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이 넘은 가족

by Chong Sook Lee




온 가족이 모였다. 만삭이 된 몸으로 남편과 이민 온 후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낳고 기르며 결혼생활 41년이 되니 식구가 12명이 되었다. 열 손가락이 넘는 대 식구가 되었다. 아들 둘에 며느리 둘, 그리고 4명의 손자 손녀들과 딸과 사위가 한자리에 모였다. 결혼 후 처음 친정에 온 딸과 사위를 위한 첫 친정 나들이 잔치다. 막 돌이 지난 손녀가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온통 사랑을 독차지하고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과 이런저런 이야기에 바쁜 애들을 위해 나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기에 분주하다.

모두 직장생활을 하며 살아가니 급하면 외식하기 일수라 엄마 밥이 그리운지 어쩌다 이렇게 집에 오면 맛있게 먹으니 엄마 마음은 뭐라도 해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 열심히 만들어 준다. 연년생인 애들 셋이 나이 40이 가까운 데도 집에 오면 어린애가 되는 모양이다. 식당에 가도 엄마 맛을 맛볼 수 없다며 옛날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이 먹고 싶단다. 애들이 원하는 음식도 만들어 주고 손자들도 보다 보면 애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는 나 자신이 녹초가 되어 한 번씩 몸살을 앓고 하지만 그래도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 무언가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식당에 가지 누가 집에서 밥해 먹느냐고 하겠지만 식당에 가면 돈도 많이 들지만 애들이 아직 어리니 한번 나갔다 오면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정신없다. 그냥 힘이 들어도 집에서 먹고 음식을 만들어서 집에 갈 때 조금씩이라도 싸 주면 너무나도 좋아한다.
며느리가 둘씩이나 되고 딸도 있으니 함께 하면 될 것 같지만 그 애들도 오랜만에 만났으니 시간을 즐기고 싶으리라 생각하며 이해한다. 언젠가 내가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할 때가 되면 그때 하면 되리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애들을 보며 그 나이 때 나를 생각해 보니 연 년생으로 세 아이들을 낳아서 직장을 잡을 꿈도 못 꾸었다. 기술도 없고 영어도 못하는 내가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청바지 공장이나 청소 같은 일인데 월급이 적어서 애들 맡기는 돈이 더 들기 때문에 큰아들이 6살 될 때까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림을 했다. 남들은 다들 직장을 잡아 일하며 돈도 벌고 영어도 배우며 생활도 윤택해져서 멋도 부리고 집도 사고 잘 살아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때 당시 애들이 빨리 커서 나도 그들처럼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 커버린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하고 함께 생활하며 웃고 즐기던 때가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듯 지금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이 모든 것이 어느 날 아름다운 추억이 되리라 생각하며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다.

주말에 동생들을 만나러 캘거리에서 온 큰아들 식구가 가고, 에드먼턴 서쪽에 사는 둘째도 가니 집안이 조용하다. 딸 내외는 내일 떠날 예정이니 멀리서 온 딸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멀리 살아 보고 싶어도 만나기 어려운 딸이니 더욱 애틋하고 무엇이든지 자상하게 챙겨주는 딸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며칠을 운전하며 집으로 갈 텐데 가면서 먹을 것을 이것저것 챙겨주며 평소에 하지 못한 것을 하나라도 더 해주고픈 마음뿐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 나이가 되니 주고 또 줘도 한없이 더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 봄 여름에 그렇게 요란하게 피는 꽃들도, 무성하게 자라나는 나무들도 소명을 다하여 가을과 겨울을 맞아야 하는 것처럼 생로병사의 진리 안에 생기고 소멸함을 반복한다. 우리의 세대가 저물어 가고 손자 손녀의 세대가 희망으로 자라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맹이들을 쫓아다니는 아들 며느리도 잠이 모자라 쩔쩔맨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며 말썽을 피우는 손주들을 틈틈이 봐주고 뒤치다꺼리하는 것이 일 하지 않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얼마나 더 많은 손자 손녀들을 주실는지 모르지만 그저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주위에 둘러보면 손자 손녀는커녕 혼기를 넘겨버린 젊은이들이 많다. 비혼이건 미혼이건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혼자 살며 늙어가는 자식의 모습을 보는 부모는 늘 마음 한 구석에 말 못 할 걱정이 있으리라. 물론 결혼하여 다 행복한 것도 아니고 혼자 산다고 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고 한 평생 고생만 하며 힘들게 살다 간 사람들도 많고, 혼자 살며 하고 싶은 일 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아이들을 낳고 가정을 이루어 사는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다.

결혼생활이 경제적으로 부족하고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아 괴롭고 힘들어 후회할 때도 있지만 날마다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강물이 바다로 가는 길이 순탄하지 만은 않듯이 돌부리에도 넘어지고 자갈밭에도 걸어야 한다. 비바람에 젖고 눈보라를 맞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 혼자보다 둘이 손잡고 힘을 합쳐 고난을 뚫고 가면 못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이 달라져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으려 하지 않는 요즘 세상에 고맙게도 두 며느리가 남매를 낳아 예쁘게 기르고 있는 것을 보면 한없는 축복이다. 이렇게 한 번씩 다녀가면 손자들은 훌쩍 커 대견스럽고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도 한없이 고맙다. 둘이 와서 대가족을 이룬 우리도 할 일을 다 한 것 같아서 좋다. 6월에 결혼한 딸 내외가 첫 친정 나들이를 온다기에 무척 기대를 했는데 가는 시간이 다가오니 벌써부터 서운한 마음이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그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기만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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