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을 한다고 기다리고 설렜는데 벌써 이틀이 지났다. 손주들은 뛰어놀고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백일 된 손자의 재롱을 보며 웃고 즐기는 날이 이제 추억이 되어간다.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고 나무 조각으로 집을 지으며 바닷가를 걷던 것도 지나간 과거가 되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지난 며칠 간의 여행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대충 정리를 하고 뜰에 나가 걸어본다. 흐드러지게 핀 장미꽃 냄새에 취한다. 분홍색 장미꽃이 참으로 예쁘고 탐스럽게 피어 있다. 시들어 떨어지는 꽃도 있고, 봉우리를 살며시 열며 피어나는 꽃도 있다.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 어떤 말로도 부족하다. 가까운 산으로 산책을 나간다. 여러 가지 들꽃이 사방에 피어 있다. 아직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꽃을 다 떨어뜨리고 열매가 익어 가는 나무도 있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빅토리아 시내가 보이는 바위 산으로 간다. 바닷바람이 조금 불지만 걷다 보니 더워진다. 딸네 집에 올 때마다 찾아오는 산인데 험하지 않고 조촐하고 아기자기하며 구경거리가 많다. 정상에 오르니 앞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넓은 바다가 보인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서로 손을 잡고 있다.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모르게 끝없는 수평선이다. 옆으로는 바다에 이어진 숲이 우거져 있고 사람들이 커다란 별장을 지어 놓고 산다. 바위 위에 지어 놓은 아슬아슬 한 집도 있고,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황홀한 3층짜리 펜션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차를 타고 멀리 가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동네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바위틈에서 혼자 우뚝 선 채 자라는 나무가 유난히 눈에 띈다. 비바람 눈보라에 홀로 살아남은 모습이 멋지다. 앞을 바라보니 다운타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크고 작은 빌딩이 서있고 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곳도 보인다. 사시사철 날씨가 좋고 겨울에도 춥지 않아서 그런지 참으로 아름다운 절경이다. 딸 덕분에 여러 번 왔지만 너무나 크기 때문에 구경을 하려면 몇 달이 걸려도 다 보지 못한다. 손주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여기저기 구경하고 남편과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올라갈 때는 숨이 조금 찼는데 내려올 때는 아주 편하게 내려온다.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고 산책을 하는 평화로운 동네라서 동네를 걷는 내 마음도 편안해진다. 커다란 개가 배를 깔고 누워서 우리를 바라본다. 짖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가까이 가서 보니 만사가 귀찮은 것처럼 무심하게 누웠다 앉았다 한다. 산책을 마치고 아이들이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간다. 식당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걸어가며 사람들 사는 것을 본다. 오래된 동네라 운치가 있는데 한쪽에는 길을 막고 공사 중이다. 여러 채의 집을 신축하는 모양이다. 어디든지 개발을 내세워 자연을 허물고 있다. 가만히 있는 대로 놔두면 좋으련만 돈을 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조금 걷다 보니 상가가 보인다. 식당을 비롯해서 없는 것이 없다. 차들이 바쁘게 오가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위해 급하게 움직인다. 13명이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식당이 있어 다행이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 먹으며 담소한다. 장소가 좋아 온 식구가 모두 모여 함께 하며 사진도 찍고 이야기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다시 산책을 하며 집으로 간다. 손주들의 손을 잡고 걸으니 너무 좋다. 하루종일 놀고도 에너지가 남아 지치지 않고 신나게 노는 손주들이 부럽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술 한잔씩 마시며 지나간 이야기를 하며 왁자지껄 한다. 참 좋은 나이다. 아이들 노는 것을 보니 지나간 날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언제 그 많은 세월이 갔는지 모른다.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해가 저물고 하루가 간다. 내일은 또 다른 행운이 우리를 찾아올 것을 기대하며 고마운 오늘과 작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