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행복을 만나고 온 날

by Chong Sook Lee



맑은 하늘에 청명한 날이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나뭇잎은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듯 흔들린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다. 온 세상이 푸르르고 심심한 새들이 오고 갈 뿐 동네는 그야말로 평화롭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희미하게 사이렌 소리도 들린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오고 가는 차들도 없다. 모두들 나처럼 집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세상 구경을 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여름에 그냥 집에만 있을 수 없어 남편과 함께 숲을 향해 가본다. 오랜만에 찾은 숲이다. 숲은 이미 녹음이 꽉 차게 우거져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즐겨 걷는 오솔길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 큰 산책로에는 꽃가루가 눈이 온 것처럼 하얗게 쌓여있다. 걸어가는 발길을 따라 푸석거리며 따라온다. 안 그래도 꽃 알레르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숲 속이 이럴 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스크라도 하고 왔을 텐데 조금은 후회가 된다.


입을 손으로 막고 다른 길로 걸어가다 보니 다행히 그곳은 조금 낫다. 지난번에 보지 못한 풀들이 자라 있고 넘어진 나무들이 많다. 지난주에 소나기가 심하게 올 때 넘어졌나 보다. 수십 년의 기쁨과 슬픔을 끌어안고 평안한 모습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무들을 보며 우리네 삶을 생각해 본다. 한때는 멋진 모습으로 숲을 장악했을 나무들이다. 비바람에 시달리고 눈보라를 견디며 숲을 지키던 나무들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의 최후를 보는 것 같다. 사람은 태어나서 누구나 마찬 가지로 영원히 살 것 같이 욕심을 부리고, 성질을 내고, 시기와 질투를 하며 산다. 버리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며 남이 잘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며 산다. 그러면서 철이 들고 그게 전부가 아님을 깨달으며 나이를 먹는다. 철들면 죽는다 는 말도 있다. 그만큼 마음을 비우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살림도, 생각도 불필요한 것들이 많다. 단순하게 살면 죄 지을 것도 없을 텐데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산다. 저 숲의 나무나 풀처럼 햇살과 바람을 받으며 살다가 겨울이 오면 다 벗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봄을 맞아 새로 태어나면 좋겠다. 날마다 좋은 날을 기대할 수 없지만 이렇게 숲을 걸으니 더없이 행복하다. 머릿속에 있는 걱정도 없어지고 나쁜 생각도 잠재우며 평화로운 마음이 된다.


여러 가지 들꽃이 많이 피었다. 하얗고 노란색의 앙징맞은 꽃들이 햇살에 감사하며 피어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풀들도 생겨난 이유가 있다. 모기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저희들이 사는 곳에 왔다고 반란을 일으킨다. 아직은 모기가 물지 않는데 조만간 극성을 부리면 숲에 오는 것도 자제를 해야 한다. 가뭄이 계속되어 계곡물이 흐르지 않고 가만히 있다. 비가 시원하게 오면 좋은데 그것은 하늘마음에 달려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폭염이 지속된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비는 안 오고 산불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번지고 있다. 수많은 소방대원이 불과 싸우는데 비소식은 없으니 큰일이다. 세상일이 기다리면 더디다고 한다. 비를 기다리는데 바람만 분다. 불난 곳에서 이재민들이 많아지고 고통받는 모습이 안쓰럽다. 하루빨리 하늘에서 비가 와서 불을 꺼주고 사람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기원한다.


계곡 옆으로 걸어가 본다. 해마다 이른 봄에 동네 아이들이 숲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집을 지은 게 보인다. 집을 지어놓고 심심하면 놀러 와서 고치기도 하고 더하기도 하며 여름을 보낸다. 가을이 되면 집을 부수고 겨울을 보내고 봄에 다시 집을 지으며 우정을 쌓고 추억을 만드는 모습이 좋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추억을 되살리며 힘든 삶을 이겨내고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숲은 알게 모르게 가을을 준비하는 것 같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 타고 날아다닌다. 예쁜 노란 꽃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들이 때에 맞추어 왔다가 가는 것이다. 계곡옆으로 난 길을 걸어가는데 계곡에서 헤엄을 치며 놀고 있던 오리가 놀라서 날아간다. 놀라게 할 마음은 없었는데 혼비백산하며 도망가는 것을 보니까 괜히 미안하다.


새들이 노래하고 풀벌레들이 살아가는 숲이 오늘은 유난히 고요하다. 눈이 시원할 정도로 하늘은 파랗고 구름 한 점 없다. 집에 있으면 만나지 못할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남편과 함께 걷는 길에 행복도 함께 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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