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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n 18. 2024

마법의 6월은... 숲의 여왕


6월 중순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의 6월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니고 어느 중간쯤 되는 곳에 덥지도 춥지도 않고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꽃이 피고 진다. 장미꽃이 만발한 고국의 6월이 생각난다. 시어머니 장례식을 하러 고국에 갔을 때가 6월 초순이었다. 집집마다 새빨간 장미꽃이 만발했는데 어쩌면 그리도 색이 고운지 보고 또 보았던 생각이 난다. 숲 속은 녹음이 잔치를 한다. 온갖 풀들이 한철 살겠다고 부지런을 떤다. 봄을 여는 민들레는 꽃대만 남겨놓고 시든 지 오래다. 꽃이 피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바짝 마른 벌건 꽃대가 초라하게 들판을 지킨다.


한때  전성기를 장식하던 민들레 모습은 보이지 않는 대신 이름 모를 풀들이 예쁘고 앙증맞은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숲에 사는 풀들은 다투지 않고 배려하며 피고 진다. 잘났다고 나서지 않고,  못났다고 무시하지 않고, 나름대로 피고 진다. 분홍색 해당화가 여기저기서 해맑은 얼굴을 내밀며 핀다. 한 번에 피지 않고 차례를 기다리며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참 예쁘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이파리들이 지나가는 바람과 포옹한다. 지난해 피었던 들꽃들의 마른 가지가 주저앉 새 가지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계곡물의 정겨운 수다소리가 숲 속의 침묵을 깬다. 까치와 까마귀가 같이 놀고 다람쥐가 숨바꼭질하는 숲은 언제나 분주하다. 보이지 않는 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이름 모를 꽃들이 피고 지는 숲은 정말로 경이롭다. 나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굵은 나무 옆에는 잔잔한 아기나무들이 자라고, 나이 먹은 나무는 슬그머니 누워서 하늘을 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가 나중이라고 할 것 없이 살다가 간다.


몇 년 전에 오솔길 옆에 안 죽은척하고 예쁜 버섯을 기르며 서있던 나무 하나에 구멍이 많이 파인 채 우두커니 서있다. 아직은 서 있지만 새들조차 오지 않는 것을 보니 나무 안에 벌레도 없나 보다. 세월 따라 있던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어제 보지 못한 것들이 세상을 차지하며 발전한다. 처음에는 낯설어도 적응하며 받아들이며 산다. 오래된 장이 맛있다고 하듯이 사람도 오래 알던 사람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특별히 자주 만나지 않아도 어쩌다 만나 할 말도 별로 없지만 그냥 마음이 편하다.


나무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참으로 아름답다. 파란 하늘이 계곡물에 반사되어 하늘과 물이 동색이 된다. 계곡에 사는 오리 한쌍이 한가로이 헤엄을 치며 간다. 인기척을 알면 놀라서 다른 곳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지나가며 정다운 그들의 모습을 담아 사진을 찍는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짝을 만나 사는 것이 신기하다. 혼자 있는 것 같은데 어딘가에 짝이 있고 같이 행동한다. 동물들의 다큐를 보면 짝을 만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경쟁하는 것을 본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반려자를 만나 한평생 의지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준 행운이라 생각한다.


숲이 점점 우거져간다. 봄이 오네 안 오네 하며 불평을 했는데 어느새 봄은 지나가고 여름의 한복판에서 숲은 하루가 다르게 녹음이 우거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겨우내 헐벗었던 나무들이 하나둘 새 옷을 입고 온갖 이름 모를 풀들이 숲을 덮는다. 6월의 숲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 메마른 겨울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도록 새 생명이 피어나는 싱그러운 숲이다. 비가 온 뒤라서 공기는 더없이 맑고 신선하여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길을 따라간다. 이제 머지않아 모기가 숲을 장악하기 때문에 지금 열심히 걸어야 한다.


아무도 걷지 않는 숲에는 심심한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짝을 부른다. 엊그제는 걸어가는 길목에 까치 한 마리가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리를 다쳤으면 절룩거리기라도 할 텐데 눈은 떴는데 한 곳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까치들은 몸이 날렵해서 사람들이 지나가면 바로 날아가는데 그 까치는 정말 이상할 정도로 가만히 있어 사진을 찍고 옆으로 가는데도 꼼짝 않는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지나쳐 왔는데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다. 그 후로 그곳에 가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하다.


자연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생로병사의 진리가 있다. 어떤 날은 새들이 꼼짝하지 않아 숲이 조용한 날이 있고, 어떤 날은 새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왁자지껄 하기도 한다. 그들 나름대로 의 볼일이 있는 것이다. 하늘은 구름을 모으고 계곡물은 끝없이 흐른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하러 가는지 모르지만 앞만 보고 간다. 가다가 양쪽으로 갈라진 길이 나오면 잠시 망설인다. 위로 갈까, 아니면  아래로 갈까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데 오늘은 위쪽으로 걸어간다. 위 쪽으로 가면 동네길과  이어져 있어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하는 맛이 있다.


겨울 땔감으로 장작을 잔뜩 쌓아 놓은 집이 있고 손질을 하지 않아 뒤뜰에 엉망인 집도 눈에 띈다. 사람 사는 모습이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단출하고 깔끔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자연 그대로 놔두고 사는 사람도 있다. 숲 근처라서 일부러 다른 곳으로 산책을 가지 않아도 좋은 장점이 있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철철이 바뀌는 숲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한없이 걷고 싶지만 정확한 배꼽시계가 신호를 하여 집으로 간다. 오늘 보지 못한 것은 내일 보고, 오늘 가지 못한 곳은 내일 가면 된다. 정겨운 숲이 내일 보자고 손을 흔든다. 순식간에 숲을 채우는 마법의 6월은 숲의 여왕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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