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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06. 2024

 벽난로 불꽃 속에... 피어나는 추억



가랑비 같은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내리기는 안  춥고 비가 오가는 너무 추운 가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보이지 않게 오는 눈이 쌓인다. 바람은 없어 눈이 오는 대로 차분하게 앉는다. 솔잎에 눈이 곱게 쌓여 꽃이 핀 것처럼 예쁘다. 꽃이 핀다는 고국 소식을 들으며 이곳에는 언제나 봄이 오려나 생각하며 하늘을 본다. 온통 눈이 꽉 찬 하늘이 회색이다. 하루종일이라도 내릴듯한 모습인데 오늘이 고비로 추위가 물러간다고 한다. 이런 날은 벽난로에 불을 펴놓고 불꽃을 바라보면 좋다. 작은 불씨가 장작에 불이 붙으면 벽난로 불꽃이 핀다. 화려하게 피어나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고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난다.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도 생각나고, 사랑스러운 손주들도 보고 싶다. 활활 타오르다가 사그라지며 재가 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불꽃이 되어 멋지게 살다 간다. 작은 불씨가 장작을 태우며 온 집안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1974  우리 집은 올해 50살이다. 우리가 1989년도부터 살기 시작했으니 35년 동안 살면서 140번의 계절을 맞고 보다. 앞 뜰에 있는 소나무와 전나무는 어느새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색이 달라지고 솔잎이 부드러워는 것을 보면 봄이 머지않았다. 오래된 집이라서 집둘레에는 여러 나무들이 집을 둘러싸고 있다. 봄이 되면 맨 처음 봄을 알리는 튤립이 땅을 헤집고 나온다. 그 뒤를 이어 사과꽃과 앵두나무꽃이 피고, 개나리라일락이 핀다. 그러면 밭에서 잠자던 작물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고 세상에 나온다. 제일 먼저 파가 나오고 부추가 나온다. 5월 중순이 되면 여러 가지 모종을 심는다. 부지런한 지인들이 주는 모종을 심기도 하고, 사다가 심기도 한다. 작년에는 깻잎과 토마토, 고추와 오이 모종을 심었는데 여름 내내 잘 먹었다. 팔뚝만 한 오이를 여름 내내 잘 따먹고 오이지도 몇 개 담아 맛있게 먹었다. 올해는 어떤 모종을 심을지 모르지만 여름이 가물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들린다. 작년에 너무나 많은 산불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올해도 가뭄이 계속된다고 한다. 여름이 오면 시원한 뒤뜰에 앉아서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를 보 끼니때마다 조금씩 따서 먹는 재미가 있는데 가물면 그 재미마저 없어질지도 모른다. 친구가 농사가 잘됐다고 가져온 마늘과 호박을 참 맛있게 먹었는데 올해는 날씨가 어떨지 모르겠다. 비가 오고 안 오고는 하늘이 하는 일이니 적당한 비가 내리기를 기다려본다. 사과꽃과 앵두꽃이 피었다가 지고 나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들꽃들이 핀다. 작년에는 어디선가 날아온 노란 금잔화가 예쁘게 피기 시작하여 늦은 가을까지 피어, 오고 가며 예쁘다고 칭찬을 해줬는데 올해도 피었으면 좋겠다. 개나리 꽃이 지면, 라일락 나무 예쁜 연보라 꽃을 선물해 준다. 나무가 많은 우리 집은 사시사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밥풀꽃 나무는 하얀 꽃을 피우고 마가목 나무는 하얀 꽃을 피우고 연두색 열매를 맺으며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어간다. 뒤뜰에 있는 앵두나무에 빨간 앵두가 열리고, 딸기나무에는 맛있는 딸기가 열린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곰취나물이 많이 자라서 여름에 한 번씩 살짝 삶아서 초고추장에 무쳐먹으면 한여름에 너무 더워서 잃었던 입맛이 돌아온다. 그러다 보면 여름은 지나가고 조생종 사과가 하나둘 떨어지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면 마가목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면 가을이 온다. 날이 추워져야 단맛이 드는 과생종 사과는 첫눈이 내리면 신맛이 단맛 되어 시원하고 맛있다. 어떤 때는 가을이 가기도 전에 성급한 겨울이 달려와서 눈이 내리기도 한다. 8월에 눈이 오기도 하고, 9월에 눈이 오기도 하지만 일찍 눈이 오는 해는 늦게까지 날씨가 좋다. 인디언 써머가 있어서 오래도록 가을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이곳의 겨울은 11월부터 시작한다. 겨울이 일찍 오면 봄도 일찍 와야 하는데 지난해는 겨울이 늦게 오더니 3월인데 이곳은 한겨울이다. 오늘 아침에도 눈이 왔는데 언제나 이곳에 봄이 올지 모르겠다. 벽난로에서 딱딱 소리를 내며 타는 장작소리에 놀라 겨울이 빨리 가고 봄이 왔으면 좋겠다. 동장군의 심술 때문에 봄은 올생각도 못하는데 언제나 봄이 올는지 모르겠다. 창밖의 모습은 한겨울인데 이곳에도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을 기대해 본다. 벽난로에 불꽃이 점차 사그라진다. 밖은 한 겨울이지만 다가올 봄을 생각하는 내 마음은 따뜻하다. 겨울이 갈 때가 되면 갈 것이고, 봄이 올 때가 되면 올 것이다. 겨울이 가기 전에, 봄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데 게으름만 늘고 할 일은 뒤로 미루며 산다. 매일매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세월이 가는데 언제 할 일을 하려는지 하루하루 세월만 까먹는다. 오늘은 그저 타는 불꽃만 바라보고 싶다. 있는 건 시간뿐이라며 게으름만 피우지만 따뜻한 봄이 오면 밀린 일을 해야겠다. 오늘은 그저 벽난로에서 타는 장작불의 빨간 불빛을 보며 게으름을 편다. 벽난로 불꽃에서 지나간 추억이 피어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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