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한 음식이 그리운 날

by Chong Sook Lee


토끼 한 마리가 우리 집 앞뜰 마른 잔디 위에 앉아 졸고 있다. 눈이 올 듯 흐린 날은 수수한 옛날 음식이 먹고 싶다. 물건이 넘쳐난다. 먹을 것도 많고 입는 옷도 많다. 너무 많아 넘치다 못해 처치곤란이다. 놓을 곳이 없는데도 계속 만들고 남으면 버린다. 물건값이 비싸서 걱정이라고 하는데 버리는 물건은 더 많아졌다. 내가 자랄 때 먹던 수수한 음식이 고급음식이 되었다. 떡볶이 순대 호떡 붕어빵은 이미 싸서 먹는 서민음식이 아니다. 옷도 신발도 유명 브랜드가 아니면 우습게 본다. 시장에 가보면 싸구려 물건들이 어디서 왔는지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지금은 1년에 한 번씩 강산이 변한다. 있던 것이 없어지고 없던 것이 생겨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바뀌고 변하고 없어지고 생겨나고 세월이 간다. 옛날에는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이 맞았지만 지금은 너무 잘 먹어서 생기는 현대병으로 죽는 사람이 많아졌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음식이 있다. 한국사람은 한식을 먹고 서양에서는 양식을 먹는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현대식이라고 양식을 먹으면 간편하고 영양가가 높다고 생각하며 양식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조상 대대로 한식을 먹은 우리가 양식을 먹으며 생기는 병도 많다. 부자병이라고 하는 당뇨병이 많고 심장질환도 많다. 양식에서 오는 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음식 역시 한식을 주로 먹다가 양식으로 바꾼 뒤부터는 현대병이 더 많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래전 남편이 심하게 아픈 적이 있다. 5년 동안 해마다 뱃속에 이상이 생겨서 응급실을 가야 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는 동안 같이 입원해 있던 지인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국 사람은 한식을 먹어야 한다는 여러 가지 예를 들면서 퇴원하면 한식을 먹으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 관찰을 하며 한식을 먹으며 남편은 건강을 되찾았다. 이민 초기에 한식을 구하기가 어려워 양식을 먹기 시작했지만 생각해 보면 역시 한국 사람 체질에는 한식이 맞는 것을 실감한다. 입맛 없을 때 김치를 먹고 동치미를 먹으면 식욕이 돈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냉면을 먹고, 추운 겨울에 뜨끈뜨끈한 잔치국수를 먹으면 기운이 난다. 그런 음식에 영양가가 얼마나 많은 지는 모르지만 입맛을 돋우고 식욕을 만드는 음식을 먹으면 건강은 자연히 따라온다. 치즈를 먹고 자란 사람은 치즈를 맛있게 먹고, 김치를 먹고 자란 우리는 김치를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음식에는 나름대로의 영양소가 있어 골고루 먹으면 영양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 어릴 적 편식은 누구나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없어진다. 어릴 적 안 먹던 음식도 나이가 들면서 본연의 맛을 알게 되어 좋아하게 된다. 산나물은 할머니 음식이라고 먹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나이에 따라 입맛도 달라지는 것 같다. 먹어보지도 않고 생긴 게 이상하다고 안 먹고, 냄새를 맡고 입맛에 안 먹는다고 싫다고 했는데 지금은 무엇이든지 잘 먹는다. 음식이야말로 우리 몸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일과 채소를 비롯해서 육류와 생선종류는 참으로 많다. 그중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주로 먹는데 바다가 먼 곳에 사는 이유로 바닷 생선을 자주 못 먹는 것이 아쉽다. 그래도 어쩌다 슈퍼에 싱싱한 생태나 고등어가 들어오면 사서 먹는다. 겨울에 먹는 생태찌개는 그야말로 속까지 시원하다. 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끓이다가 나중에 생태를 넣어 만들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이른 저녁을 먹고 소화가 거의 다 될 때 아버지는 집에 오신다. 엄마는 상을 차린다. 조그만 자개상에 반찬 몇 개를 놓고 아랫목에 넣어둔 아버지 진지 그릇을 꺼내 놓는다. 부엌에서 나는 동태찌개 냄새가 창호지 문을 통해 코를 자극한다. 배가 부르도록 먹었는데 식욕을 자극하여 배가 고프지 시작한다. 엄마가 뚝배기에 팔팔 끓는 동태찌개를 상에다 놓으면 아버지는 맛있게 드신다. 무슨 음식이든 맛있게 드시는 아버지가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킨다. 겨울에 찬 비빔국수를 드시면서도 땀을 흘리시는 아버지가 땀을 흘리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식사를 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배가 부른데도 아버지 드시는 모습은 배를 고프게 만들던 추억의 날이다. 자상하신 아버지는 우리가 어릴 때 비빔국수나 비빔밥을 잘 만들어 주셨다. 있는 반찬 넣고 살살 비벼 주시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우리 육 남매가 맛있다고 더 비벼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게 그렇게 맛있니?" 하시며 더 비벼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만드신 비빔국수도, 손칼국수도 예술이다. 구김살 하나 없이 얇게 밀어 가늘게 썰어 만든 칼국수와 김치 몇 조각 넣어 만든 비빔국수의 맛은 잊지 못해서 자라면서 먹은 기억을 가지고 흉내를 내면서 살아간다. 입에서 맛있는 음식은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 멋있는 요리라서 먹어보면 별 맛이 없을 수도 있고, 보기에는 수수해 보여도 먹을수록 구수한 음식이 있다. 호텔 음식은 깔끔하고 예쁘지만 시장 국밥집에서 파는 국밥을 더 좋아한다. 언젠가 딸과 함께 부산 해운대를 여행하게 되었다. 해운대 앞에 돼지국밥집이 많아 보기 좋은 집으로 갔더니 신문에 나온 집이라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고픈데 기다리기 힘들어서 길 건너에 있는 '할머니 돼지국밥집'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가게 앞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아 그 집으로 들어갔는데 손님이 별로 없고 나이 들은 할머니가 국밥을 만들어 주신다. 반찬은 새우젓과 깍두기가 전부다. 수수해 보이는 국밥집이지만 시끄럽지 않아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국밥을 기다렸다. 할머니가 정성 들여 만든 국밥은 그야말로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었다. 신문에 난 집이라고 줄을 섰으면 들어가지도 못했을 텐데 길 건너 집에서 정말 맛있는 돼지국밥을 먹었다. 지금도 해운대 보다 그 할머니 국밥이 더 그립다. 사랑이 듬뿍 들어간 돼지국밥이 먹고 싶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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