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ng Sook Lee May 24. 2024

좋게 생각하고... 즐겁게 살자


세상은 온통 초록이다. 며칠 날씨가 꾸물거리고 찔끔찔끔 비가 오더니 더 내릴 비가 없나 보다. 하늘은 아직 구름으로 덮여 있지만 군데군데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것을 보면 오늘은 산책을 가도 괜찮을 것 같아 길을 나선다. 아직 비가 땅에 스며들지 않아서 땅이 질퍽하지만 신선한 공기와 연두색 이파리를 보면서 걸으면 된다. 겨우내 움츠렸던 나무들이 보란 듯이 새 이파리를 내놓고 꽃을 피워 댄다. 겨울 동안의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희망이 꽃처럼 피어난다. 추운 겨울 죽은 듯이 서 있던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으며 기지개를 켠다.


하늘과 손을 맞잡고 바람 따라 춤을 추는 모습이 환상이다. 숲 속은 어제의 고통이 보이지 않고 기쁨만 출렁인다. 가는 곳마다 민들레와 산나물이 예쁘게 자라서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예전 같으면 욕심껏 산나물을 뜯을 텐데 그냥 보기만 해도 좋다. 산나물을 뜯어다가 다듬고 씻고 삶아서 먹고 나머지는 얼리는 과정이 좋아 해마다 하였지만 그것도 한때의 추억이 되어간다. 이제는 바라보고 지나치며 예쁘다고 인사를 하는 것만도 행복하다.


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짝을 부르고 다람쥐들은 바쁘게 나무를 오르내리며 영양 보충을 한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자연이 너무 고맙다. 숲 속에도 우리가 모르는 원리가 있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평화롭다. 계곡을 따라 걸으면 흐르는 물을 따라 한없이 걷고 싶어 진다. 지난겨울에 남편과 두껍게 얼은 계곡을 걸으며 웃던 것도 추억이 되어 다시 이야기를 하며 걷는다.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생각난다.


비가 온 뒤의 계곡이 넘칠 듯 힘차게 흐른다. 계곡의 물에 비친 나무들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워 나도 덩달아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오래도록 볼 수 있어 좋다. 노란 민들레가 언덕을 노랗게 덮고 있다. 봄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민들레는 벌써 떠날 준비를 한다. 머지않아 하얀 홀씨로 세상을 날아다니며 씨를 뿌리며 내년을 기약할 것이다. 하찮아 보이는 민들레지만 집념을 따라갈 수 없다.


오솔길을 오르내리며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며 이대로 오랫동안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취미를 가지고 산다. 골프를 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수영을 한다. 각자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며 하루를 산다. 이렇게 숲 속의 오솔길을 걷는 것도 취미 중 하나다. 욕심 없는 자연을 보노라면 인간의 모습이 너무 작아진다. 평화를 위한 전쟁을 일삼고 욕심과 이기심이 넘치는 인간사회를 피하여 살 수 없다. 어쩌다 찾는  자연 속에 우리는 마음을 비우며  욕망을 버릴 수 있다.


며칠 오지 않은 사이에 숲 속은 그야말로 별천지가 되어 있다. 겨울 동안 휑하던 숲이 나뭇잎들로 꽉 차서 바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머지않아 모기천국이 될 것이다. 여름에는 모기도 많고 오솔길에 풀들이 자라 자주 오지 못하니까 여름이 오기 전에 열심히 와야 한다. 사는 게 바쁘다고, 귀찮다고 핑계 대지 말고 와야 한다. 모든 것은 순간이고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똑같은 기회가 없다. 남편과 함께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걸으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는 이 순간이 행복이다.


긴 세월 아무 탈없이 아이들이 잘 자라 짝을 만나 자식들 낳고 잘 살아가니 우리 걱정 안 하게 우리만 잘 살면 된다. 숲을 찾는 것도 어느 날 하지 못할 때가 올 때까지 열심히 걸어야 한다. 귀찮다고 누워있으면 죽는다 생각하고 열심히 걸어간다. 지난겨울을 이겨내지 못한 나무들이 하늘을 보고 누워있다. 나무들은 쓰러지기 전에 새들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쓰러지면 버섯이 자라 사람들의 식탁에 오른다. 버섯 종류가 많아 잘 모르지만 죽은 나무에  곱게 피어나는 버섯을 보면 꽃보다 더 아름답다.


지난번에 보지 못한 나무가 하얀 꽃을 피운 모습이 너무 예뻐서 바짝 다가가서 자세히 본다. 빈자리 하나 없이 핀 꽃들이 제 할 일을 다하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시들어 떨어지는 자연이 신기하다. 참을성 없는 인간들은 겨울이 빨리 가기를 바라고 봄이 가지 않기를 바란다. 알아서 하는 자연을 따라 살면 되는데 불평불만으로 걱정근심을 사서 하며 산다. 숲 속에 피어나는 풀 하나도 그냥 태어나지 않고 때가 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무서운 혹한을 견뎌내고 피었다 지는 꽃 한 송이도 창조주의 뜻으로 피어나는 것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소중하다.


구름이 몰려들고 다시 하늘이 어두워진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힘차게 흐르는 계곡을 떠나 동네 산책로로 접어든다. 아무도 없는 길에 난데없이 숲 속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온다. 고양이 특유의 애교를 떨며 만져달라고 야옹야옹하는데 집 잃은 고양이 인지 혼자 다닌다. 한참을 우리와 함께 걷던 고양이는 어느새 사라지고 우리는 산책로를 걸어 주차장으로 간다. 숲 속에서 멋진 평화를 만나고 집으로 간다.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계곡이 다시 만나자고 손을 흔든다.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작은 일도 기쁘게 생각하면 행복하고,  나쁜 일도 좋게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 된다. 어차피 한 세상 살아가는데 기왕이면 좋고 행복하게 생각하며 즐겁게 살아보자.


(사진:이종숙)
작가의 이전글 세상은... 변덕쟁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