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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Apr 29. 2020

사월이 온다... 사월이 간다



사월이 오고 사월이 가고...(그림:이종숙)



사월이 온다. 꽃편지 손에 들고 연두색 옷을 입고 사월이 온다. 진분홍, 진달래와 샛노란 개나리가 손잡고 온다. 양지바른 처마 밑 제일 먼저 피는 민들레도 함께 한다. 바람이 분다. 꽃샘바람 타고 봄이 온다. 수줍은 꽃망울이 터지는 날 사월이 온다. 바람이 불어오는 사월은 봄은 봄인데 봄이 아니다.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싹이  올라오는 사월은 추워도 좋아해야 하는 계절이다. 봄이라고 얇은 옷을 입는 사월은 이름만 봄이지 겨울만큼 춥다. 집어넣은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고 싶은 사월은 살 속 깊이 파고드는 시샘 추위 때문에 얇은 옷 안에 겨울 내복을 입고 싶다. 봄이라고 하기엔 너무 추워 차라리 겨울 봄이라 부르고 싶다. 햇살이 좋은 사월은  바람이 차도 창문으로 내다보기에는 너무 아깝다. 사월은 따스한 겨울이다.

사월은 꽃피는 겨울이다. 사월은 봄으로  왔다가 겨울 되어 머물고 봄을 놓아두고 간다. 사월이 간다. 그토록 기다렸던 4월이 간다. 사월이 언제 오려나 하고 기다렸는데 벌써 왔다가 간다. 아침 일찍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나갔다. 어제 한바탕 쏟아진 봄비로 거리는 깨끗하다. 여기저기에서 서둘러 봄청소를 해서인지 길거리는 산뜻하지만 걷는 사람 하나 없는 거리는 쓸쓸하다.  아직은 봄을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봄기운이 날아다닌다. 학교 운동장에도 아무도 없다. 평소 같으면 고등학생들이 운동을 할 텐데 텅 비어 있다. 햇살은 오늘도 아름답게 세상을 비춘다. 토끼 한쌍이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다. 우리가 해치기라도 할까 봐 잔뜩 긴장하며 꼼짝 하지 않는 모습이 여차 하면 뛰어 도망갈 기세다. 토끼들은 우리가 지나간 뒤에 편안하게 앉아서 평화를 즐긴다.

오래된 공원을 지나간다. 1982년부터 열기 시작한 이 공원은 우리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 거리에 있어 즐겨 찾는 공원이다. 해마다 '캐나다 데이'에 5만 명 이상이 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아름 다운 공원이다. 밴드그룹이 와서 가수들이 노래를 하고 아이들을 위해 작은 동물들을 데려다 놓고 쓰다듬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팔며 여러 나라의 음식을 소개한다. 춤과 노래와 음악으로  캐나다 생일을 축하하며 많은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불꽃놀이를 하며 즐기는 날이다. 공원  중앙에 예쁜 호수가 있어 오리들이 평화롭게 논다. 여기저기 피크닉 테이블이 있어 가족이나 친구들은 물론 회사에서도 소풍을 와서 하루를 즐기는 곳이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 걸어서 산책을 할 수 있고 자전거를 타는 트레일도 있다. 고등학교 운동장과 레크 레이션  센터와 함께 커다란 운동장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나무가 많고 숲이 우거진 이곳은 비가 온 뒤에는 송이버섯이 많이 나고 가을에는 단풍 진 나무의 낭만적인 모습은 정말 아름답기 한이 없다. 특히 겨울에는 스키나 미끄럼을 타는 곳으로 유명하다. 많은 아이들이 추운 겨울에 미끄럼을 타며 겨울을 이겨낸다. 능선이 가파르고 길기 때문에 멀리 사는 사람들도 와서 노는 참으로 멋진 곳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있어 가족들이 잘 찾아오고  토끼들이 함께 뛰어노는 공원인데 오늘은 아무도 없다. 넓은 공원을 우리 둘만이 호수 옆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노인 부부가 산책을 하러 나와 걷는다. 가까운 곳에 노인 아파트가 있는데 아마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인가 보다. 손인사로 멀찍이서 서로 인사를 하며 지나치고 걷는다. 큰길을 건너 동네길로 들어선다. 올해 처음으로 잔디에 피어있는 민들레를 보니 반갑다.



올해 처음으로 본 노란 민들레꽃(사진:이종숙)


제일 먼저 피는 민들레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적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민들레를 죽인다. 약을 뿌리거나 칼로 뿌리 채 뽑거나 하는데 보통일이 아니 다. 번식이 강하기 때문에 눈 깜짝할 사이에 번지게 되면 잔디를 버리기 때문에 눈에 쌍불을 켜며 민들레를 뽑아낸다. 한국에 살 때는 민들레가 예쁜 꽃이라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아주 몹쓸 잡초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 에게는 민들레가 약초로 알려져 있어 이곳에도 교민 들은 약을 치지 않은 근교에 가서 민들레를 뜯는다. 민들레로 김치를 담아먹고 살짝 삶아서 초고추장에 무쳐먹는다. 삶은 민들레 잎을 물에 담가서 쓴 물을 빼고 부치 감지도 해먹기도 하고, 민들레 뿌리를 캐서 말려서 오븐에 구워서 차를 끓여 먹기도 하지만 민들레를 캐는 것이  힘이 들고 손질하기가 엄청 어렵고 귀하기 때문에 아무나 맛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히 친한 사람만이 받아먹을 수 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음식은 먹는 사람도 아껴먹으며 먹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든다.

친한 친구가 지난번에 한번 주었는데 맛도 맛이지만 정말로 정성이 보통 들은 게 아니기 때문에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이제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는 민들레는 여름 내내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멀리 멀리 씨를 뿌릴 것이다. 우리 집 길 건너에 있는 국민학교 운동장을 천천히 걸어가며 아이들이 어릴 적 뛰어놀던 언덕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하는 운동장도 텅 빈 채로 있다. 그런데 멀리 언덕 위에 개가 서 있다. 자세히 보니 개가 아니고 늑대가 서 있다. 개는 꼬리가 올라 가는데 늑대는 꼬리가 땅을 향해 쳐진다. 늑대는 의젓하게 능선에 서서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멀리 어딘가 를  한참 동안 응시한다. 돌아다니는 토끼 사냥을 나왔나 보다. 먹이가 없음을 확인한 늑대는 서서히 언덕을 내려오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앞으로 걸어간다.


늑대가 동네로 사냥을 나왔다.(사진:이종숙)


 속에서 이리는 보았지만 동네에서 늑대를 처음  보고 나무 옆에 서서 사진을 찍는 나도 많이 흥분이 된다. 늑대는 운동장 끝으로 걸어 나오더니 큰길을 건너 동네 뒷길로 유유히 사라졌다. 늑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몇 년 전 이른 아침 새벽에 출근길에 사슴 한쌍이 유유히 걸어서 운동장 쪽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 생각이  난다. 사람들이 있을 자리에 사람이 없으니 야생동물이 출몰한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이곳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건너 집으로 들어가며 늑대가 사라진 골목을 한번 더 다시 본다. 오다가 보았던 토끼 한쌍이 생각난다. 늑대가 겨울에 배가 고프면 동네로 내려와 토끼를 잡아먹는다는데 토끼가 걱정이 된다. 점점  무서워지는 세상에 늑대까지 동네로 나오니 걱정이 하나 더 생긴 날이다. 사월이 온다는 설렘으로 맞은 사월은 이렇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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