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뜬 지 오래되었는데 아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손자들이 곤히 자고 남편도 꿈 여행을 하는지 집안이 조용하다. 손자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긴 하지만 태권도와 구몬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침으로 팬케익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았으니 식구들이 일어나면 만들어 맛있게 먹으면 된다.
매일매일 학교 다니느라 힘들었을 테니 오늘은 늦잠을 자는 것도 좋다. 손자는 6살, 손녀는 4살인데 기특하게 여행 간 엄마 아빠를 별로 찾지 않는다. 한두 번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하긴 하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잘 논다. 직장을 다니는 며느리가 산후 1년 동안 집에서 있다가 손주들이 1살이 된 후부터 어린이 집에 가기 시작해서인지 잘 적응한다.
작년 재작년 2년 동안 여름에는 거의 우리 집에 와서 재택근무를 하며 같이 살아서 그런지 손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따라주어 다행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나지 않지만 원하는 것을 해주고, 필요한 말을 들어주며, 같이 재미있게 놀면 될 것이다. 어른도 내 집이 아니면 불편한데 아이들도 내 부모가 아니고 조부모라서 불편할 텐데 아무 내색하지 않고 잘 견디는 게 기특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내게 처해진 상황이 좋든 싫든 적응하며 사는 본능이 참 위대하다. 자주 만나지 않았어도 할머니, 할아버지이라서 믿고 의지하며 기다리는 모습이 예쁘다. 무엇을 해주어야 맛있게 먹을지 모르고 무엇을 하며 놀아야 재미있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물어보며 좋은 방향으로 하면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나이다.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며 잘한다고 칭찬하면 좋아한다.
아들 며느리가 갈 때,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조심하고 잘 있으라고 했으니 저희들도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시간이 되어 식구들이 하나 둘 일어나고 약속한 팬케익을 해 주고 나니 벌써 태권도 교실에 갈 시간이 된다. 손주들이 태권도 유니폼을 입는 동안 혹시라도 배가 고픈 손주들을 위해 간식을 준비하고 나간다. 주말이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도로에 차가 붐비지 않아 좋다.
네비가 가라는 대로 따라가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고 알려준다. 길을 몰라서 조금 일찍 나왔는데 별문제 없이 잘 왔다. 손주들이 각자의 태권도 교실에 가서 운동을 하는 것을 보니 40 년 전에 우리 아이들을 키우며 바쁘게 살았던 생각이 난다. 아들 며느리가 일만 하기도 바쁘고 힘들 텐데 아이들을 데리고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실감이 간다. 젊기에 할 수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정년퇴직을 한 뒤로 이렇게 바쁘게 왔다 갔다 한 적이 없는데 오랜만에 손주들 덕분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왔다 갔다 했더니 다시 젊어진 것 같다. 오후에 다시 구몬 교실에 간다고 하는데 또다시 모험을 해야 한다.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며 생활하다 보니 모르는 곳에 새로 이사를 온 것 같아 힘들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설레기도 한다. 아기들이라고 생각했던 손주들이 어느새 커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길을 알려주는 것을 보니 세월이 그냥 간 것은 아니다.
어느새 태권도 시간이 끝나고 손주들은 간식을 먹으며 노래를 부른다. 집에 가서 점심을 먹이고 구몬 교실을 가기 위해 바쁘게 간다. 다행히 손주들이 짜증 내지 않고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매일매일 하라고 하면 힘들겠지만 어쩌다 이렇게 우리가 필요할 때 아들 며느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다행이다.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손주들을 보면 나도 덩달아 행복하다. 웃고 뛰며 하루하루 행복을 찾아 산다.
어제저녁때 동네 슈퍼에서 아이스케키를 사 주었더니 어찌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집에 가서 아이스케키를 먹을 생각에 마음이 바쁜 아이들이 앞질러 뛰어간다. 웃고 울고 뛰어다니며 잘 자라거라. 태권도를 배우고 구몬을 학습하며 어린이집과 학교를 다니느라 손주들도 바쁘다. 배우고, 보고, 듣고 하다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배울 것이다. 배운 것은 어느 날 좋은 싹이 되어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쓰일 것이다.
어느새 도로는 차들이 많다. 사람들이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어디론가 가고 있나 보다. 고층빌딩 사이로 차들이 오가고 토요일이 저물어 간다. 아들 며느리가 휴식을 취하고 즐겁게 돌아올 때까지 손주들이 아프지 않고 아무 일 없이 하루하루 잘 지나가기를 바란다. 감사한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