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을 등교시키고 집에 와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앉아 있다. 어제처럼 식탁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본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간다. 차들이 오고 가고 사람들이 걸어가고 새들이 날아다닌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맞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는 날이다.
건너편 아파트가 보인다. 유리로 되어 있어 사람들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베란다에서 화초에 물을 주는 사람도 있고 의자에 앉아서 나처럼 밖을 내다보는 사람도 있다. 어느 집에는 조금 전부터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마루를 왔다 갔다 하고 베란다에 있는 가구들이 보인다.
같은 가구들이 하나도 없고 가구 배치도 다르게 해 놓고 산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데 조용하고 깨끗하다. 한 사람이 청소기로 마루를 청소하는 것이 보인다. 거의 비슷한 모양의 아파트 빌딩이 주위에 여러 개가 있다. 아파트 하나에 41층이 되고 한 층에 몇 가구가 사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산다.
다운타운이라서 고층건물로 된 아파트도 많고 사무실도 많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곳이다. 아침에 각지에서 오고 오후에는 다들 사는 곳으로 되돌아간다. 전철이 오고 가는 것이 보인다. 고가도로 위에 철로가 있어 전철이 막히지 않고 앞을 향해 간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살아있는 사람은 먹고 자고 일하고를 반복하며 산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열심히 산다고 다 행복하지 않고 바쁘게 일한다고 모두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많이 보고 많이 즐기며 많이 쉬는 사람이 행복한 세상이다.
차들이 오고 가는 것을 보니 신비로운 인체를 닮았다. 음식을 먹으면 식도를 통과해서 위장에서 소화를 시키고 각 기관에 보내지면 할 일을 한다. 거리도 신호등이 따라 오묘하게 움직인다. 하나가 와서 멈추면 다른 하나가 가고 방향에 따라 기다리고 차례가 되면 간다.
빨간색, 하얀색, 검은색 차가 지나가고 노란색 회색차가 그 뒤를 따라간다. 신호등이 바뀌니 오던 차가 멈추고 기다리던 차가 간다. 한쪽이 가면 한쪽이 기다리고 차례를 기다리다 갈길을 간다. 대형트럭이 무언가를 잔뜩 싣고 빨간 차 뒤를 따라간다.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걷는 동안 다른 쪽에서 오던 차는 멈추고 사람들이 다 갈 때까지 기다린다. 어딘가가 막히면 교통체증이 생긴다.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꼼짝없이 거리에서 기다린다.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한다. 어디가 막히고 어디로 가면
빠르게 갈 수 있고 도착시간을 알려준다.
세상이 좋아졌다. 네비만 들으면 어디든지 간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실로 궁금하다. 자율자동차가 나오니 자동차에 핸들도 필요 없고 운전을 하지 않아도 가고 싶은 곳에 아무 때나 갈 수 있다. 차가 알아서 가는 동안 책을 읽거나 구경을 하면 된다.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가고 싶은 곳에 가면 된다.
차가 비행기처럼 날아다니면 교통체증도 없겠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다. 길에서 반짝거리는 것이 보인다. 신호를 지키지 않은 차를 뒤따라오던 경찰차가 잡았다. 하필 그때에 신호를 위반했는지 하필 그때에 경찰이 지나갔는지 세상일을 알 수 없다. 복잡한 세상에 아무 일 없이
하루를 사는 것이 기적이다.
어딘가에서는 사고가 나고
화산이 터지고
지진이 생기고 쓰나미가 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파티를 하고 운동 게임을 하며 응원을 하고 울고 웃는다. 굶고 전쟁이 나고 싸우며 죽고 다친다.
혼자 걷는 사람 둘이 걷는 사람 아기를 밀고 가는 사람 운동을 하며 가는 사람 개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이 보인다. 참으로 여러 가지다.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라 했나 보다.
경찰차가 떠나고 차들은 여전히 오고 간다.
달라진 것도 없고 특별한 것도 없는 하루다. 떠난 줄 알았던 경찰차가 코너에서 거리를 지켜본다. 빨간 차가 지나간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사이렌을 울리며 빨간 차를 세운다. 넋 놓고 오던 빨간 차가 교통위반을 했나 보다. 잘못을 했지만 재수 없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