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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Apr 24. 2020

시작은... 언젠가 끝이 된다



뭉게구름이 평화롭다.(사진:이종숙)



한 시간을 걸어 두 번째 다리까지 갔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강물은 엄청 빠르게 흐른다. 옆에 쌓여있던 얼음이 녹아 조각이 되어 떠 내려오는 모습이 연꽃의 모양처럼 보인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걷는다. 봄맞이를 하러 나온 사람이 몇 명 지나갈 뿐 별로 사람이 없어 다리를 건너서 강가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서 강물을 바라본다. 물이 지저분하지만 머지않아 깨끗해지면 사람들이 낚시도 하고 가를 걸을 것이다. 어제 평소보다 더 많이 걸었더니 오늘 아침에 몸이 뻐근해서 오늘은 짧게 산책을 하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다리를 건너서 오던 길로 가려는데 숲 속에 오솔길이 보여 그 길로 걷기로 했다. 가을에 강가를 걸었던 기억으로 오솔길로 접어들었는데 길이 너무 질척해서 다시 돌아 나와 다른 길로 들어가 걷기 시작했다.



멋진 디자인의 다리가 매력있다.(사진:이종숙)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도 없으니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오솔길 입구도 역시 질척했지만 그대로 가다 보면 먼저 길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걸어 들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도 길은 여전히 질척하여 다시 나올까 생각하다가 그냥 걸어갔다. 숲길은 자전거를 타는 길로 만들어져서 아주 좁다. 지난주 까지만 해도 눈이 있던 길이라 진흙이다. 한 발짝 뛰어놓을 때마다 신발에 진흙이 들러붙어 무겁다. 가는 길에 혼자 산책하는 사람을 만났다. 가는 길이 어떻냐고 물으니까  이곳만 지나면 괜찮은 길이 나오니 가다가 옆으로난 길로  빠져나가면 된다고 한다. 그 사람 말을 듣고 걸어가는데 나가는 길도 안 나오고 그 안에서 한동안 헤맸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다리가 가까이 보인다. 한 군데서 계속 걸은 것이다. 어차피 운동하러 나왔으니 괜찮다.



봄울 맞는 나무는 서로 손을 잡는다(사진:이종숙)


산길이라서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어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까 지나간 길과 다시 만나고는 하였다. 이러다간 하루 종일 숲 속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을 것 같다 생각하는데 숲 저쪽에 한 사람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쪽으로 가면 길이 나올까 해서 숲을 지나가다 보니 길이 나왔다. 강가로 연결된 산책길이었다. 강가 어딘가에서 갈매기들이 시끄럽게 소란을 피운다. 얼음덩어리로 커다란 섬이 만들어져 있는데 양지바른 곳에 갈매기 떼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강물이 녹으면서 밑에 있던 물고기들이 헤엄쳐 나오는데 그것들을 잡아먹으려고 그렇게 모여있나 보다. 먹을 것이 있으 니 그토록 소리를 치며 갈매기를 불러 댄 것 같다. 길은 여전히 진흙길로 이어진다. 신발에 붙어있는 진흙이 진흙길과 만나 엄청 미끄럽다. 이제는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들어왔다.


가벼운 산책만 하려 했는데 그게 안된다. 앞으로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아무도 걷는 사람이 없는 숲 속은 우리 둘만의 것이다. 진창에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니까 열심히 길만 보고 걷는다. 햇빛은 쨍쨍 내리쬐고 바람 조차 없다. 앞으로 난 길을 계속 쫓아가 보면 다리가 나올 것이다. 처음 계획대로 온길로 다시 돌아갔으면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오솔길로 들어선 게 이렇게 되었다. 그래도 밍밍한 산책길보다는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을 걷는 것이 훨씬 좋다. 인생길처럼 산책길도 구불구불하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가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면  야생동물을 만날 수도 있지만 지팡이를 들고 다니니 그것도 괜찮다.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알면 동물들도 제 갈길을 간다. 한 시간 정도 쉬운 길로 오다가 힘든 길로 가니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다. 간식으로 가져온 초콜릿을 먹으며 걷는다.



백양나무가 뽀얗게 물이 올랐다.(사진:이종숙)


손가락만 한 작은 것인데 먹고 나니 요기가 된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 산책길인데 사람들을 피해 오솔길로 들어왔더니 사람이 없어 좋기는 한데 길이 진창이라 안 좋다. 그래도 숲이 우거져 산속 깊이 온 것 같아 좋다. 쟈켓도 벗고 모자도 벗고 신나게 걷는다. 인생은 선택이다. 순간의  선택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무엇이 되었던 선택한 것으로 살아간다. 왔던 길은 아주 편한 산책길이다. 그 길로 그대로 걸어갔으면 오늘 이런 숲길은 내게 없었다. 숲 속에 길이 여러 개가 있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오솔길이 진창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갈매기가 얼음섬 위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소란을 피운 것도 몰랐을 것이고 숲 속의 오솔길이 이토록 힘든 길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길을 찾기 위해 나뭇가지를 해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가시에 찔려 상처도 안 났을 것이다.



얼음 조각들이 연꽃처럼 떠있다.(사진:이종숙)


진흙에서 미끄러질 뻔하지도 않고 신발에 묻은 진흙을 털으려고 발을 탁탁 구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던 다리가 보인다. 조금만 더 가면 다리에 있는 의자에 잠깐 쉬며 강을 구경하고 싶다. 아까 건널 때 만났던 오리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마른 잔디에 신발을 비벼본다. 진흙이 잘 안 떨어진다. 옆에 서 있는 나무에 다리를 올리고 흙을 털어내 본다. 이제 오솔길은 끝이 나고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몇 사람 지나간다. 의자에  앉아 강물에  떠내려가는 얼음덩어리를 내려다본다. 어지럽다. 눈을 감았다 떠 본다. 강기슭을 보니 아직도 두꺼운 얼음이 있다. 마치 북극에 바다 곰이 노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다리 위는 바람이 너무 세다. 모자 끈을 단단히 묶고 손으로 잡고 가야 한다. 갈 때보다 바람이 더 세게 분다.



북극의 하얀곰이 어디선가 나올것 같다.(사진:이종숙)


잠바도 단단히 고쳐 입고 다리를 걷는다. 공중전화가 하나 서 있는데 고장이라고 쓰여 있다. 고장이 났으면 빨리 고쳐야 하는데 언제 고칠지 모르겠다. 공중전화를 보니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전화가  없는데 연락을 해야 하는데 공중전화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한참 헤매던 생각이 난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으니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주차장까지는 600미터 남았다는 안내판을 읽고 걸어가다 보니 길가에 눈이 쌓여있다. 신발에 묻은 진흙을 닦아내니 신발이 훨씬 가볍다. 생각지 않은 긴 산책으로 다리가 뻐근하지만 기분은 좋다.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을 잘 견디고 받아들일 때 보람을 느낀다. 숲 속에서 뱅글뱅글 돌며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때 차분한 마음으로 길을 찾아 나왔으니 다행이다. 나무와 하늘만 보이는 숲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인간세상이나 마찬가지다. 길을 찾으려 하면 찾게 된다. 어떠한 고통이 있어도 주저앉지 말고 길을 찾으면 언젠가는 그곳에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은 언젠가는 끝이 된다.





강물을 내려다 보는 다리(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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