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ng Sook Lee Apr 10. 2020

이제... 심심한 일상에 길들어 간다



하늘을 향한 우리의 염원은 똑같다.(사진:이종숙)


심심하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바깥세상이 궁금하여 칠 만에 숲으로 산책을 나왔다. 특별히 할 것도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이 오고 간다. 며칠 동안 가까운 동네만 돌다가 오랜만에 찾은 숲은 전부가 우리 차지다. 나무도 다람쥐도 새도 다 내 친구다. 아무도 내 것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나도 그들의 그 무엇을 탐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제 자리를 지키고 그들의 할 일을 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눈을 담요 인양 덮고 있다. 몇 년을 살다 간 나무인지 쓰러진지도 오래되어 다람쥐들의 놀이터가 되어 그들은 쉴 새 없이 오르내린다. 이른 아침이라서 아무도 걷는 사람이 없다. 숲 속의 공기는 그야말로 맑고 신선하다. 날씨가 춥고 눈이 와서 계곡이 다시 꽁꽁 얼었다. 용감한 사람들이 얼음 위를 걸어 다닌 발자국이 선명하다.

4월인데도 숲 속은 아직 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저 많은 눈이 다 녹으려면 한 달 도 더 걸릴 것 같은데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자연은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엄청 수다스럽다. 바람이 불어 나무 하나를 한 번씩만 흔들어도 수천수만 번의 흔들림으로 숲은 우렁찬 소리가 날 것이다. 나무 하나하나가 조금씩 흔들리는데도 온 숲이 정말 시끄럽다. 밤바다의 파도소리와 숲 속의 나무 부딪치는 소리는 서로 닮았다. 도로가 가까운 산책 길 초입에는 차 다니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일단 숲 속으로 들어오면 숲 속의 수다에 차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나무들끼리 부딪혀서 산책길에는 나무 가지 부스러기나 마른 이파리들이 떨어져 있다. 그런 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몰랐는데 바람이 불으니 우수수 땅에 떨어진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나무들이 엄청 많은 곳인데 인공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리도 질서 정연한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서 그런지 나무들이 다 튼튼하고 건강하다. 위로 쭉쭉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데 굵고 키도 크게 잘 자라 있다. 굵기도 다 비슷비슷하고 어느 것 하나 구부러지거나 비틀리지 않았다. 병든 나무도 없고 쓰러진 나무도 없다. 옆 나무를 기대고 서 있는 나무도 없고 죽은 나무도 병든 나무도 없다. 서로를 바라보고 서있는 모습은 정말 멋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처럼 따스하다. 하늘로부터 태양을 받아 서로 나누며 서있다. 땅속으로 뻗어 있는 뿌리들도 서로에게 영양분을 나누는 듯 나무색도 아름답다. 뺏을 것도 뺏길 것도 없이 서로 주고받으며 사이좋게 살아가는 나무들의 모습을 닮고 싶다.

계절의 순환에 순명하며 계절 따라 살아간다. 그 어떤 나무도 자연에 반항하거나 고집을 피우고 욕심내지 않는다. 비를 맞고 눈을 맞으며 불어주는 바람에 춤을 추며 저 할 일을 한다. 그곳에서 숲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최선의 모습을 보이며 제 자리를 지킨다. 다리를 건너가는데 바람소리가 숲을 뒤 흔든다. 쌓여있는 숲 속의 눈을 다 말려 버릴 듯한 심한 바람인데 산책길을 걷는 데는 아무런 방해가 안된다. 오히려 산책길은 따스하다. 멀리 보이는 나무들은 어느새 뽀얗게 봄을 맞아 열심히 이파리를 키우며 서 있다. 그 많은 나무들이 이파리로 무성해지면 숲은 더 우거져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숲 같지만 올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산책 길에 나무들이 많이 서 있다. 그중에는 또 많은 나무들이 죽은 채로 서서 버티고 있다. 가운데가 쭉 갈라졌어도 허리도 구부리지 않고 여전히 하늘을 향해 늠름하게 서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죽은 것 같지 않다. 위로 올려다보니 다 죽은 나무지만 아직 뿌리는 생을 다하지 않았는지 자세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느 날 뿌리마저 다 썩으면 그때는 쓰러질지라도 지금은 살아있는 나무와 함께 서서 숲을 지킨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사후에는 저 죽은 나무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되기를 빌어주며 그들의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좋았던 날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슬펐던 날들은 후회와 용서의 기억으로 남아 그리워할 것이다.


