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에... 힘들어하는 지구

by Chong Sook Lee


하늘이 파랗다. 연기로 뿌옇던 하늘이 오랜만에 제 색을 찾았다. 밤새도록 요란스럽던 천둥 번개와 무섭게 퍼붓던 비바람은 온 데 간 데 없고 청명하다. 세계는 지금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어딘가는 홍수로 모든 것이 잠기고, 어딘가는 폭염으로 지쳐가고 어딘가는 꺼질 줄 모르고 무섭게 타오르는 산불 때문에 대피하며 우왕좌왕하며 산다. 관광지에 난 불 때문에 그곳에 여행을 하던 관광객들이 대피소에서 구조를 기다린다.


그냥 눈으로 봐서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하늘에서 물폭탄이 쏟아지고 폭설을 내리고 지구를 펄펄 끓인다. 바쁘게 살 때는 외면한 하늘인데 지금은 자주 본다. 침묵하고 있어 그 마음은 알 수 없는데 하늘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난다. 그리운 사람도 생각나고, 가고 싶은 곳도 생각나고, 하고 싶은 말도 생각난다.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보면 묵묵히 나를 내려다보며 침묵으로 나를 위로해 주고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속이 상하고 억울할 때는 아무 죄도 없는 하늘을 원망하고 책임을 묻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늘을 보고 야속해하기도 한다. 하늘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뿐인데 힘든 일이 있으면 하늘에 대고 원망한다. 어릴 때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갖지 못할 때 하느님이 미웠는데 지금은 감사하며 고개를 숙인다. 하늘이 이런 인간의 간사한 모습에 기가 막혀서 웃을 것이다.


오랜만에 하늘을 보니 여러 가지가 생각난다. 오래전 캐나다에 멋 모르고 철없는 나이에 이민 와서 살 때 가 떠오른다. 4월 말에 이민을 왔는데 봄이 오기 전이라 잔디는 누렇고 나무는 헐벗은 모습으로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서 있던 기억이 난다. 봄도 아닌 것이, 겨울도 아닌 것이 봄이라고는 하는데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꽃이 만발하는 고국의 4월을 뒤로하고 온 이곳의 황량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루 사이에 내 삶은 달라졌다. 어제는 부모 형제들과 있었는데 오늘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에 살게 되었다는 현실에 어리둥절하였다. 영어로 말을 하고 영어로 글을 쓰며 나와 다르게 생긴 외국인 들과 생활이 시작되었다. 단 하나 같은 것이 있다면 파란 하늘이다. 하늘을 보면 같은 하늘인데 고국의 하늘을 향해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고국을 떠나서 이곳에 와서 살다 보니 한국은 나의 조국이자 나의 사랑이었다. 한국말과 한글과 한국 사람들이 너무나 그리웠다. 한국을 떠나 있어도 마음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살았다.


하늘에는 해가 있고 달과 별이 있는데 이상하게 그 이상의 것이 있다. 하늘에는 위로가 있고 그리움이 있고 감사가 있다. 구름에 비와 눈이 있는데 눈물도 있고 슬픔도 있다.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은 어느새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난다. 하늘은 우리의 마음 따라 변한다. 파란 하늘을 보면 희망이 생기고 구름이 오고 가는 하늘은 만남과 이별을 하는 인생살이를 닮았다.


하늘에도, 땅 위에도 나름대로의 모습을 안고 산다. 땅 위에는 나무가 있고 숲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하늘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무엇이 있는지 알기 위해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연구한다. 도전하는 인간이 있어 세상은 발전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의 조상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지금 보면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그때는 그게 삶이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불행이나 고난도 세월이 가면 이해가 될 것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도 지나가고 시간이 해결해 준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 일이 많다.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일들이 생겨나고 잊히며 세월이 간다. 비에 젖어있던 나무들이 생기를 되찾아 파릇파릇하고 세상은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 폭염도 없고 홍수도 없고 산불도 없는 유토피아는 꿈에도 없다. 더운 날이 계속되고 이런 날들이 더 많아진다고 한다. 우리는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가 만들어 내는 세상에 사는 것이다.


(사진: 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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