넘어간다.
친구들과 걷는 것도 좋지만 차비로 맛있는 것을 사 먹기 위해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아주 아주 오래전이다. 가랑머리 단발머리 소녀들은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세월이 흘렀다. 비 오는 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만들어 먹는 습관이 생긴 지 오래다. 지난 3년 간 코로나로 인하여 여러 가지 생활습관이 달라졌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은 먹고 싶은 음식이 많지만 따끈따끈한 만둣국이나 만들어 먹어야겠다. 냉장고에 기본적으로 있는 재료로도 충분하다. 마침 간 쇠고기도 있으니 잘됐다.
먼저번에 만두 만들고 남은 만두피를 얼려 놓았는데 꺼내놓으면 재료 준비 하는 동안 녹을 것이다.
만두를 만들기 전에 먼저 육수를 만든다.
멸치 몇 마리와 다시마 조각을 넣고
10분간 끓인다.
국물이 끓는 동안
양파와 양배추와 당근을 잘게 썬다.
여러 가지 속을 넣어 만들면 좋겠지만
신김치가 없으니 담백하고 시원한
만두를 만든다.
그릇에 고기와 썰어놓은 야채를 넣고
소금 후춧가루와 마늘과 생강을 넣는다.
계란을 하나 넣고 밀가루를 한 숟갈 넣는다.
밀가루를 넣으면 재료들이 흩어지지 않아
만두를 만들 때 편하다.
모든 재료를 잘 섞어서 만두피에 싸면 된다.
육수가 끓으면 멸치와 다시마를 건져내고 불을 줄이고 만두피에 만두소를 한 숟갈씩 넣어서 만두를 예쁘게 만든다.
귀찮게 생각하면 만들기 싫지만 남편과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하다. 식당에 가서 먹으면 몸은 편한데 기대에 못 미칠 때는 실망한다.
만두소를 많이 넣어 만들면 좋은데 재료값을 아끼려 드는 상술은 이길 수가 없거니와 요즘에는 웬만한 식당은 만두를 직접 손으로 만들지 않고 냉동만두를 사다가 파는 식당이 많다. 냉동만두도 맛이 있지만 기왕이면 손만두가 좋다. 오래전, 식당을 운영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금요일에 '오늘의 스페셜'로 만둣국을 만들어 팔았다.
그때는 오븐에 구운 닭 뼈로 육수를 만들어 만둣국을 만들었는데 없어서 못 팔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육수를 만들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뼈를 삶으면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손님들의 아침을 만들며 틈틈이 만두를 만들어 점심 스페셜을 준비한다.
만둣국에 햄버거 스테이크 그리고 으깬 감자와 삶은 야채를 곁들인다.
만두 다섯 개에 송송 썰은 파를 고명으로 얹여 주면 냄새부터 맡으며 행복해한다.
"이거야. 바로 이거야."
하며 일주일 동안 기다린 만두를 먹는다.
맛있는 만둣국을 먹기 위해 서쪽 끝에서, 북쪽에서 달려온다. 만둣국을 먹기 위해 일부러 볼일을 보러 오고 약속을 잡기도 한다.
손만두의 비결은 정성과 사랑이다. 옛 어르신들이 힘들어도 손으로 만두를 빚으며 식구들의 안녕을 기원했을 마음이 전해진다.
내가 만든 만두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나까지 행복이 전해진다.
기계로 만드는 시대가 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나는 손만두나 손칼국수를 고집한다.
음식을 만들며 남편과 같이 먹을 생각을 하면 신이 난다. 쉽게 사는 세상에 어렵게 돌아가는 재미도 있다. 맛있게 만든 만둣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비 오는 날은 역시 손으로 만든 만둣국이 최고다. 오랜만에 추억을 되살리며 만든 만둣국을 먹으며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