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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Apr 28. 2020

시간은... 나를 데리고 다닌다



나무를 기대고 피어있는 꽃들이 예쁘다.(그림:이종숙)



늦은 아침의 동네 모습은 참으로 한가롭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살랑살랑 분다. 할 일 없는 새들은 자기네들 언어로 서로를 부르며 천천히 날아다니다가 전깃줄이나 나뭇가지에 앉아서 쉰다. 차들은 집 앞에 주차되어 있고 아무도 다니지 않는 동네는 죽은 듯  조용하다. 다들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다. 어쩌다가 한 두 사람 지나가고 있을 뿐 사람 구경을 할 수 없다. 버스가 지나간다. 운전사 혼자 운전을 하며 승객 하나 없는 빈 버스가 덜덜 거리고 가고 있다. 코로나 19로 재택근무를 하고 휴교를 해서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늘 아침에는 블루 제이 한쌍이 마가목 나무 가지를 오르내리며 봄을 즐긴다. 파란색과 하얀색으로  잘생기고 깔끔해 보이는 새이다. 무언가 먹을 것이 있는지 바쁘게 오르내리는데 다른 한쌍이 어디선가 와서 그들과 합류하면서 논다.

한가한 아침이라도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제 하지 못한 것도 있고 내일 해야 할 일도 있지만 괜히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여기저기 쳐다본다. 나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죽은 나무 가지를 만져보기도 한다. 우리 집 주위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많다. 이름을 알아볼 수는 있겠지만 오랫동안 있다 보니  그냥 꽃 모양이나 서 있는 장소로 이야기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나무와 사람을 연결하며 살았다. 오래전 시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실 때 집 앞의 커다란 나무가 시들시들하여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넘어지셔서 궁뎅이 뼈를 다치시고 오랫동안 편찮으시다 돌아가셨다. 그 뒤 몇 년 동안 집 앞에 있는 엄청 큰 전나무가 병이 들었다. 적어도 40년은 더 되었을 큰 나무는 한 해 두 해 지나가며 그대로 말라죽었다. 그때 당시 연로하신 친정아버지가 시름시름 앓고 계셨다.

집 앞에 죽은 나무가 서 있는 것이 보기 싫어 사람을 불러 그 나무를 잘랐다. 죽은 나무가 서 있던 자리가 갑자기 비어 너무나 허전했다. 차라리 죽은 나무라도 그냥 놓아둘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전하여 후회했던 적이 있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었지만 그해 4월에 아버지를 뵈러 한국에 다니러 갔는데 아버지의 병세는 더 악화되어 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왔는데 그해 6월에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다. 나무와 인간의 연결고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어른들이 나무를 함부로 자르지 말라고 했었나 보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나무를 자르는 것에 대해 신경을 유난히 곤두세운다. 사람이 명이 다하면 세상을 떠나는데 그것을 나무와 연결 짓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오래전에 책에서 본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백양나무가 하늘과 만난다.(사진:이종숙)


어느 산골에서 나무꾼이 나무를 해야 하는데 마른나무가 없어서  옆에 자라고 있는 나무를 베어다가 때웠는데 그 나무가 꿈에 사람이 되어  피를 줄줄 흘리며 나타나서 "네가 내 팔을 베어 너무 아프다." 고 이야기를 하며 우는 꿈을 꾸고 다시는 생명 있는 나무를 베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하잘것없다고 생각하며 멀쩡한 나무를 꺾거나 죽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책을 읽은 뒤로는 잊히지 않아 나무를 함부로 자르지 않는다. 특히 봄에 새로 피어나는 작은 꽃들과 나무는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데 나뭇가지 하나도 잘 생각해서 잘라줘야 할 것 같다. 해마다 뜰에 있는 나뭇가지를 쳐 주지만 나는 늘 불안하다. 혹시나 산 가지를 자르지 않게 조심하거니와 죽은듯한 나무도 바로 자르지 않는다. 몇십 년을 살아온 나무인데 보기 싫다고 조금 병이 들었다고 자르는 것을 싫어한다.

