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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10. 2020

꽃이... 피고 지며 세월이 간다


만개한 앵두꽃(사진:이종숙)


앵두꽃이 활짝 폈다. 앙증맞고 귀엽다. 지난주만 해도 죽은 듯하였는데 만개하여 보란 듯이 서있다. 벌들이 열심히 꽃가루를 나르고 있다. 겨울 가기를 기다리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봄이 오니 꽃이 피기를 기다렸고 꽃이 피니 많이 피기를 기다린다. 꽃이 많이 피니 앵두가 많이 열리기를 원한다. 사람의 욕심이 한이 없다. 자연이 알아서 하는 일을 미련한 인간은 건방지게 좌지우지하려 든다. 비가 오기를 바라고, 날씨가  춥지 않기를 바라며 매사가 인간들 마음대로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자연은 자연의 길이 있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고 연구원들이 불철주야 새로운 것을 발명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연의 심연한 진리를 부정하지 못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지만 한계가 있다. 백신을 만들지 못한 채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감염되어 앓고 있다. 세상이 벌벌 떨고 있다. 봉쇄되고, 해제되고, 다시 감염되고 다시 두려워한다.

인간의 방황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 무엇도 알 수 없다. 세상이 무서워지고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문을 닫고, 일하는 사람은 직업을 잃었다. 실업률은 이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급격히 올라가고 사람들은 울부짖는다. 나란히 서 있던 세계는 하나가 쓰러지고 그 반동으로 도미노처럼 다 쓰러진다.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지만 결코 해결되지 않는 투쟁에 불과하다. 근대 수십 년 동안 공들여 왔던 모든 산업이 수포로 돌아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갔다. 다시 일어나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다들 죽겠다고 도움을 청하지만 국채도 바닥이 났다. 빚을 얻어 도와주고 또 빚으로 무언가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직업을 창출한다고 하지만  많은 시간이 걸린다.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죽고, 싸우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다. 상상할 수 없는 내일이다.

"종말이 가까워진다."라는 말이 떠돈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말이다. 어쩌면 종말은 오래전 시작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종말은 결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사람들이 살기가 힘들고 괴로워서 종말의 모습을 상상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종말은 없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무언가를 끝없이 원하고, 욕심내고 세월을 살아간다. 때로는 외면하며 악하게도 살고, 힘든 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도와가며 선하게도 산다. 인간은 원래 아주 악하지도 엄청 선하지도 않다. 살아가며 인간은 바뀌어진다. 자연처럼 아름답지만 떨어진 낙엽처럼 추하기도 하다.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듯 하지만 그 속에는 무궁무진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실체의 몇 백만분의 일 정도 일지도 모른다. 많이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듯이 살아간다. 눈곱만큼도 안 되는 지식으로 온통 아는 체하지만 세상에는 모르는 것 투성이다.




손톱만 한 앵두꽃을 바라보며 생각이 너무 멀리 왔다. 텔레비전에 마라톤을 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모금을 하기 위한 마라톤 대회라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라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시작 소리를 듣고 뛰기 시작한다. 얼마 못 가서 반 정도가  떨어져 나간다. 처음부터 뛰는 사람이 있고, 나중을 위해 천천히 뛰는 사람이 있다. 나름대로 각자의 계획과 계산이 있다. 길게, 오래, 멀리 뛰기 위해 머리를 쓴다. 중간중간에 물을 건네받으며 체력을 점검하면서 달려간다. 숨이 차기 시작하고, 다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땀이 난다. 갈등이 생긴다. 도중하차의 유혹이 생기지만 조금만 조금만 하며 앞으로 간다. 더 이상 뛸 수 없다. 그만 내려놓아야겠다. 앞으로 지 않은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헉헉대고 뛰어간다. 뒤를 돌아볼 수 없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뛰어야 한다. 지금까지 왔는데 기권은 안된다.

하지만 결국 끝에 가서는 누군가가 일등을 하지만  함께 뛰어간 사람이 없었으면 일등도 없었으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일등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 같이 공생하는 것이다. 상부상조하며 함께 살아갈 때 삶의 의미가 있다. 삶이란 어쩌면 마라톤의 원리와 같지 않을까. 너무 빨리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옆사람과 앞사람이 보조를 맞추며 넘어지는 사람들을 일으켜주고 배려하며 함께 가는 길 그것이 행복을 위한 삶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나 혼자만의 욕심만 위하여 살아가면 혼자 이기는 승리로 끝나지만 다 함께 이기는 인간승리는 되지 못할 것이다. 전염병으로 인한 타격은 상상 이외로 크고 복잡하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세상이 전염병으로 뒤집어진 상황이니 경제혼란도, 식량부족도 다 함께 겪고,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잘살아 보려고 노력하고 이루어 낸 지금의 발전이 쓰러져 가는 이 시점에 한 무심한 작은 행동이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오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마스크로 인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회문제로 커지고 있다. 인간의 추한 모습이 드러난다.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흔들리고 있다. 후세들이 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발돋움이 허물어지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아무런 희망도 없고 기가 막힌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서로 죽이는 세상이 되어 간다. 있는 대로, 생긴 대로 먹고살면 좋으련만 더 좋은 세상,  더 많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때문에 더 나쁘고 더 불행해진다. 없어서 생기는 불협화음보다 있어서 생기는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자연처럼 그냥 그렇게 살면 안 될까 싶기도 하다. 바람이 불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하는 것처럼 아무런 걱정 없이 살 수는 없을까.

생각하는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걱정 속에 산다. 걱정을 안 하면 걱정이 없어질 것 같은데 여전히 다른 걱정이 생긴다. 세상을 안 보고 살 수도 없고, 세상을 떠나서 살 수도 없다. 그저 "다 잘될 거야"라고 자위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계절처럼 세상이 돌고 돈다. 돌고도는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꽃피는 세상도 오리라 믿는다. 지금은 암울한 겨울이라 생각하고 봄을 기다리며 희망을 갖고 꿈을 꾸자. 죽은 듯하던 앵두나무가 어느 날 꽃을 피우듯 전염병으로 앓고 있는 세계도 어느 날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꽃이 피고 지며 세월이 간다.


숲 속의 놀이터(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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