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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11. 2020

바람이 분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림 :이종숙)


5월 둘째 주일날 … 캐나다에서는 오늘이 어머니날이다. 40년 전에 첫아들을 낳고 나는 엄마로 태어났다. 아무도 없는 외국에서 엄마가 되어 살기 시작 한지 40년이 되었다. 엄마로서의 나이 40살이 되고 보니 그야말로 지나간 40년이라는 세월이 꿈만 같다. 지구가 두 번 돌며 엄마가 되어 아이를 기르기 시작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엄마를 보고 크게 웃었던 날의 기쁘고 신기했던 기억부터 고열로 고생하며 홍역을 앓던 날이 생각난다. 엄마라는 이름뿐 철없던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보호자였던 나를 이제는 아이들이 보호한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또 그 세월을 따라갈 것이다.

오늘은 바쁜 날이다. 엄마 날이고 큰아들 생일이라서 생일 축하와  어머니날 축하로 전화가 바쁘다. 해마다 가족이 모두 모여 바비큐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올해는 조용히 지내야 한다. 근처에 사는 둘째가 과일과 꽃 그리고 몇 개의 잼을 어머니날 선물로 가져 다 주었다. 멀리서 선물만을 주고 가야 하니 서운하지만  내년에는 좋은 시간을 함께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부모 자식까지도 서로 조심해야 할 세상이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하루빨리 완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행히 이곳은 조금씩 확진자 수가 줄어들어 조만간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될 기미가 보이지만 끝까지 조심하여 전염병을 뿌리째 뽑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소망해 본다.





어제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오늘은 무척 춥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희망의 봄비가 온다. 어제 남편이 밭에 씨앗을 뿌리고 흙으로 덮어놓아 밭이 잘 정리된 모습이 예쁘다. 머지않아 새싹이 나와 우리에게 일용할 음식으로 태어나리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고 기대가 된다. 해마다 이곳에는  5월에 한 번씩 다녀 가는 폭설 때문에 지난주에 사다 놓은 들깻잎 모종과 고추 모종은 다음 주말에 화분에 옮겨 놓으려고 화분에 흙을 가득 채워 놓았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조그만 씨앗을 뿌리면 자라서 우리를 살게 하는 식량이 된다. 얼마나 신기하고 훌륭한 자연인가. 자연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고 뿌린 대로 거둔다. 올해는 상추, 쑥갓 씨를 뿌렸고  파와 부추 그리고 달래는 해마다 일찍 나와서 벌써 먹기 시작했다. 고추와 들깻잎까지 심으면 일곱 가지의 채소로 식탁을 풍성하게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부푼다.

겨울이 긴 이곳은 채소값이 비싸기 때문에 짧은 여름 동안 텃밭에 채소를 길러서 먹는다. 손이 많이 가지만 싱싱한 채소를 먹을 수 있어 부지런을 떨어 본다. 그동안 무슨 이유인지 파가 엄청 비싸서 사 먹기 부담스러웠는데 봄이 되니 파와 부추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먼저번 오이에 부추를 넣고 담은 오이소박이도 맛있게 먹고 있다. 그 무서운 겨울을 잘 견디고 봄이 되면 예쁘게 땅으로 올라와 맛있게 먹는다. 봄마다 꽃밭은 조금씩 바뀐다. 있던 꽃이 없어지고 없던 꽃씨가 어디선가 날아와서 핀다. 원추리는 봄을 먼저 알아채고 일찍부터 자리를 잡아 다른 꽃들을 방해한다. 특히 올해는 갑자기 원추리가 많이 뿌리를 내려 옆에 있던 다른 꽃들을 침범해서 죽이는 바람에 한 군데만 남겨놓고 뽑아 버렸다. 꽃은 나름대로 예쁘기도 하고 여름 내내 하루에 하나 씩 계속 피기 때문에 좋아했는데 너무 많아졌다. 군데군데에 있던 것을 다 뽑아내니 나름 꽃밭이 차분하고 깨끗하다.







여전히 밖은 구름이 끼고 비가 오더니 눈발도 날린다. 하늘도 심심하여 괜히 날씨를 가지고 변덕을 부린다. 이렇게 비가 오고 바람 불며 5월은 지나가고 6월은 청명하게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어머니날은 해마다  성당에서 청소년들이 출입구에서 카네이션을 손수 만들어서 모든 엄마들 가슴에 꽂아주며 축하를 해주었는데 그것도 없이 집에서 온라인으로 미사를 보았다. 성당에서는 미사 끝으로 모든 신자들은 '어머님 은혜'를 부르며 고국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한 채 울며 노래를 하였는데 올해는 그것마저도 못하게 되서 척 서운하다. 사람들은 그렇게 한마음이 되어 서로를 위로하고 그리움을 달래며 살아간다. 노랫말이 고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엄마가 그리워지고 잘못을 뉘우치며 후회를 하고 용서를 청하게 된다.

종교의식은 온라인으로 행할 수 있지만 왠지 모를 그리움은 가슴에 차곡히 쌓인다. 부모님의 사랑은 어느 한 날에 국한될 수 없다. 매일매일이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이지만 이렇게 쓸쓸한 어머니날을 맞고 보니 옛날이 그리워진다. 카톡으로 가까운 지인들과 '어머니 날 축하 이모티콘'을 날리며 나름대로 축하해본다. 세상이 변해도 이렇게 변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우울해 남편과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다. 날씨가 조금씩 개이고 구름이 걷힌다. 비 온 끝이라 바람이 차지만 잔디는 그 어느 때보다 파랗다. 끝없이 펼쳐진 학교 운동장엔 아무도 없다. 일요일 오후 아이들이 나와 한창 뛰어놀을 놀이터를 폐쇄했기 때문에 그네도 미끄럼틀도 쓸쓸하다. 노란 테이프로 막아놓은 놀이터가 빨리 열려 아이들의 뛰어노는 모습이 보고 싶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은 무엇을 할지 몰라 서성인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아졌다. 학교를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해마다 5월에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는데 올해는 전염병 때문에 그것도 못하게 금지되었다. 유치원부터 고 3까지 13년을 마감하는 졸업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한다. 이곳의 고등학교 졸업식은 그 어느 것 보다도 더 성대하게 거행된다. 여학생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남학생들은 신사복을 입고 멋진 홀에서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저녁 식사와  함께 여러 가지 행사를 하며 치러진다. 아이들의 최고의 날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부모와 교사들이 아이디어를 만들어 축하해 주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특별한 날일 될지도 모르는데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그들의 졸업식을 가을로 미루기도 하지만 특이한 방법을 동원해서 축하하는 졸업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새로운 방법이 생기고 예전 것들은 하나둘 추억이 되어간다.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가 익숙해하던 것들을 하나 둘 놓아주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오늘이 있어 행복함을 느끼며 더 이상의 욕심을 버릴 때 내일도 온다. 지금 힘든 것을 생각하기보다 우리에게 더 좋았던 것을 생각하면 때로 위로가 된다. 늦었지만 매일매일 연습하면 조금씩 가까워지는 삶의 지혜를 익혀가고 싶다. '어제 나는 이랬다'가 아니고 '오늘 나는 이렇다'가 더 중요함을 알아간다. 집으로 가는 길에 따스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바람이 불어온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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