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날은 추억이 찾아오는 날

by Chong Sook Lee


안개가 잔뜩 낀 아침이다. 지척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자욱하다. 이렇게 안개 낀 날은 옛날에 유행하던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라는 유행가 가사가 떠올라 흥얼거리게 된다. 이제는 가사조차 희미한 노래지만 안개 낀 날엔 옛날로 돌아가 부른다. 하늘은 구름이 덮여 있고 세상은 안개가 잔뜩 껴있어 을씨년스럽다. 안개를 보면 이민 초기에 앞이 보이지 않던 날들이 생각난다. 세계적인 불황으로 많은 직장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직업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직업은 없어 뭐라도 해야 했던 안개 낀 날들이 이어졌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었던 선택권이 없었던 시절이다. 바닥부터 시작해도 먹고살기 힘들었는데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주위에 도움으로 직장을 잡고 힘든 고비를 넘겼다. 연년생으로 세 아이들은 태어나 남편 혼자 다섯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조차도 고마워하며 일을 하는 남편이 결국 건강에 이상이 생겨 힘겨운 날이 계속되었다. 신경을 많이 써서 위염이 생기고 생전 몸을 쓰는 일을 해보지 않은 남편은 허리에 이상이 생겨 하루아침에 몸져눕기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어린 세 아이들을 맡길 곳도 없고 내가 직업을 찾기도 힘든 상태에서 아무런 대책이 없는 시간이 갔다. 그래도 시간이 가고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 영어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이민 온 지 6년 만에 드디어 나는 화려한 외출을 했다. 영어를 배우고 직업을 갖으며 안개 낀듯하여 앞이 보이지 않던 날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다.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며 살림을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시간이 갔다. 남편도 틈틈이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서 열심히 일을 하여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사업도 하게 되었다.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 원하는 학교에서 졸업하여 직업을 잡고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하여 아기들 낳고 잘 살아간다. 세월 따라 우리도 정년퇴직을 하여 노후를 편하게 지내고 있으니 좋다. 유난히 안개가 많이 낀 날은 지난날이 생각난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힘든 날들이 이제는 추억이 되어 돌아온다. 젊을 때 고생은 돈주고도 하라는 말이 있다. 이민초기에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세월이 흐른 지금은 옛 친구들을 만나면 웃으며 한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도 오고 가지 않을 것 같은 시간도 간다. 며칠 전만 해도 30도가 넘어가 여름이 다시 온다고 하던 중국 어딘가에 폭설이 와서 난리가 났다. 세상은 갑자기 생기는 일이 많다. 갑자기 안개가 끼고, 폭설이 내리고, 지진이 발생하고 전쟁을 한다. 어디서부터 생겨난 결과인지 모르지만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안개가 무엇을 가져올지는 모른다. 좋은 날을 가져올지, 추운 날을 가져올지 모른다. 하늘이 하는 일이니 하늘에 맡겨야 한다. 이유도 모르는 채 걱정하고 일일이 신경을 쓰면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안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으면 안개가 걷힐 때까지 지켜보면 된다.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날은 외출을 자제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름에는 산불이 많이 나서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고 요즘에는 언제 걷힐지 모르는 안개가 앞을 막지만 없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세상살이 앞이 안 보일 때는 안개나 연기뿐이 아니다. 경기가 나빠지고 금리가 오르고 물건값이 모르는 것을 보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일을 기계가 하고, 인공지능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세상에 사람들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장을 보러 가면 모든 것들이 올라서 놀랄 때가 많은데 쓰는 사람은 여전히 잘 쓴다.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기 위한 소비가 많아졌다. 사서 안 쓰고 쌓아놓고 있다가 급기야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버리는 풍조가 생겼다. 정작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은데 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욕심과 허세로 세상은 넘쳐난다. 며칠 전 유튜브를 보는데 동대문시장을 보여주는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산더미같이 쌓인 옷들이 무조건 1000원, 무조건 3000원이라고 쓰여 있다. 사람들이 구름 떼 같이 몰려들어 너도나도 옷을 한 보따리씩 사간다. 물론 물건의 질이 어떨지 모르지만 그 많은 옷들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 옷을 사가지고 하루만 입고 버리는 것도 아닐 텐데 엄청난 양이다. 그런 옷들이 쓰레기를 만들고 재활용품을 만들기는 하겠지만 상상이 안 간다. 내일일은 알 수 없지만 세상을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투성이다. 집을 계속 지어도 모자라고 옷장에 옷이 넘쳐도 입을 옷이 없다고 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더없이 편리한 세상에 사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그렇지도 않다.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고 몸과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많다. 현대 사회가 병을 만드는지 이름을 알 수 없는 희귀한 병으로 고통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지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가 안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든 돈이 인간을 돈의 노예로 만든 지는 오래되었다. 돈으로 병을 고치고 사교를 하고 돈으로 권력을 사고파는 세상이다. 너무 깨끗한 물에서 물고기는 살 수 없다고 한다.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하루를 살다 죽어도 깨끗한 물에서 살아야 하고 오염되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얼마 가지 못해 병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은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닌다. 여전히 안개가 걷히지 않는 창밖을 내다보며 유행가를 흥얼댄다. 무심한 참새는 아무것도 없는 땅을 찍어대고 있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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