정성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살아갑니다.(사진:이종숙)



백양나무숲을 끼고 가파른 길을 오르면 꼭대기에 낭떠러지가 보이는 곳에 자그마한 의자가 있다. 앞이 훤하게 트여 아래로 펼쳐진 숲이 그대로 보인다. 물도 흐르고 숲도 우거지고 동물들이 걸어 다니는 오솔길도 보인다. 누군가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이름을 새겨놓고 "편히 쉬며 즐기세요."라는 글과 함께 자손들의 이름을 써 놓은 의자에 앉아 쉬어본다.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사연을 읽어보며 모르는 사람이지만 편히 쉬기를 기도하며 명복을 빌어주고 내가 떠나는 날도 생각해 본다. 계절이 순환하듯 왔으니 가는 날이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시간이 생각해보면 참 짧은 시간이다. 지나간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앞으로의 시간도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아가면 된다.

욕심낼 것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없다. 세월이 가면 원하던 것이나 원하지 않던 것이나 나름대로 결과물이 되어 내 옆에 있다. 싫거나 좋거나 다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금 내게 있는 것도 가지지 못한 것도 언젠가는 나를 떠날 것이다. 애태우며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그 봄도 시들을 것이고 다시 겨울이 올 것이다. 싫다고 뿌리쳐도 올 것은 오고 놓고 싶지 않은 것들도 갈 때는 간다. 숲길을 걸으며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니 지나간 과거나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지금의 내가 있어 행복하다. 돈이나 지위가 내 나이에 무슨 필요가 있겠나. 그저 하루하루 건강하게 남은 을 살아가면 그것이 행복 아닌가. 아무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 내가 가꾸며 산다.

올라가는 길은 설레고 바쁘지만 내려가는 길은 포근하고 편하다. 거리로 따지면 똑같을 텐데 몸과 마음에 즐거움이 넘친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갈 때 신났던 기억이 난다. 학교종이 울리면 책상에 있던 물건을 집어넣고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갔던 생각이 난다. 특별히 할 것도 만날 친구도 없는데도 말이다.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없던 그때는 집에 가야 특별히 할 것 도 없던 시절인데도 집으로 가는 길은 항상 즐거웠다. 사람들이 하나  보이기 시작한다.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요즘 부모도 집안에만 갇혀있는 아이들도 심심하다. 쇼핑센터도 놀이터도 다 닫았으니 숲 속에서 산책을 한다. 지나가는 다람쥐에게  밥도 주고 새들과 놀며 자연을 배운다. 전염병으로 휴교를 한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으면 한다. 힘든 시기에 나름대로 할 일을 찾으며 극복해야 함을 알아가는 일상이다.


한 달 넘게 보지 못한 귀여운 손주들이 그립다.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눈에 보이지만 당분간은 영상으로 그리움을 달래 볼 수밖에 없다. 일상이 위축되고 무언가를 빼앗긴듯한 시간이지만  얻은 것을 생각하며 위안을 받는다. 이제 차들이 도로를 달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가까워지고 환상의 숲 속을 벗어날 시간이다. 바쁘게 살며 시간이 없어 쩔쩔매던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빼앗긴 일상은 이렇게 한가하고 단순한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삶을 찾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이 우리가 원했던 진정한 삶이 아닌가 한다. 할 일 없는 삶에서 할 일을 찾으며 약간은 무료한 듯, 조금은 심심한듯한 삶에 길들어 간다. 



서 있는곳에서 마음을 전합니다.(사진:이종숙)


작가의 이전글 나무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