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은 많은데 하지 않고 산다. 여기저기 일거리가 보이는데 못 본체 한다. 사람이 사는 일이 쉽지 않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잠을 설치며 바쁘게 살았는데 시간이 넘쳐난다. 아침 늦게 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꾸물대다 보면 열 시쯤 된다. 천천히 나갈 준비를 하고 1시간쯤 산책을 하고 들어오면 11시 가 넘는다.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어느새 반나절이 간다. 점심을 먹고 나면 나른해지고 낮잠이나 자고 싶다. 노는 것도 피곤한지 누워서 한숨 자고 나면 개운하다. 밥 먹고 낮잠을 잔 것 밖에는 없는데 입이 심심하여 간단한 간식을 먹고 다시 동네 한 바퀴 돈다. 눈이 없으니 좋다. 겨울이 눈이 없이 이대로 지나가면 좋겠다. 집 앞으로 걸으며 길을 건너서 가다 보면 성당을 지나면 작은 쇼핑몰이 보인다. 물건을 사지는 않지만 오고 가는 사람들 구경을 한다. 날씨가 추워서 모두들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웅크리고 걷는다. 은행과 약국을 지나 치과 옆에 있는 어린이집 앞을 지난다. 며칠 전에 아이를 데리러 온 사람이 자동차로 유리창을 들이받아 악살박살이 났다. 유리창이 있던 곳을 넓은 합판으로 가려 놓았는데 여전히 고치지 않고 그대로다. 그 옆에는 오래된 술집이 있는데 여전히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그 앞 건물에는 식당이 여러 가지 있고 세븐일레븐이 오랫동안 장사를 했다. 주유소에 문제가 생겨서 땅을 뒤집고 청소를 하고 도로로 만들고 가게는 문을 닫았다. 세븐일레븐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고 가며 동네가 법석 대며 시끌시끌했는데 가게가 없어진 뒤에는 조용해서 을씨년스럽다. 가게 하나 없어진 것이 이리도 동네를 달라지게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유소와 구멍가게를 하면서 여러 가지 식료 품과 생필품을 팔고 여러 가지 즉석 음식도 팔았다. 길건너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점심시간이나 하교시간에 들려서 이것저것 사서 먹었는데 가게가 없어지니 학생들이 얼씬도 하지 않아 동네가 쓸쓸하다. 그래도 좋은 점은 학생들이 오지 않으니 쓰레기가 없어 동네가 깨끗하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오고 가다 보면 이 사람 저 사람이 버린 쓰레기가 이리저리 뒹굴어 다녔는데 지금은 휴지하나 없이 깨끗해서 좋다. 길을 건너면 두 개의 고등학교가 있고 사이에 체육관이 하나 있다. 하나는 천주교 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공립학교이다. 체육관에는 수영장과 실내 테니스 코트가 있고 여러 가지 운동기계가 있다. 건물 앞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있고 학교 건물 뒤에는 운동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운동을 하고 이런저런 행사를 한다. 테니스 코트가 여러 개 있어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고 그 옆에는 스케이트 보드 시설이 있어 그곳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묘기를 부린다. 길을 따라 걸으면 갈매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기도 하고 벌판을 지키는 모습도 보인다. 계속 앞으로 걸어서 건너면 얼마 전부터 짓기 시작한 콘도가 보인다. 완공이 되려면 몇 년에 걸리겠지만 높은 빌딩이 없는 동네이기 때문에 이 동네의 명물이 될 것이다. 초급대학교가 있던 자리인데 세월이 흘러서 주인이 몇 번 바뀌다 보니 업종이 완전히 바뀐 것 같다. 크레인이 오르내리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해가 짧아서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무언가를 하려는지 바쁘게 움직인다. 길을 건너면 초등학교가 있다. 우리 세 아이들이 다니던 곳이라서 정이 들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운동장을 걸어본다. 빨갛고 노란색으로 칠한 놀이터가 눈에 익다. 재미있게 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부모가 되어 사느라 바쁜 아이들이 보고 싶다. 시어머니가 오셨을 때 아이들 쉬는 시간에 학교 운동장 언덕에 할머니가 서 계시면 아이들이 쪼르르 와서 할머니를 한번 안고 다시 놀던 곳이다. 여름에는 송이버섯이 여기저기 나오고 가을에는 예쁜 단풍을 달고 서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있어 오고 가며 앉아서 쉬다가기도 한다. 지난가을에는 나무 하나가 어찌나 곱게 물들었는지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단풍잎을 만지던 생각이 난다. 날씨가 추워서 인지 학교운동장에 노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고 심심한 까치 두 마리가 날아다니며 모래를 찍고 있다. 언덕을 넘으면 우리 집이 보인다. 처음에는 빨간색 지붕에 하얀색 담이었는데 34년을 넘게 살다 보니 회색 지붕에 회색 담이 되었다. 날씨가 추워 지붕 위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난다. 집에 들어가서 핫초콜릿 한 잔 맛있게 타서 먹어야겠다. 할 일은 하지 않고 그럭저럭 또 하루가 간다. 어제처럼 또 다른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