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없어졌네". 남편이 스파이크를 잃어버렸다며 발을 위로 올려 보여 주었다. 신발에 껴서 미끄러움을 방지하는 스파이크가 산행 도중에 빠져나갔다는 것을 안 것은 며칠 전 산행을 마치고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고, 길가에 있는 조그마한 가게에서 복권을 사 가지고 집에 왔을 때이다. 남편은 부리나케 주유소까지라도 돌아가 보겠다고 급히 갔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살아가면서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며 미련을 갖기보다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잊어버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스파이크는 겨울 산행을 위해서는 필수품이라서 꼭 있어야 한다. 겨울에 산길을 걸으면 미끄러워 위험하다며 친구가 선물을 한 것인데 한 짝을 잃어버려서 괜히 기분이 찜찜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다음에 그곳에 갈 기회가 있으면 길에서 주운 물건을 걸어놓는 곳에 가서 한번 확인해 보리라 생각하고 잊기로 하며 주말을 보냈는데 날씨가 우중충한 오늘은 수영을 가기도 싫고 집에서 뒹굴거리기도 싫어 지난번 다녀왔던 공원으로 방향을 잡고 집을 나섰다.
하늘은 구름으로 온통 회색인데 그 속에 있는 태양이 '나 여기 있어' 하는 듯 희미한 낯을 내민다. 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아도 태양은 있어야 할 곳의 자리를 지킨다. 실망 투성이인 현실에도 보이지 않는 희망이 있듯이 말이다. 이곳에 오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사방이 넓게 트여 시야가 시원해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린다. 넓은 벌판에는 개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강 건너편에는 절벽으로 길게 병풍이 쳐져 있고 절벽 꼭대기에는 집들이 있어 사람들이 산다.
절벽 아래로 긴 강이 흐른다. 벌써 강물이 얼어서 얼음 덩어리들이 강물 위를 둥둥 떠 내려간다. 지난주에 내린 눈은 거의 녹아 단단한 얼음이 되어 산책길은 미끄럽고 울퉁불퉁하다. 걸어가며 사람들이 땅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주어다 놓은 곳에 가서 남편이 지난번에 잃어버렸던 스파이크를 찾아보니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산길 어딘가에서 아직도 뒹굴고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 만약 오늘 우리가 스파이크를 이 넓은 산중에서 찾는다면 그건 정말 기적이야".라고 남편에게 말을 하며 걸어갔다.
주중이라 그런지 산길이 조용하다. 몇몇 사람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며 지나간다. 오늘은 웬일로 다람쥐도 새도 안 보인다. 비가 오려나 생각하며 하늘을 보니 먼지 같은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경사진 곳에 올라가서 강을 내려다보니 흐르는 강물로 인해 땅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 아찔하다. 몇 번을 걸은 길이라 나무고 계곡이고 다 눈에 익다. 속이 파인 나무도 있고 기운 없이 넘어진 나무가 길을 막고 누워있다.
숲 속은 조용하여 우리가 걷는 발자국 소리만 들리고 바람소리도 없다. 넓고 좁은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한 시간 정도를 걸으니 배가 출출하여 간식을 먹으며 지난번 강가를 걷다가 길이 끊겨 절벽을 오르던 곳을 바라보았다. 가파른 절벽을 기어오르며 나가는 길을 찾기 위해 안간힘 쓰던 생각이 난다. 간신히 길을 찾아 오른 곳에는 높다란 철망 담이 가로막혀 한참을 걸어 돌아 간신히 주택지를 찾아 집으로 돌아왔던 날이었다. 숲과 절벽을 헤매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높은 곳에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시내 가까운 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사실에 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환성을 지른다. 몇 번을 와도 싫증은커녕 점점 더 좋아진다. 그동안 여기저기 숲이 있는 곳은 다녀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이 끌린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서로 웃으며 스쳐 지나가고, 몇 번 마주친 사람들과는 가벼운 농담도 하며 다음을 약속한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진다. 눈발이 조금씩 굵어지고 바람도 불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숲 속은 싱그럽다. 산 짐승들은 어디로 가서 겨울을 나는지 궁금하다. 어딘가 그들 나름대로의 굴을 파고 겨울을 나겠지만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많이 오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솔길을 걷다 큰 산책로로 나오니 제법 눈이 많이 내린다. 그때 땅을 내려다보며 걷던 남편이 고개를 드는 순간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손짓을 하는 곳을 보니 높은 나뭇가지에 며칠 전 잃어버렸던 스파이크가 ' 날 찾아가세요' 하고 말하는 듯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나 높이 올려놓아서 산책길에 둥글어 다니는 막대기를 집어 간신히 뺐다. 찾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스파이크를 기적같이 우연히 찾으니 너무나 기분이 좋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찾으니 좋기도 하지만 길거리에 떨어진 물건을 집어서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모르는 사람의 따뜻한 손길과 사랑의 마음에 감사한다.
오다가다 길거리에 장갑이나 양말이 떨어져 있는 경우 그냥 무심히 지나쳤는데 이렇게 누군가의 세심한 마음으로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 나니 앞으로 길거리에 무언가 떨어져 있으면 나도 나뭇가지에 걸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야말로 오늘은 기적 같은 날이다. 이 넓은 산중에서 잃어버렸던 물건을 다시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현실이 됐다. 산속에는 길이 여러 갈래로 되어 길을 잘못 들어가면 엉뚱한 곳에 당도한다. 특히나 나처럼 방향감각이 둔하고 길눈이 어두운 사람은 하루 종일 산속을 헤맬 수 있다. 다행히 길눈이 어두운 덕분에 여러 번 간 곳도 처음 간 곳처럼 새로워서 나는 어디를 가나 늘 설레고 행복하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층 가볍다. 오기 전에 산책을 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한 공기로 마음엔 평화가 가득하다. 어떤 괴로움이나 좌절감을 한없이 품어 주는 자연에 감사한 또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