뒤뜰에 체리나무 하나가 몇 년 전부터 시름시름  죽어 가고 있다. 몇 년 동안 체리도 몇 개 열리지 않고 진딧물이 꼬인다.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작년 초봄에는 완연하게 죽은 모습이 되었는데 봄이 무르익어 갈 때 즈음 나뭇가지가 옆으로 나오더니 잎을 달기 시작했다. 죽은 줄 알고 베어 버리려다 그것을 보고 그냥 놔두었는데 올해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 키가 작은 나무이기 때문에  아무 때나 자르면 되는데 아직은 자르지 말라고 남편한테 신신당부했다. 엄마가 편찮으신 상황이라 왠지 그냥 잘라버리고 쉽지 않다. 지난 세월 나무가 병들어서 나무를 자르고 나면 꼭 큰일이 생겨서 괜한 두려움이 생기나 보다. 나무도 사람도 다 나이가 들면 병이 들고 죽고 하는 데도 나무를 자르면 꼭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주춤하는 나를 남편도 이해하는지 알았다고 한다.

집 주위에 있는 나무들도 늙어가고 우리도 늙어가는데 결국 나중에는 모두 떠나야 하지만 나도 나무도 사는 동안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뉴스를 들으니 치매 할머니인 아내를 죽인 할아버지 이야기 이다. 치매가 심했던 아내와 함께 동반 자살을 하려 했는데 아내는 죽고 할아버지는 살아 몇 년의 형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가 병간호를 하다가 먼저 죽게 되면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살다가 병이 들어 죽게 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데 인간의 계산과 창조주의 계산이 같지 않으니 할아버지는 살게 되었나 보다. 생각하면 슬픈 현실이다. 뜰에 죽어가는 나무를 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다. 먹구름이 까맣게 하늘을 덮는다. 아마 봄비가 오려나 보다. 눈이 녹은 지 며칠밖에 안됐는데 건조해서 먼지가 엄청 날린다. 비가 한번 시원하게 와서 깨끗이 씻어 내렸으면 좋겠다.
 
뜰에 나오니 여러 가지 할 일이 보인다. 이제 날씨가 풀리고 전염병도 어느 정도 누그러져 가니 손주들도 놀러 올 텐데  나무 밑에 있는 그네도 앞으로 내놓고 긴 호스로 물을 뿌려 깨끗이 청소를 해야겠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만나도 멀찍이 떨어져 얼굴만 보고 갔는데 한동안 못 만난 회포도 풀어야 한다. 어서 빨리 모든 것들이 자유로워져서 정상적인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세상을 뒤집고 있음에 할 말이 없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지쳐가서 체념하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어느 날 좋았던 시간을 되찾고 손에 손을 맞잡고 웃을 날이 곧 오리라 생각한다. 한가한 날 시간이 나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데리고 다닌다. 뒤뜰에 조금씩 나오는 파란 것들을 보니 봄은 왔나 보다. 파와 부추 그리고 가느다랗게 올라오는 달래도 눈에 띄게 잘 자란다.

며칠 전 동네 슈퍼에서  깻잎 모종과 고추 모종을 판다기에 부리나케 몇 개 사다 놓았다. 날씨가 아직 추우니 낮에는 양지쪽에 놓았다가 밤에는 차고에 들여놓는다. 약간은 성가시지만 재미로 한다. 이렇게 며칠 해주면 땅에 심어도 몸살을 앓지 않는다. 채소도 낯설으면 힘들어하니 서로 낯익을 때까지 잘  사귀어 야 한다. 세상만사가 노력 없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5월 하순에 마지막 눈이 한번 다녀 가시면 그 후로는 여름이 온다. 봄 인지 겨울인지 모르게 봄이 다녀가고 여름 같은 날씨를 몇 번 느끼다 보면 가을이 온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조금만 날씨가 좋으면 짧은 옷을 입고 여름을 즐기느라 난리다. 어서 그런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이제 봄이 겨우 시작했는데 내 마음은 벌써 여름에 가 있다. 세월 가는 것은 싫은데 여름은 왜 기다리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시간이 나를 데리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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