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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12. 2020

안되면... 천천히 돌아서 가보자





몇 번 다녀온 산책길이 있다. 오늘은 끝부터 시작해서 돌아보려고 다리를 걸어간다.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다리가 울리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 모자가 날아갈 것 같아 끈을 조이며 산책길로 들어섰다. 숲 속으로 들어오니 바람은 온데간데없다. 산책길에 다람쥐들이 신나게 논다. 앞에 노인 부부가 다람쥐 노는 것을 보며 신기한 듯 바라본다. 우리보다 한 5년은 더 연배로 보인다. 어느 날 나의 모습을 보는 듯 약간은 측은해 보인다. "어차피 인간은 늙는 것인데 뭐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하며 그들을 지나치며 남편이 말한다. 강을 바라보며 이루어진 동네는 부자동네다. 집들도 크고 경치도 좋다. 그중 어느 한 집은 집 앞에 커다란 운동장이 있어 확 트인 모습이 보기 좋다. 몇 발자국 걸어가면 바로 산책길로 강가로 연결되니 좋을 듯하다.

바람도 없고 햇볕이 쏟아진다. 강 건너 숲이 연둣빛으로  옷을 입어 아름답다. 며칠 전까지도 칙칙했는데 이제 봄옷을 예쁘게 입었다. 아침 기온보다 올라갔지만 걸어서 땀이 난다. 재킷을 벗어서 허리에 묶고 급히 걷는다. 2시간 반 정도의 산책길이니 서둘러본다. 강 저쪽 건너편에 잘라진 채 서 있는 다리가 보인다. 몇 년 전에 보수공사를 한 그 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구경을 하는데 밑으로 낭떠러지 절벽에 가까이 있다. 절벽 아래로 바위들이 많아 떨어지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위험하게 매달려  더 큰 사고가 있기 전에 다리 보호막을 만들어서 자연스러운 맛은 없어졌지만 나름 안전해 보인 다. 가는 길에 지나가는 곳에 있으니 이따가 가면 된다. 갑자기 조용하던 산책길이 복잡해졌다.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개를 풀어놓고 뛰게 하니 개들이 난리가 났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나게 논다. 땀이 나는지 강가로 난 샛길로 들어가 강에서 헤엄을 치다 나오곤 한다.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강가를 바라본다. 두 사람이  강가에서 낚시를 한다. 무언가를 낚았는지 낚싯대를 급하게 돌리며 잡아 다닌다. 멀리서 구경을 한다. 한참을 잡아다니더니 빈 낚싯대를 돌리며 자리를 옮긴다. 아무것도 못 잡았는지 툴툴거린다. 낚시하기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해가 비춰 물이 더워지면 고기 들은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쉬는 시간이다. 할 일이 없으니 그냥 시간을 때우려고 나왔나 보다. 일도 없고 어디 가지도 못하니 젊은 사람들이 집에 있기 갑갑해서 바람 쐬러 나왔을 것이다. 숲 속을 빠져나와 조금 걸어가니 긴 다리에 도착했다. 이제 다리를 건너온 거리만큼 더 가야 한다. 다리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백양나무가 사이좋게 숲을 나누며 산다.(사진:이종숙)




사회적 거리두기로  서로 배려하고 거리를 지키며 걷는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아서 잘한 다. 전염병이 사람들을 잘 교육시켰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긴 다리를 건너 강가로 가는 오솔길에 들어섰다. 절벽 사이로 난 길은 자전거 길로 아주 좁다. 동물이 다니는 길을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여 간 넓어졌지만 둘이 걷기에는 조금 좁은 듯하다. 남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간다. 날씨가 좋으니 절로 흥 이 난다. 건너편에서 보였던 낚시꾼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숲 속의 오솔길은 재미있다. 마치도 인생길처럼 오르내리며 구불구불하다. 앞에 어떤 길이 기다릴 줄 모른다. 무엇이 우리를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궁금하다. 어떤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신나게 걸어간다. 강 바로 옆으로 길이 났다. 오리 한 쌍이 사랑을 나누고 멀리서 다른 오리들 은 유유히 강물에 몸을 맡긴 채 헤엄을 친다.

평화롭다.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좁은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이 질퍽 거리며 길이 끊어졌다. 아찔하다. 더 이상 길이 없다. 절벽을 타야만 한다. 지금 돌아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멀지 않은 곳에 길이 보인다. 거기까지만 어떻게 하든지 건너가야 한다. 오른쪽은 강이고 왼쪽은 절벽이다. 중간에 밟으면 푹 들어가는 진 땅이 입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린다. 돌아갈까 망설이다 절벽을 타고 넘어가 기로 했다. 남편이 앞장을 선다. 나도 뒤따라 가서 남편이 건너가기를 기다린다. 남편이 절벽에 몸을 바짝 대고 걸어가는데 신발이 진땅에 빠져서 안 나온 다. 빨리 몸을 돌려 신발을 빼고 간신히 절벽 옆길로 향한다. 나보고 오라고 한다. 남편 발자국을 밟고 오라고 한다. 못 간다. 절대로 나는  못 갈 것 같다. 넘어지면 진창에 빠지게 되면 어쩌나 싶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남편이 다시 돌아오기는 불가능하다. 나는 그냥 서 있는다. 강 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한발 두발 앞으로 걸어간다. 걷다 보니 나무 조각이 하나 있다. 그것을 끌어다 고 밟고 서서 누워있는 큰 나무 위를 살살 걸어간다. 자칫 잘못하면 강물에 빠진다. 발발 떨며 간신히 나무를 걸어가는데 옆에 서있는 나무 꼭대기에 까마귀가 깍 깍 하며  친구를 부른다. 여기 사람 고기 먹을 일이 생겼다고 동료를 부르는 듯하다. 가슴이 콩콩 뛴다. 길로 들어가기에는 질퍽한 땅을 건너야 한다. 남편은 조마조마하며 나를 기다린다.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니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 뜀뛰기 실력을 발휘해본다. 휘익… 몸을 날려서 건너뛰었다. 아직 나는 젊었다. 까마귀가 날아간다. 건수가 없음을 알고 저만치 날아간다.

오솔길은 다시 평화롭다. 아까 강 건너에서 보 았던 잘라진 다리 아래를 지난다. 바위들이 거북이처럼 넓게 누워있다. 껑충껑충 뛰어서 다리를 구경한 다. 아주 튼튼한 보호대로 가장자리를 막아 놓았는데 누군가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다리를 올라가려면 절벽으로 가야 하는데 오늘은 안 되겠다. 그냥 가자. 그 길로 강을 따라 한참 내려가는데 한 남자가 보트를 타고 신나게 강물을 타고 내려온다. 오솔길 강언덕에서 손을 흔들어주니까 그도 손으로 반가움을 전한다. 강물이 빠르게 흘러 순식간에 그는 다리 밑으로 사라져 간다. 하늘도 파랗고 바람도 없는 하루다. 아까 위험했던 절벽 아래서의 조바심이 벌써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강물과 함께 떠가고 도착지에 서서히 다가가 고 있다. 출발점에서 두 시간 반을 지나 우리는 다시 시작점에 도달했다.

다리는 노곤하지만 기분은 좋다. 모르는 길을 찾아 한 발씩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했고 새로운 길도 걸어 보았다. 구부러진 비탈길에 서 있어  앞일을 모르는 인생길도 이렇게 찾아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마음먹은 대로 안될 때는 천천히 돌아가면 원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안되면...  천천히 돌아서 가보자.




하늘을 향하여 사랑을 전하는 백양나무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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