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잠이 깨어 잠을 설쳤다. 몸이 너무 편한지 자다가 자주 깬다. 한번 깨면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한번 나간 잠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깜깜한 방에서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는 것은 고역이다. 생각은 나를 데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닌다.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정신은 더 또렷해져 차라리 그냥 일어나 앉는 게 낫다. 불을 밝게 켜놓고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뒤적이거나 텔레비전을 보면 달아난 잠이 돌아온다.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자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건강에 해로울 것 같아 하는 행동이다. 싫다고 가는 사람을 억지로 잡을 수 없듯이 나간 잠을 찾을 수 없으니 올 때까지 할 일을 하면 된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때가 있어 때를 알아봐야 한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농사를 지어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땅을 쉬게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람은 일만 할 수도 없고 놀기만 할 수도 없다. 취미는 세월 따라 달라져 좋아하던 것도 싫어지고 안 하던 일을 하기도 한다. 세월이 가고 살아갈 날이 짧아지면 마음이 급해져 그동안 하지 못한 일을 하려고 한다. 젊을 때는 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이런저런 생각 없이 바쁘게 산다. 취미생활은 나중으로 미루고 하루하루 살다 보면 육신은 늙고 생각은 바뀐다. 결혼 전 시간 날 때마다 친구들과 등산을 다녔다. 그때만 해도 부족한 것이 많은 시대라 완행열차를 타고 가며 잠을 자며 숙박비를 줄이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산입구에서 밥과 된장찌개를 만들어 먹으며 식대를 줄였다. 젊은 혈기로 날아갈 듯이 산정상에 올라 ‘야호’라고 소리치고 하산을 한다. 중간에 간단한 간식을 하고 내려와 식사를 하고 다시 완행열차에 몸을 싣는다. 놀고 자고 하다가 집에 도착하여 출근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한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남한에 있는 유명한 산을 다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집 앞의 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행복한 노인이 되었다.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가까운 곳이 더 좋아졌다. 요즘 사람들은 2박 3일이라도 멀리 해외여행을 선호하지만 사람 사는 것 어디나 같다. 찾아보면 가까운 것도 못 가본 곳이 많다. 나가보면 강도 있고 숲도 있고 빌딩도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가까이 있다.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웬만한 물건은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다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림으로나 사진으로 보면 멋진 것 같아도 오고 가는 수고를 생각하면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늘은 하늘대로 다른 빛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나무는 나무대로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과 대화한다. 바람은 살며시 다가오기도 하고 거칠고 무섭게 세상을 뒤집기도 한다. 눈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지구와 바다는 나날이 변화한다. 그에 따른 자연 생태계는 우리를 겁을 주기도 하고 희망을 갖게 하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특별한 것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짐승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을 자세히 보면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지혜를 가지고 산다. 며칠 전에 차를 타고 가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길거리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고양이는 오는 차가 없자 길을 건너는 것이 보였다. 새들도 길거리에서 무언가를 먹다가도 차가 다가오면 피한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는지 어제 아침에 차가 다가오는데도 비둘기가 꼼짝 하지 않고 있어 클랙슨을 울리니 간신히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무심한 것인지 아니면 죽이려면 죽이라는 배짱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도 있기는 하다. 세상도 변하고 인간도 변하지만 잊지 않고 나를 찾아오는 하루가 있음에 감사한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갑자기 찾아오는 불행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얼마 전 산책을 하다가 낙상 사고가 난 지인의 소식을 듣고 엄청 놀란 일이 있다. 평소에 친구들과 숲을 걸으며 운동을 하였는데 그날따라 몸이 안 좋다며 먼저 가겠다고 해서 헤어졌는데 친구들이 산책을 마저 마치고 주차장에 가보니 차는 있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아 찾아 나섰단다. 이름을 부르며 이리저리 찾아보았을 때는 이미 쓰러진 상태로 지나가는 사람이 발견하여 구급차를 부르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너무 늦었다. 조금 전에 같이 산책을 하던 친구들도, 소식을 전해 들은 교민들도 할 말을 잃은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누구나 맞을 것 같은 오늘 이 순간을 맞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시시한 하루, 심심하고 무료한 하루가 어느 사람에게는 간절한 하루 일지도 모른다. 우리 집 앞뜰에 있는 허리굽은 노송에는 토끼가 온다. 뜨거운 여름에 햇볕을 피하기 위해 오고, 추운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온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어 뜰을 보니 토끼 발자국이 어지럽게 보인다. 밤새 토끼들이 춤을 추었는지 아니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따뜻한 자리를 찾기 위해 애를 썼는지 모른다. 그들도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아침에 흐린 하늘이 맑아지고 눈부시게 세상을 비추고 있다. 아직 봄이 오는 길은 요원하지만 언젠가는 봄이 온다. 겨울이 춥지만 겨울 없는 봄은 의미를 상실하듯이 삶은 투쟁과 감사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