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는 날

by Chong Sook Lee



일상생활 중에 피할 수 없는 게 많이 있다. 그중에 매일매일 만나야 하는 것이 있다면 날씨의 변화다. 멀쩡하던 날이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고, 오랫동안 내릴 것 같은 비가 멈추고 하늘에 환한 무지개를 띄우기도 하는 것을 보면 날씨가 참 중요하다. 날씨가 화창하면 괜히 기분이 좋고 날씨가 흐리면 이유 없이 우울하고 심란하다. 며칠 동안 연기 낀 날들이 계속된다. 연기 때문에 뿌옇다 못해 벌건 하늘을 쳐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연기가 꽉 차서 빌딩들이 희미하게 보이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날은 몇십 년 전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보이는 듯 눈에 선하다. 앞이 보이지 않던 이민 초기의 삶이 생각난다. 불경기에 넘어지는 회사와 공장이 많아 실업자가 늘어나고 경제는 바닥에 떨어져 헤어나지 못했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세 아이들을 굶기지 않으려면 남편은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다. 생전 심한 일을 하지 않던 남편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사이 남편의 건강은 나빠졌다.


심한 노동으로 허리가 비틀어지고 쉬지 못하고 잠도 잘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아 피곤이 계속되어 위염도 생겼다. 사람의 건강이 한번 무너지니 기력을 되찾지 못하고 꼬챙이처럼 말라갔다. 그렇다고 어린 세 아이들을 맡기고 내가 일을 할 수는 더더구나 안 되는 일이었다. 물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일을 하면 되겠지만 어린이집에 맡기는 돈이 버는 돈보다 더 나가는 상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린 세 아이들을 보며 알뜰하게 살림을 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세끼 밥 굶지 않고 사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던 시절이라 외식은 꿈도 못 꾸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할 줄 모르는 빵이나 과자를 책을 보며 만들어 먹었다. 다행히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 웬만한 아이들 옷도 만들어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 당시 남편의 한 달 월급으로는 사치나 허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세월이 지나며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고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어 나도 세상밖으로 나갈 기회가 생겼다.


캐나다 정부에서 이민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20주짜리 영어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공부욕심이 생겨 고급반에서 영어를 더 배우고 이곳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뒤로 직장을 잡고 사업을 하며 그야말로 열심히 살았다. 다행히 남편도 자격증을 따서 제대로 된 일을 하며 앞이 보이지 않던 삶이 조금씩 눈에 보이고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며 오늘에 이르러 살고 있다.


하늘은 여전히 뿌옇고 후덥지근한 날씨다. 산불로 집을 떠난 사람이나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의 심정은 얼마나 힘들까 안타깝기만 하다. 날씨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나빠지는데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매캐한 냄새가 도시를 감싼다. 이런 날은 가만히 집에 있어야 한다. 어제저녁부터 목이 칼칼하여 소금물로 소독을 하고 있다. 한동안 이유 모를 기침으로 고생을 해서 기침이 재발할까 봐 은근히 걱정이다.


면역력이 약해진 것인지 아니면 아프니까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모르지만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맞는다. 코로나가 길어지며 많은 사람들이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병도 많아진다. 늙고 병들어 죽는 것도 있지만 옛날에 없던 병이 생겨나 생명을 앗아간다. 세상이 좋아져서 백세시대가 되었어도 난치의 병은 여전히 많다. 옛날에는 오래 살으라는 덕담을 했는데 요즘엔 건강하라는 덕담을 주로 한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명대로 살아가지만 도둑같이 다가오는 병마를 이길 수가 없다.


이런날은 조용히 집에 있어야 하는데 일요일이라서 성당에 다녀오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연기가 많아 거리도 조용하다. 하루이틀 외출하지 않아도 되니 가만히 있어야겠다. 연기는 호흡기를 강타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한다. 인체는 아주 섬세하고 예민하다. 정밀한 기계에 약간의 이상이 생기면 후유증이 생긴다. 무심코 하는 행동이 모르는 사이에 큰 문제가 되어 돌아온다.


옛날 어른들이 '무리하지 말고 순리대로 살라'라는 말이 틀리는 말이 아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강산이 변하는 현대생활이다. 어제 있던 것이 오늘은 없어지고, 기계가 말을 하며 사람처럼 움직이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생겨나는 스트레스로 인한 병은 약이 없다. 짧고 굵게 화끈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가늘고 길게 아프지 않고 사는 것도 좋다. 주위에 아픈 사람이 많아지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비 소식은 언제 오렸는지 연기가 꽉 찬 하늘을 바라보며 비가 오기를 기다려본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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