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덕분에 찾은... 추억의 재킷

by Chong Sook Lee



오늘아침 온도가 영상 10도로 춥다. 며칠 전만 해도 영상 30도를 웃돌아 너무 덥다고 했는데 비가 계속 와서 인지 온도가 뚝 떨어졌다. 갑자기 여름이 가고 벌써 가을이 온 것 같다. 따뜻한 옷을 입으려고 옷장을 둘러본다. 며칠 전에 옷장을 정리해서 두툼한 옷은 없고 얇고 시원한 옷만 보인다. 외출을 해야 하는데 여름옷은 너무 추울 것 같아 두꺼운 옷을 놓아둔 옷장으로 가본다. 오래전에 사서 여러 번 입다가 싫증 나서 걸어 놓은 진보라색 재킷이 보인다.


꺼내서 입어보니 아직도 멀쩡하고 사이즈도 딱 맞아 새로 산 것 같다. 한동안 열심히 입은 재킷인데 왜 구석에 처박혀서 외면을 당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입어서 편하고 유행도 타지 않아 좋은 옷인데 분명 내가 새 옷을 사면서 뒤편에 밀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옷인데 체형이 변하지 않아 다행이다. 가격도 착하고 세탁하기도 까다롭지 않아 즐겨 입던 옷인데 퇴직하고 코로나로 외출이 줄고부터 안 입게 된 것 같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덕분에 잊힌 옷을 찾아 입으니 옷을 새로 산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막상 옷쇼핑을 가서 보면 여러 가지가 맞지 않아 새 옷을 구입하기 힘들다. 색상이 좋아 입어보면 디자인이 이상하고, 유행하는 것을 입어보면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신발도 웬만하면 신고 다니던 것이 편해서 새로 사게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옷장이나 신발장을 보면 신제품이 별로 없다.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세상에 옷장사도 신발장사도 다 굶어 죽을 것 같다.


세월 따라 입맛도 단순해져 간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아이들과 식당에 가면 좋고 비싼 음식보다 옛날에 먹던 음식을 주문하게 된다. 입맛도, 몸도, 편하고 수수한 것으로 변하는 자신을 불 때마다 부모님 생각이 난다. 어쩌다 고국을 방문하면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해드리고 싶어 식당에 가면 시시한 것을 드시던 생각이 난다. 왜 그러느냐고 여쭈면 그런 음식이 속이 편하다 는 말씀을 종종 하시었다. 어느새 나도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 부모님을 이해한다.


몸에 익고 입에 익은 것들이 좋다. 새것도 좋고 멋진 것도 좋은데 내가 쓰고 입고 먹던 것들이 좋다. 새로운 만남도 좋고 새로운 모임도 좋은데 특별히 재미난 대화거리는 없어도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좋다. 편한 옷을 입고 편한 신을 신고 편한 친구들과 함께 하며 따끈한 칼국수를 먹고 싶은 날이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찾은 재킷은 지나간 향수 같은 옷이다.


언젠가 재킷을 입고 쇼핑센터 안에 서 있는데 어느 여자분이 웃으며 가까이 다가와서 나에게 물었던 생각이 난다. "너무 예뻐요. 그 재킷 어디서 사셨어요?" 나는 깜짝 놀라 웃으며 대답했다. "오래돼서 어디서 샀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했더니 " 어디에서 파는지 알면 당장에 가서 저도 사고 싶어요" 하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어 옷이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대화를 하며 "마음에 드는 재킷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하며 헤어진 사연이 있다.


입을 때마다 새롭고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재킷을 입고 걸으니 날개가 달린 듯 몸이 가볍다. 별것 아닌 재킷이 보는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제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용없고 내가 편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오래되어 잊혔던 재킷을 찾아 입으니 숨겨두었던 보물을 찾은 것 같다. 날이 춥지 않았으면 구석에서 잠을 잘뻔했는데 날씨 덕분에 다시 세상 구경을 하게 됐다.


입어서 편한 옷처럼 만나서 편한 사람을 만나며 사는 세상은 아름답다.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길을 걸으며 사는 게 제일이다. 날씨 덕분에 추억의 재킷을 찾았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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