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고... 추억을 만든다

by Chong Sook Lee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완연한 겨울이다. 털모자와 목도리 그리고 장갑까지 끼고 걷는다. 오랜만에 손주들과의 산책이다. 어느새 손주들이 믿음직한 버팀목이 되어 간다. 12살짜리 손자는 키가 나와 비슷하게 크고 걸음도 빨라 내가 뛰어가야 한다. 10살짜리 손녀딸은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얼었던 계곡물이 녹아 조용히 흐른다. 나무 가지들이 여기저기 누워서 하늘을 본다. 계곡물이 얼지 않아 옆에 서있는 나무들 그림자가 물에 비친다. 파란 하늘이 계곡에 앉아서 손을 흔든다. 멋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산책로는 낙엽이 뒹굴고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에는 버섯이 자란다. 눈이 오기 전에 다람쥐들이 겨울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오고 간다. 그들은 추운 겨울에 어디서 사는지 궁금하다.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굴을 파놓고 겨울을 낼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손주들을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고 손주들을 따라간다. 다리가 있다. 쇠로 된 다리를 따라 걸으면 양쪽으로 길이 있다. 오른쪽은 동네로 나가는 길이고 곧바로 가면 더 멀리 가는 길이다. 몇 번 온길이라고 손주들이 앞장을 선다. 더 가야 하는데 오른쪽으로 꺾으며 집에 가자고 한다. 집에 가면 할 일도 없고 심심할 텐데 집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집에 가면 컴퓨터를 보고 핸드폰으로 게임을 할 수 있으니 빨리 가려고 한다. 아이들 구경하기가 힘든 세상이다.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줄긴 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바깥활동 보다 집안에서 둥글 거리며 놀기를 좋아한다. 놀거리가 없던 시절에는 동네 아이들과 줄넘기도 하고 공놀이도 하며 놀았는데 지금은 혼자 놀기를 선호한다. 컴퓨터를 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꼼짝하기 싫어진다. 틈틈이 나와서 걸으며 자연을 접하면 좋을 것 같은데 요즘 애들은 강제로 무엇을 시키지 않는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컴퓨터가 없고 고작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라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는데 세상이 달라졌다. 이제는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시대다. 아무리 어려도 본인이 싫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어릴 때 무엇이라도 가르치면 좋을 것 같아서 틈틈이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던 생각이 난다. 수영과 태권도 그리고 한글학교와 바이올린 학교를 보내고 피아노는 선생님이 집으로 와서 세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제와 생각하니 몸은 힘들었어도 잘한 것 같다. 하늘이 맑고 푸르다. 산책로를 걸으며 손주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돌을 집어서 계곡물에 던져보기도 하고 나무를 바라보며 신기해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나무들이 빼곡하다. 여름에 따먹던 딸기는 없어지고 마른풀들만 바람에 흔들린다. 11월 중순인데 지난번에 왔던 눈이 전부 녹고 없어 너무 좋다. 보통 때 같으면 눈이 하얗게 왔을 때인데 올해는 날씨가 우리를 많이 봐주는 것 같다. 눈이 오기 전에 열심히 걸어야 한다. 한번 눈이 오면 폭설이 오기 때문에 눈과 오랫동안 함께 해야 한다. 앞서고 뒤서며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며 손주들과 걸으면 기분이 좋다. 손주들이 학교 이야기와 친구들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괜히 나도 우리 할머니가 보고 싶어 진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부모님이 서울에 가셨기 때문에 일 년 동안 할머니와 같이 생활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지만 할머니와 하루하루 추억을 만들며 보낸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배우기 시작한 한글을 잘 쓰지 못했다.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대로 부모님께 쓴 편지를 읽어보며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엉망인 것을 보고 할머니와 웃던 생각이 난다. 그 뒤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가끔씩 오셔서 우리와 생활하시던 할머니가 그립다. 나도 손주들과 걸으며 좋은 추억을 심어주고 싶다. 어느 날 우리가 없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것을 하던 기억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주들이 우리 집에 오면 같이 케이크도 만들고 쿠키도 만들고 페인팅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동네를 돌며 구경하고 놀이터에서 놀고 가지고 간 간식거리를 꺼내 먹으며 간단한 피크닉을 하기도 한다. 별것 아닌 작은 것들도 그들의 기억 속에 있는지 아주 오래전 이야기도 하는 것이 신기하다. 손자 손녀와 할머니 할아버지로 만난 인연이 이어지며 세월이 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오다 보니 덥기 시작한다. 모자도 먹고 목도리와 장갑도 벗는다. 눈부신 햇살이 우리 모두를 인도한다. 손주들에게 "같이 걸어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며 꼭 껴안아 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본다. 빨갛고 노랗게 익어가던 단풍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도 아름답던 모습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머문다. 우리가 떠나고 없어도 손주들의 가슴에 우리가 남아 추억할 것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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