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은 계속되고 삶도 익어간다

by Chong Sook Lee



새 하루가 밝았다. 나도, 세상도 어제보다 하루 더 늙어간다. 나무는 더 푸르고 피었던 꽃은 시들고 새로운 꽃 봉오리가 피어난다. 잔디는 어제보다 더 자라 있고 풀들도 피곤한지 옆으로 길게 누워있다. 하늘은 구름을 숨기고 말간 얼굴로 세상을 내려다보는 싱그러운 아침이다. 어제 손주들이 타고 놀던 그네가 삐딱하게 걸려있는 모습이 정겹다. 가지마다 빼곡하게 매달려 있는 사과는 햇살을 받으며 빨갛게 익어간다. 아이들이 놀던 농구대는 뒤뜰 한편에 세워져 있고 어른들을 위한 피크닉 테이블은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 한때는 꽤나 사랑을 받은 물건일 텐데 세월 따라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이 약간은 쓸쓸해 보인다. 늦게 핀 동백꽃이 새파란 이파리들 틈에 곱게 남아서 피고, 오래된 옛날 티 테이블과 의자 세트가 정원에 한가하게 놓여 있다. 정원을 걷다가 의자에 앉아본다. 새빨간 단풍나무가 옆집 담장에서 곱게 자라고 있다. 담장 옆으로는 체리나무가 체리 몇 개 를 달고 서있고 옛날에 쓰던 가구도 놓여 있다. 추억이 많이 담긴 집으로 백 년 정도는 되어 보인다. 배나무에 자그마한 배가 다닥다닥 열려있고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창고가 있다. 그 뒤로는 커다란 소나무가 새파란 새 솔방울들을 여기저기 달고 뒤뜰을 지킨다. 자연 그대로 꾸미지 않은 집이 오히려 좋다. 동쪽에서 눈부신 햇살이 떠오르고 있는 평화로운 아침이다. 매일매일 맞는 아침이지만 멀리 와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아침은 더욱 새롭다. 아이들은 식당을 다니며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를 좋아하여 오늘은 이곳에 올 때마다 가는 식당으로 간다. 아주 작은 일식집이다. 영업시간이 짧아서 일찍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면 먹고 다음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던 식당이다. 그런데 코로나로 주문만 받는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고 다음날 정해진 시간에 음식을 받아오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고 한다. 가격은 만만치 않아도 음식이 깔끔해서 아이들은 좋아한다. 세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다. 재택근무로 일을 하고 원격수업으로 교육을 받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하지 못하던 일이다. 코로나는 세상을 여러 방면으로 바꿔놓았고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루하루 새로운 해가 떠오르듯이 사람들은 날마다 매 순간 달라지는 세상을 받아들이며 산다.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앞에 인간은 무능하기에 순응하며 산다. 우리가 어느새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는 나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가족을 이끌며 앞장 서던 걸음은 느려지고 아이들의 뒤를 따라간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저물어가듯 우리는 아이들이 걸어가는 길을 축복하며 자리를 내어 주면 된다. 그들이 살아가는 인생길에 등불이 되어 길을 밝혀주며 이끌어주면 된다. 처음 부모가 되었을 때가 생각난다. 모든 것이 어설프고 부족했는데 세월이 약 이라는 말처럼 이제는 노년을 맞고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봄이 오면 겨울이 꼬리를 감추고, 겨울이 오면 가을은 슬그머니 자리를 내준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던 시간이 가고 아이들을 따라가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를 향하는지 같은 방향을 보며 걸어가면 된다. 아이들이 우리를 믿고 따라준 것 같이 우리도 그들을 믿고 함께 하면 된다. 식당에 도착해서 주문해 놓은 음식을 가지고 가까이에 있는 공원으로 간다. 바람은 불지만 날이 좋다. 공원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고 손주들은 놀이터에서 논다. 손주들은 어디를 가도 재미있게 논다. 후식으로 커피와 도넛을 먹으며 딸네 집 가까이에 있는 바닷가로 향한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다. 바다 위 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한가롭게 떠 있고 요트를 타거나 바닷가를 걷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서 흘러왔는지 모르는 나무조각들이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나무로 집을 짓기도 하고 모래사장에 뒹굴어 다니는 조개껍질을 가지고 논다. 나무조각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지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시간이 가고 가만히 있어도 좋은 시간이 왔다. 내게 온 지금이 좋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이 순간을 사랑하며 맘껏 즐긴다. 우리들의 여정은 계속되고 삶도 익어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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