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창밖을 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본다. 하늘이 며칠 동안 안고 있던 눈을 다 쏟아낼 듯 펑펑 쏟아진다. 눈이 오면 괜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설렌다. 좋은 일도, 싫은 일도 없이 그저 편안하게 나날을 맞기를 바라면서도 특별한 날을 기대하게 된다. 지금껏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별 탈 없이 잘 지내면 되건만 무엇을 더 바라는지 모른다. 사람 사는 것이 기대와 희망이기에 한 가지 이루면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된다. 눈 오는 것을 바라보며 오래전 이 집을 샀을 때가 생각난다. 아파트에 살다가 타운 하우스로 이사 가서 살다 보니 단독주택에 사는 게 부러웠다. 많은 집을 보러 다니며 지금 사는 집을 사서 35년 동안 살고 있다. 처음에 부동산에 나왔을 때 보고 여러 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집을 보는 사이 누군가가 이 집을 샀다. 그런데 집 산 사람이 대출신청이 안 돼서 다시 마켓에 나왔다며 또 보러 가지 않겠느냐 는 연락이 왔다. 집을 보러 다니는 것에 싫증이 나고 지친 상태라서 귀찮았지만 가보았다. 가서 보니 첫인상과는 다르게 너무 집이 좋아 보였다.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다 잊고 그날로 집을 계약하고 이사를 했다. 타운하우스에서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하니 너무나 좋았다. 4층으로 나뉜 집으로 맨 위층에는 방세개와 두 개의 화장실과 욕실이 있다. 중간에는 커다란 거실에 부엌과 다이닝룸이 있고, 층계 7개를 내려가면 커다란 거실과 방하나와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다. 그리고 맨 아래층으로 가면 집 크기만 한 지하실이 있어 살림살이를 다 넣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이사를 했던 당시에는 살림이 별로 없어서 지하실에 탁구대를 놓고 탁구를 치기도 했다. 아이들이 방 하나씩 차지할 수 있고 화장실도 많이 있으니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 너무 좋았다. 그렇게 몇 년을 사는 동안 부동산 붐이 일어나고 내 마음에도 바람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막상 집을 사고 나니 더 좋은 집이 갖고 싶어서 틈틈이 집을 보러 다녔다. 새집이 보기는 좋은데 주위가 삭막하여 정이 안 가고 옛날 집 같이 견고하지 않음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집값이 비싸기만 하고 실속 없이 크기만 하여 실망을 하기를 몇 번 반복하며 우리 집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이후로 이사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살고 있다. 오래된 집이지만 아담하여 싫증이 나지 않고 살면 살수록 더 좋아진다. 아침에는 눈부신 햇살이 부엌으로 놀러 오고, 남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하루종일 따스한 빛이 들어온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서쪽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여름에는 아무리 더운 날도 동쪽에 있는 뒤뜰에 응달이 져서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서향집이 나쁘다고 해서 무조건 살아보지도 않고 싫어했는데 막상 알고 보니 서향집이 너무 좋다. 또 다른 단점은 코너집이라 싫어했는데 양쪽에 집이 있는 것보다 답답하지 않고 시원해서 좋다.양쪽에 집이 있으면 아무래도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하는데 한쪽만 신경 쓰면 되니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세 번째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버스정류장이 길건너에 있어서 시끄러울 것 같아 꺼렸는데 가까이에 버스정류장이 있으니 어디를 가도 바로 집 앞에서 버스를 탈 수도 있고, 눈이 많이 오면 버스길이라 어디보다 먼저 눈을 쳐주어서 너무 편리하고 좋았다. 그런 버스 정류장이 세월이 가면서 없어져서 더 이상 문제될 게 없으니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음을 배운다. 어느새 이곳에 산 세월이 길어지고 정이 많이 들어 어디를 가도 집이 그립다. 집주위에 많은 나무들이 봄을 알리고, 여름에는 녹음으로 그늘을 만들어준다. 텃밭에 채소를 기르고 여러 가지 꽃들이 피고 진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고, 앵두나무에 앵두가 열린다. 딸기나무에 딸기가 열려 아무 때나 뜰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라일락 향기가 진동하고 금잔화가 피고 지며 여름 내내 반긴다. 코스모스가 피고 장미가 피고 이름 모르는 나무에서 하얀 꽃들이 피고 진다. 전나무와 소나무에 새들이 놀러 와서 지저귀고 토끼가 평화롭게 잠을 잔다. 이사 온 첫해 겨울에 벽난로에 장작을 때우며 굴뚝으로 연기가 잘 나가는지 본다고 온 식구가 밖에 나가서 구경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무섭게 갔다. 언젠가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죽은 다음에 집 뜰에 뿌려달라고 했을 정도로 오래 살다 보니 고향이 되었다. 눈 오는 뜰을 바라보다가 생각은 오래전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이사는 꿈도 꾸지 못하고 이곳에서 능력이 될 때까지 살고 싶은 게 소망이 되었다. 좋은 집도, 넓은 집도 다 부질없고 살기 편하고 정들은 집이 최고다. 세월 따라 동네가 커지다 보니 변두리라고 생각한 동네가 중심가가 되었다. 학교와 병원과 쇼핑센터가 가까이 있어 아주 좋다. 의사도, 약국도, 치과도, 전문의도 가까이 있으니 걱정이 안 된다. 이제는 편한 게 좋다. 집 가까이에 공원이 있고 동네길을 걸으며 가까운 쇼핑센터에 가서 장을 봐도 된다. 바라는 게 있다면 건강하게 사는 것이고 아이들 잘 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던 눈이 멈춘다. 눈은 추억의 시간으로 데리고 다닌다. 소나무 위에 쌓인 눈이 눈꽃송이처럼 예쁘다. 이제 입춘도 지나고 구정도 내일 모래다. 해가 길어져서 금방 녹을 눈이기에 무섭지 않다. 눈이 녹고 봄이 오면 또 겨울이 그리워지겠지만 지금은 봄이 기다려진다. 눈이 오면 추억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