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먹고 자라는 손주들

by Chong Sook Lee


아직은 날이 밝지 않았는데 창밖이 시끄럽다. 참새들이 수다로 하루를 맞는다. 참새들이 집 앞뜰에 있는 전나무와 밥풀꽃 나무 가지를 오르내리며 찾아온 하루를 반긴다. 추워도 더워도 매일매일 저 작은 참새들은 변함없이 나무를 찾아온다. 시끄러울 정도로 떠들어대면 나는 살며시 커튼을 열고 그들의 노는 모습을 바라본다. 나뭇가지를 바쁘게 오르내리며 앉아서 무언가를 찍어먹으며 연신 뭐라고 짹짹 댄다. 한참을 떠들어대다가 조용해져서 뭐 하나 하고 보면 더러는 가지에 앉아서 잠을 자고 잠꼬대를 한다. 어느새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둠을 헤치고 살며시 찾아오는 고마운 하루다. 그제도 어제도 온 하루이기에 오늘도 당연히 온다고 생각하며 산다.

어제 온 눈으로 세상은 온통 하얗다. 오늘은 큰 손자가 13살이 되는 생일날이다. 호주에 살고 있던 아들 며느리가 13년 전 오늘 첫아기를 낳은 날이다. 아이들은 호주에서 새 생명을 낳기 위해 밤을 새우고, 나는 이곳에서 걱정으로 밤을 새운 날이다. 며느리가 아기를 낳는다고 사돈 내외가 호주로 가긴 했지만 걱정이 되어 밤에 한잠도 못 자고 일을 나갔다. 그때 당시 식당을 운영했는데 잠을 못 자서 어지러운데 손님들은 끊임없이 들이닥치고 주문한 음식은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머릿속은 온통 호주에 가 있던 날이다. 그날따라 유난히 손님이 많아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오후 2시에 아들을 낳았다고 연락이 왔다. 집안에 큰 경사가 난 것이다. 생각지 못하게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바람에 며느리가 많이 고생을 했지만 산모 아기 모두 건강하다는 소식에 너무 행복했던 날이다. 그때만 해도 핸드폰 영상통화가 지금과 같지 않아 컴퓨터로 연결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화질도 안 좋고 연결이 잘 안 되어 통화가 끊어져 불편했지만 멀리 있어서 가볼 수 없는 우리로서는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꼬물거리는 손자가 보고 싶은데 밤낮이 다른 그곳에서 시간을 맞추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보고 싶은 손자를 자주 보여주지 않는 아들과 며느리가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뒤로 4개월 만에 다시 캐나다로 이사를 온 뒤로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살아 자주 오고 가며 만나지만 처음 손자가 태어났을 때 보고 싶던 그 마음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보고 싶던 손자가 13살이 되어 이제 사춘기의 나이가 된 것이다. 아직은 솜털이 보송보송 난 아기 같은 예쁜 모습이지만 머지않아 몰라보게 자랄 것이다. 먹기는 잘하는데 살이 안 쪄서 걱정이지만 의젓하게 중학교를 다니고 키도 할머니보다 큰 것을 보면 기특하기만 하다. 아이들이 자랄 때는 이런저런 걱정을 많이 하고 빨리 자라기를 바랐는데 손주들은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모든 것을 다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큰 아들은 남매를 낳고, 작은 아들도 남매를 낳고, 딸은 아직 아들 하나만 있어 손주가 다섯이 되었는데 손주 사랑하는 마음은 더 커져만 간다. 작년 2월 말에 외손자가 태어났다. 한 달간 딸네 집에 가서 산후조리를 해주고 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돌이 가까워진다. 너무 작아서 안아주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커서 이쁜 짓을 하며 놀기도 하고, 싫다는 표현도 하며 이것저것 붙잡고 걸어 다닌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영상으로 손자를 보는데 이젠 손자도 반갑다고 웃고 손을 흔들며 뭐라고 떠드는 게 너무 귀엽다. 정말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손주들은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만나면 만날수록 정이 든다. 영상통화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며 보고 싶던 큰 손자는 이제 어엿한 소년이 되어 목소리도 굵어지고 말 수도 적어지고 혼자의 시간을 선호한다. 어쩌다 같이 산책을 나가면 앞장을 서서 걸으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든든하다. 너무 작아서 떨어뜨릴 까봐 두려웠었는데 세월이 참 무섭다. 손자들이 자라면 그만큼 우리도 늙는다. 늙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잘 자라는 손자들의 모습을 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지난 연말에 가족 모두 모였다. 식구가 열세 명 모여서 웃고 이야기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법석법석 했는데 벌써 2월도 중순이 되었다. 남편과 둘이 살 때는 집이 큰 것 같은데 가족 모두 만나면 집이 꽉 찬다. 숲에 가보면 크고 작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있던 나무가 없어지고 없던 나무가 생겨나며 숲은 저마다의 모습을 만든다. 오래전, 남편의 손을 잡고 만삭인 배를 안고 이민오던 날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자라고,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며 사는 모습이 숲과 같다. 풍요로움 속에 가족을 이루며 살다가 때가 오면 갈 곳으로 가면 된다. 44년의 이민 생활에 여러 가지 일이 많았지만 모두 지나간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욕심 없이 추억 속에 남아있는 날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잘살면 된다. 가족이 함께 사는 것도 좋지만 각자의 생활터전에서 상황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얼굴이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를 랑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면 답답했던 날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 남은 시간이 짧아지는 세월에 열심히 후회 없이 살면 된다. 참새들이 일어났는지 창밖이 다시 시끌시끌하다. 눈부신 햇살이 세상을 비춘다. 세상 만물에게 공평하게 쏟아지는 고운 햇살이 고마운 아침이다. 13살 된 손자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하루를 시작한다. 손자가 살아가는 동안 좋은 날, 기쁜 날만 있기를 바라지만 구름 낀 날도, 비나 눈이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쓰러지지 않고 잘 견디며 이겨나가는 멋진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사랑으로 이어가는 신비로움으로 인류는 영원히 번성한다. 마가목 나무에 참새가 모여 회의를 하나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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